우리 18개월 된 막내녀석은 아직 뭐가 뭔지 모르는 정신없는 시기를 지나고 있다. 길 가다가도 차선으로 뛰어들고 엎어지고 넘어지고 다치고 부딪치고 얼굴이 성할 날이 없는 아이가 하루는 유리로 된 로션 병을 가지고 누나 머리를 때렸다. 자지러지게 우는 둘째를 감싸안고 머리카락을 헤쳐보니 상처가 툭 부풀어올라 있었다. 큰 아이가 재빠르게 냉장고에서 얼음을 꺼내어 냉찜질을 할 수 있게 비닐에 싸서 둘째에게 주었다. 둘째가 머리에 냉찜질을 하는 동안 막내에게 누나가 많이 아프니 가서 호호 불어주라고 했다. 그 말에 막내녀석이 얼른 누나에게 다가가 아픈 머리에 손을 얹고 호호해주며 누나 머리에 뽀뽀를 하고 얼굴을 안아주었다. 그러자 이제까지 아프다고 울던 누나가 금세 얼굴을 펴고 동생이 사랑스러워 못 견디겠다는 눈빛으로 헤헤거리고 웃고 동생을 껴안았다. 서로 껴안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는 나 역시 흐뭇해지며, 작은 사건이었지만 사랑에는 역사하는 힘이 크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지난번에는 어떤 미국인 여자가 집에서 기르던 강아지를 잃어버리자 그 강아지를 찾아 집집마다 물어보고, 강아지 사진이 있는 포스터를 이곳 저곳에 붙이며 얼굴이 하얗게 되어 다니는 것을 보았다. 그 모습을 본 어떤 사람이 안됐다는 듯이 말했다. "목에 줄을 꼭 붙들어 매놓지....."

넓어서 인파가 붐비는 공원에 가보면 간혹 아이를 잃어버릴까봐 엄마가 아이와 손목을 줄로 연결하여 걸어다니는 모습을 보게된다. 아이가 멀리 자기 멋대로 가고 싶은 곳으로 갈 때 줄을 잡아 당기는 것을 보면 한편으로 우습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론 강아지 줄이 연상되어 별로 안 좋은 인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선한 목적의 줄이니 어찌하랴. 그러나 그 효과도 잠시, 아이들은 손목에 부착한 줄을 떼어내고 자기가 원하는 곳으로 가버린다. 어느 엄나는 백화점에 갈 때 그 안전줄을 썼지만 아이가 홀랑홀랑 떼어내고 온 사방 사이사이로 돌아다녀서 하나마나였다고 한다.

과연 무엇이 중요한 것인가? 안전줄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안전줄의 사용 목적을 이해하고 그 용도대로 썼을 때 그 줄이 만들어진 목적대로 제 구실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물리적으로 엮어놓고 묶어놓았다 할지라도 싫으면 풀고 달아나는 것이다. 우리 자녀들도 마찬가지이다. 부모가 아무리 규칙을 정해놓고 단속을 하여도 아이가 싫어하여 지키지 않으면 아무 효과가 없다.

우리가 인간적으로 만들어놓은 줄은 이렇게 한계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실수와 실패가 없는 영원한 줄로 사랑하는 당신의 자녀들을 매어놓으셨다. 그것은 곧 사랑의 줄이다. 이 사랑의 줄은 풍성한 인내 속에서 관용과 용서와 격려를 비롯한 교양과 훈계의 인격적 훈련이 내포되어 있는 생명줄이다. 작은 아이들끼리도 서로 사랑하고 예뻐하며 아프다가도 금방 잊어버리고 웃고 좋아하는데, 하물며 우리를 사랑하시되 자기 아들을 죽음에 내어놓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줄이야말로 위대한 역사를 창조해내는 큰 힘이 되지 않겠는가? 이 사랑의 줄에 매인 선교사들은 오늘도 최전방에서 죽음의 위협과 사투하며 그 사랑 때문에 사랑의 진수인 복음을 전하고 있다. 나 역시 하나님의 그 사랑에 감격하며 나의 인생을 주의 손에 들려 드렸다. 사랑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들며 위대한 역사를 만들어내고, 사람이 생각할 수 없는 지각 밖의 일들이 생겨나게도 한다.

나는 남편과 결혼 전, 주의 종의 아내가 되어 사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알기에 부탁한 일이 있다. 나를 충분히 사랑해 줄 것과 그 풍성한 사랑 가운데 모든 일들을 내가 자발적으로 자원하여 할 수 있게 사랑으로 나를 움직여달라는 것이었따. 신실하게도 여지껏 남편은 그 약속을 잘 지켜주어 힘든 일도 힘든 줄 모르고 지내왔던 것 같다.

우리는 서로 사랑의 줄로 묶여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의 줄로 꼭 묶어놓듯이 부부 사이에 또는 부모 자식간에 강한 사랑의 줄이 묶여져 있어야 한다. 부모가 자녀에게, 자녀가 부모에게 서로 마음을 주고받으며 사랑을 교환할 때, 그 사랑의 울타리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은 위대한 일들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사랑에는 역사하는 힘이 크기 때문이다. 부모는 자녀들에게서 부모를 향한 사랑의 마음을 받을 수 있어야 하고, 자녀들은 부모의 사랑을 충분히 푸욱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부모는 자녀들을 사랑으로 통제하고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며 그들을 가르칠 때, 후에 좋고 풍성한 결실이 이루어지리라 믿는다. 우리가 늘 부르던 찬송가 후렴이 생각난다.

"날마다 날마다 주를 찬송하겠네
주의 사랑의 줄로 나를 굳게 잡아 매소서."(찬송가 424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