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지체와 자폐를 가진 26살의 큰 아들, 그리고 다운증후군인 막내 아들. 2남 1녀 중 두 명의 장애아를 둔 코코장애아동서비스센터(약칭 코코) 전선덕 권사는 장애를 가진 첫째 아들로 인해 코코를 시작하게 됐다.
전선덕 권사는 "이 아이들을 맡기시려 첫째 아들을 통해 많이 단련시키신 것 같다."고 말했다.
코코를 운영하며 동시에 맨해튼 미드타운 형사법원에서 새벽 5시부터 일을 시작하는 전 권사의 하루는 새벽 2시 30분부터 시작한다. 그 일을 마치고 코코에 돌아와 오후 2시 30분부터 6시 30분까지는 방과후학교를 운영한다. 아이들을 라이드해주고 집에 돌아오는 시간은 오후 8시, 장애를 가진 두 아이를 씻기고 저녁을 먹이면 어느새 밤 11시.
아버지가 집을 떠나 대부분이 어려운 장애 아동의 가정 형편을 알고 처음(설립 2000년)에는 토요일 하루라도 어머니들이 일할 수 있도록 아이들을 맡아 돌봤다. 아이가 아프면 직장을 가야 하는 어머니는 전 권사의 집에 아이를 데려오기도 했다. 그때는 어머니에게 한 달 먹을 쌀을 주며 아이들 옷도 사다 입히며 사역했다.
그렇게 시작한 토요일 프로그램은 지금도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운영된다. 요즘은 매주 40-60명의 아동들이 모여 코코가 사용하는 교실만(순복음뉴욕교회 내) 9개이다. 찾는 이도 대부분 중증 아동들이다.
전 권사의 아이들을 향한 사랑은 지극해 아이들에게는 정크 푸드도 먹이지 않는다. 또한 전 권사 스스로 아무리 화가 나도 말 못하는 아이들이라 더 참고 참는다. 다운증후군인 막내아들 지민(입양)이가 요즘 한창 사람을 보기만 하면 얼굴을 때리는 통에 전 권사는 아들을 말리느라 바쁘지만, 사랑스런 아들임에는 변함없다.
전 권사는 "장애 아동이 한 가지를 배우는데 1년이 걸린다 해도, 10년이 걸린다 해도 포기하지 않고 가르치면 된다."고 말한다. 10년 훈련해 화장실에 다닐 수 있게 된 아동, 일어나 앉지도 못했지만 13살이 된 지금은 걷는 막내 아들 지민이가 그 증거이다.
코코는 이런 전 권사의 전적인 헌신과 40명의 자원봉사자, 딸의 지원으로 운영될 수 있었다. 자원봉사자들은 고등학교 봉사 점수가 필요해 찾아왔다가 대학에 입학해서도 다시 찾고, 그렇게 9년을 일하며 식구가 된 이도 있다. 약대 5학년이라 스스로의 학업도 바쁜 딸은 아침마다 오빠와 동생을 씻겨 학교 버스에 태워준다. 막내 지민이가 아무리 속을 썩여도 자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예쁘다며 뽀뽀를 해대는 누나다.
장애 아동들의 따뜻한 어머니로 10년간 정기 후원 없이 자비량으로 코코를 이끌고 온 전선덕 권사에게는 코코 설립 초기부터 하나님께 드렸던 약속이 하나 있다. 그 약속은 24시간 장애 아동들과 한 집에 살며 그들을 돌보고 가르치는 '복지홈' 마련이다. 장애 아동을 위한 미국 기관은 있지만 한인 아동들은 문화적인 차이 때문에 그곳에서 적응을 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때로는 장애 아동의 부모까지 정신치료를 받을 정도로 힘들어지기도 한단다. 그래서 전 권사는 한인 장애아들을 위한 복지홈을 만들어 평생 그들을 돌보며 가르치려고 한다. 코코를 시작하며 복지홈을 위한 행정적인 절차도 밟기 시작했다. 오는 25일에는 설립 10주년과 복지홈 마련을 위한 후원 음악회를 갖는다. 전선덕 권사는 "아이들 돌보는 것은 내가 하지만 그 뒤의 일은 하나님께서 책임져주실 것으로 믿는다."며 관심과 후원을 부탁했다.
전선덕 권사는 "이 아이들을 맡기시려 첫째 아들을 통해 많이 단련시키신 것 같다."고 말했다.
코코를 운영하며 동시에 맨해튼 미드타운 형사법원에서 새벽 5시부터 일을 시작하는 전 권사의 하루는 새벽 2시 30분부터 시작한다. 그 일을 마치고 코코에 돌아와 오후 2시 30분부터 6시 30분까지는 방과후학교를 운영한다. 아이들을 라이드해주고 집에 돌아오는 시간은 오후 8시, 장애를 가진 두 아이를 씻기고 저녁을 먹이면 어느새 밤 11시.
아버지가 집을 떠나 대부분이 어려운 장애 아동의 가정 형편을 알고 처음(설립 2000년)에는 토요일 하루라도 어머니들이 일할 수 있도록 아이들을 맡아 돌봤다. 아이가 아프면 직장을 가야 하는 어머니는 전 권사의 집에 아이를 데려오기도 했다. 그때는 어머니에게 한 달 먹을 쌀을 주며 아이들 옷도 사다 입히며 사역했다.
그렇게 시작한 토요일 프로그램은 지금도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운영된다. 요즘은 매주 40-60명의 아동들이 모여 코코가 사용하는 교실만(순복음뉴욕교회 내) 9개이다. 찾는 이도 대부분 중증 아동들이다.
전 권사의 아이들을 향한 사랑은 지극해 아이들에게는 정크 푸드도 먹이지 않는다. 또한 전 권사 스스로 아무리 화가 나도 말 못하는 아이들이라 더 참고 참는다. 다운증후군인 막내아들 지민(입양)이가 요즘 한창 사람을 보기만 하면 얼굴을 때리는 통에 전 권사는 아들을 말리느라 바쁘지만, 사랑스런 아들임에는 변함없다.
전 권사는 "장애 아동이 한 가지를 배우는데 1년이 걸린다 해도, 10년이 걸린다 해도 포기하지 않고 가르치면 된다."고 말한다. 10년 훈련해 화장실에 다닐 수 있게 된 아동, 일어나 앉지도 못했지만 13살이 된 지금은 걷는 막내 아들 지민이가 그 증거이다.
코코는 이런 전 권사의 전적인 헌신과 40명의 자원봉사자, 딸의 지원으로 운영될 수 있었다. 자원봉사자들은 고등학교 봉사 점수가 필요해 찾아왔다가 대학에 입학해서도 다시 찾고, 그렇게 9년을 일하며 식구가 된 이도 있다. 약대 5학년이라 스스로의 학업도 바쁜 딸은 아침마다 오빠와 동생을 씻겨 학교 버스에 태워준다. 막내 지민이가 아무리 속을 썩여도 자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예쁘다며 뽀뽀를 해대는 누나다.
장애 아동들의 따뜻한 어머니로 10년간 정기 후원 없이 자비량으로 코코를 이끌고 온 전선덕 권사에게는 코코 설립 초기부터 하나님께 드렸던 약속이 하나 있다. 그 약속은 24시간 장애 아동들과 한 집에 살며 그들을 돌보고 가르치는 '복지홈' 마련이다. 장애 아동을 위한 미국 기관은 있지만 한인 아동들은 문화적인 차이 때문에 그곳에서 적응을 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때로는 장애 아동의 부모까지 정신치료를 받을 정도로 힘들어지기도 한단다. 그래서 전 권사는 한인 장애아들을 위한 복지홈을 만들어 평생 그들을 돌보며 가르치려고 한다. 코코를 시작하며 복지홈을 위한 행정적인 절차도 밟기 시작했다. 오는 25일에는 설립 10주년과 복지홈 마련을 위한 후원 음악회를 갖는다. 전선덕 권사는 "아이들 돌보는 것은 내가 하지만 그 뒤의 일은 하나님께서 책임져주실 것으로 믿는다."며 관심과 후원을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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