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시애틀연합장로교회(담임 장윤기 목사)에서 개최된 시애틀지역 연합부흥성회 첫째 날, 김문훈 목사는 창세기에 나오는 아브라함과 그의 조카 롯의 삶의 방식을 비교하며 크리스천의 삶의 방식을 제시했다.
'스타일'(창13:10-13)이란 다소 독특한 제목의 설교를 통해 성도들은 "삶의 방식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생이 좌우된다"는 스타일의 중요성을 깊이 깨닫는 시간이었다.
김 목사는 "애굽과 같은 소돔을 택했던 롯은 하나님보다 물질을 중요시하고 갈등과 분쟁을 일으키는데 반해 아브라함은 가는 곳 마다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고 모든 일에 겸손한 화평의 사람이었으며, 손님 대접하기를 좋아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인생을 살았다"며 복의 근원인 아브라함의 삶의 방식을 좇아 살것을 권면했다.
김 목사는 크리스천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 등을 성경적으로 쉽고 재밌게 풀며, 성도들을 시원하고 흥겨운 시간으로 이끌었다. 성도들의 웃음 뒤에는 깊은 공감과 깨달음이 있었고 김 목사의 탁월한 입담 뒤에는 죽음에서 자신을 건지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확신과 감사, 구원의 감격으로 가득차 있었다.
-이하는 설교 요약-
건강한 사람은 식습관이 다르고 잠자는 습관이 다르고 장수하는 사람들만의 독특한 생활 습관이 있다. 사람은 스타일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결정짓는다. 성공에는 아이큐 보다 습관이 중요하다는 말도 있다.
본문의 아브라함과 조카 롯의 스타일은 아주 대조적이다. 한 사람은 복의 근원이 되었고 한 사람은 비주류로 끝이 났다. 두 사람의 모습 속에는 너무나 대족적인 삶의 스타일이 나온다. 아브라함과 롯의 스타일을 대조하면서 은혜를 받고자 한다.
사람은 모두 습관대로 움직인다. 습관이 그 사람을 좌지우지 할 때 어떤 습관을 가지고 살아야 할까? 기독교 교육은 성경속의 인물을 모델로 삼아 그 모습을 닮아갈 때 신앙이 성숙할 수 있다.
삶에서 예배를 가장 우선 했던 아브라함
창13:4절을 보면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아브라함은 첫째로 가는 곳마다 재단을 쌓고 예배를 잘 드렸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소명을 받고서 가는 곳마다 재단을 쌓고 예배를 잘 드렸습니다. 돌로 재단을 쌓고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 예배를 드리는 것이 습관이 된 사람입니다. 그러나 조카 롯은 예배를 드렸다는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달력을 보면 주일이 먼저 나옵니다. 크리스천은 주일 날 은혜를 받고 은혜와 진리가 충만해서 한 주간을 사는 것입니다. 예배에 성공하면 모든 것에 성공합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성공하는 사람은 예배가 설레임이 있고 예배에 대한 떨림과 울림이 있습니다.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갈급함이 있듯이 말씀에 대한 기대가 있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가는 곳 마다 재단을 쌓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에 성공했다는 것은 말씀을 받는 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말씀이 없는 부흥이나 역사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반드시 메세지를 주십니다. 말씀 한 구절이 인생 전체를 붙들고 살았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경직 목사님, 김진홍 목사님, 김창의 목사님 등 위대한 목회자들을 보면 모두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의 위대한 사업을 이뤄나가는 것입니다.
주의 말씀을 받고 성령의 감동을 받으면 사람이 변화가 옵니다. 주의 사역을 맡기기 전에 하나님은 말씀을 주십니다. 아브라함이 복의 근원이 되는 특징은 예배를 잘 드리는 것입니다. 예배가 그 사람의 삶의 스타일에 첫 번째가 돼야 합니다.
예배에 성공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를 최우선으로 했다는 것입니다. 예배에 성공하지 못하면 말씀이 없고 말씀이 없기 때문에 삶의 목적과 방향이 없습니다. 구약의 40명에 가까운 왕들이 나오는데 하나님께서 칭찬하시는 왕들은 예배를 우선합니다.
아브라함은 최우선 순위로 예배를 잘 드리는 것입니다. 성도의 살아가는 본분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예배에 대한 우선순위가 어디쯤입니까? 한국에서 새벽기도는 4시-5시에 하는데 왜 새벽 단잠이 오는 시간에 할까요? 우리가 잠자기도 아까운 시간. 그 시간을 드리는 모습을 하나님께서 보십니다. 시간의 최우선 순위, 최상의 최선의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며 중심을 보시고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신령과 진령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다. 경외하는 것이 인생의 첫 단추이자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롯은 가는 곳 마다 예배를 드린 흔적이 없습니다. 여기서 아브라함이 복의 근원이 될 수밖에 없고 롯이 역사의 비주류로 남게 되는 이유입니다.
겸손과 화평의 사람 아브라함
둘째로 아브라함은 다투는 것을 싫어하는 스타일이고 조카 롯은 가는 곳마다 싸우는 사람입니다. 싸우는 것을 싫어합니다. 중국인이나 유태인들은 그렇게 단합이 잘 됩니다. 그러나 한국 사람은 대단히 강한데 두 세명이 모이면 싸움을 합니다. 한인 타운 조차도 중국인들과 베트남들이 잠식하는 모습입니다. 아브라함은 체질적으로 다투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내려놓음의 자유와 축복이 있습니다. 강한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방법인 십자가는 죽는 것과 지는 것입니다. 희생하는 방법입니다. 예수님께서 변명이나 변호하지 않으셨습니다. 섬기러 오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한마디도 손해 안 보려고 하는 것은 예수님의 제자가 아닙니다. 양보하고 포기하고 다투는 것을 싫어하는 것이 아브라함의 스타일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면서 조카 롯과 같이 문제를 만드는 사람이 아닌 평화를 만드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어디에 가도 남을 흥하게 하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인간관계는 싸우면 평생 원수가 됩니다. 갈등관계를 일으키지 마십시오. 한번 갈등관계가 되면 어렵습니다. 아브라함은 싸우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을 택했던 아브라함
셋째로 아브라함과 롯은 선택이 다릅니다. 아브라함은 눈을 들어 산을 보았는데 롯은 눈을 들어 땅을 바라봅니다. 요단 지역을 보니 아주 비옥하고 살기 좋은 땅이었습니다. 이것을 선택한 사람이 롯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바라보는 시각이 다릅니다.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가 있습니다. 롯은 먹음직스러운 것만을 봤습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 거주했고 롯은 애굽과 같은 소돔 땅을 선택했습니다. 가나안 땅은 비가오지 않으면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땅이고 애굽은 물이 넉넉해서 걱정이 없는 땅 이었습니다. 사람은 약간 부족한 것이 있어야 겸손합니다. 애굽 땅에 살면 하나님에 대한 기도가 필요 없고 서서히 부패하고 타락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지켜주셔야 농사가 가능한 땅입니다.
우리가 선택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선택해야지 내가 좋은 것을 선택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주의 일을 하면 주님은 내 일을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일은 그것에 필요한 것을 주십니다.
우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할 때 사건 보다 해석이 중요합니다. 항상 기뻐한다는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지만 기쁘게 여기라는 것입니다. 어려워도 힘들어도 웃으려고 애를 쓰십시오. 하나님은 감당치 못할 것이 없습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여호와께서 책임지십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가난한 것 같은데 부유하고, 무명한 자 같은데 유명하고 뭔가 모를 매력이 있습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이 가장 매력적입니다.
조카 롯은 눈에 보이는 대로 선택합니다. 아브라함은 체질적으로 눈을 들어 산을 보며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성령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신앙생활은 구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은혜의 보좌 앞에 나가는 자입니다. 신앙생활은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 도전하고 비전을 받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결국 조카 롯이 사는 소돔과 고모라에 네 왕이 들어와 모든 재물과 양식을 빼앗고 롯과 부녀를 잡아 갑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조카 롯을 구하고 모든 재물을 찾아옵니다.
섬기는 자 아브라함
넷째로 아브라함은 남을 대접하고 섬기기를 잘했습니다. 항상 부지런하고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섬기는 것이 체질화 되었습니다. 미적거리고 마지못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남을 섬기고 받들어야 마음이 편한 사람이었습니다. 대접하기를 잘했다가 부지불식간에 천사를 대접하게 됩니다. 주는 자가 복이 있고 섬기는 자가 큰 자입니다.
여러분 아브라함과 조카 롯이 선택하는 스타일이 너무나 대조적입니다. 모든 것은 선택과 판단이 좌우합니다. 하나님은 지혜를 주십니다.
'스타일'(창13:10-13)이란 다소 독특한 제목의 설교를 통해 성도들은 "삶의 방식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생이 좌우된다"는 스타일의 중요성을 깊이 깨닫는 시간이었다.
김 목사는 "애굽과 같은 소돔을 택했던 롯은 하나님보다 물질을 중요시하고 갈등과 분쟁을 일으키는데 반해 아브라함은 가는 곳 마다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고 모든 일에 겸손한 화평의 사람이었으며, 손님 대접하기를 좋아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인생을 살았다"며 복의 근원인 아브라함의 삶의 방식을 좇아 살것을 권면했다.
김 목사는 크리스천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 등을 성경적으로 쉽고 재밌게 풀며, 성도들을 시원하고 흥겨운 시간으로 이끌었다. 성도들의 웃음 뒤에는 깊은 공감과 깨달음이 있었고 김 목사의 탁월한 입담 뒤에는 죽음에서 자신을 건지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확신과 감사, 구원의 감격으로 가득차 있었다.
-이하는 설교 요약-
건강한 사람은 식습관이 다르고 잠자는 습관이 다르고 장수하는 사람들만의 독특한 생활 습관이 있다. 사람은 스타일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결정짓는다. 성공에는 아이큐 보다 습관이 중요하다는 말도 있다.
본문의 아브라함과 조카 롯의 스타일은 아주 대조적이다. 한 사람은 복의 근원이 되었고 한 사람은 비주류로 끝이 났다. 두 사람의 모습 속에는 너무나 대족적인 삶의 스타일이 나온다. 아브라함과 롯의 스타일을 대조하면서 은혜를 받고자 한다.
사람은 모두 습관대로 움직인다. 습관이 그 사람을 좌지우지 할 때 어떤 습관을 가지고 살아야 할까? 기독교 교육은 성경속의 인물을 모델로 삼아 그 모습을 닮아갈 때 신앙이 성숙할 수 있다.
삶에서 예배를 가장 우선 했던 아브라함
창13:4절을 보면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아브라함은 첫째로 가는 곳마다 재단을 쌓고 예배를 잘 드렸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소명을 받고서 가는 곳마다 재단을 쌓고 예배를 잘 드렸습니다. 돌로 재단을 쌓고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 예배를 드리는 것이 습관이 된 사람입니다. 그러나 조카 롯은 예배를 드렸다는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달력을 보면 주일이 먼저 나옵니다. 크리스천은 주일 날 은혜를 받고 은혜와 진리가 충만해서 한 주간을 사는 것입니다. 예배에 성공하면 모든 것에 성공합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성공하는 사람은 예배가 설레임이 있고 예배에 대한 떨림과 울림이 있습니다.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갈급함이 있듯이 말씀에 대한 기대가 있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가는 곳 마다 재단을 쌓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에 성공했다는 것은 말씀을 받는 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말씀이 없는 부흥이나 역사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반드시 메세지를 주십니다. 말씀 한 구절이 인생 전체를 붙들고 살았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경직 목사님, 김진홍 목사님, 김창의 목사님 등 위대한 목회자들을 보면 모두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의 위대한 사업을 이뤄나가는 것입니다.
주의 말씀을 받고 성령의 감동을 받으면 사람이 변화가 옵니다. 주의 사역을 맡기기 전에 하나님은 말씀을 주십니다. 아브라함이 복의 근원이 되는 특징은 예배를 잘 드리는 것입니다. 예배가 그 사람의 삶의 스타일에 첫 번째가 돼야 합니다.
예배에 성공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를 최우선으로 했다는 것입니다. 예배에 성공하지 못하면 말씀이 없고 말씀이 없기 때문에 삶의 목적과 방향이 없습니다. 구약의 40명에 가까운 왕들이 나오는데 하나님께서 칭찬하시는 왕들은 예배를 우선합니다.
아브라함은 최우선 순위로 예배를 잘 드리는 것입니다. 성도의 살아가는 본분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예배에 대한 우선순위가 어디쯤입니까? 한국에서 새벽기도는 4시-5시에 하는데 왜 새벽 단잠이 오는 시간에 할까요? 우리가 잠자기도 아까운 시간. 그 시간을 드리는 모습을 하나님께서 보십니다. 시간의 최우선 순위, 최상의 최선의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며 중심을 보시고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신령과 진령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다. 경외하는 것이 인생의 첫 단추이자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롯은 가는 곳 마다 예배를 드린 흔적이 없습니다. 여기서 아브라함이 복의 근원이 될 수밖에 없고 롯이 역사의 비주류로 남게 되는 이유입니다.
겸손과 화평의 사람 아브라함
둘째로 아브라함은 다투는 것을 싫어하는 스타일이고 조카 롯은 가는 곳마다 싸우는 사람입니다. 싸우는 것을 싫어합니다. 중국인이나 유태인들은 그렇게 단합이 잘 됩니다. 그러나 한국 사람은 대단히 강한데 두 세명이 모이면 싸움을 합니다. 한인 타운 조차도 중국인들과 베트남들이 잠식하는 모습입니다. 아브라함은 체질적으로 다투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내려놓음의 자유와 축복이 있습니다. 강한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방법인 십자가는 죽는 것과 지는 것입니다. 희생하는 방법입니다. 예수님께서 변명이나 변호하지 않으셨습니다. 섬기러 오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한마디도 손해 안 보려고 하는 것은 예수님의 제자가 아닙니다. 양보하고 포기하고 다투는 것을 싫어하는 것이 아브라함의 스타일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면서 조카 롯과 같이 문제를 만드는 사람이 아닌 평화를 만드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어디에 가도 남을 흥하게 하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인간관계는 싸우면 평생 원수가 됩니다. 갈등관계를 일으키지 마십시오. 한번 갈등관계가 되면 어렵습니다. 아브라함은 싸우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을 택했던 아브라함
셋째로 아브라함과 롯은 선택이 다릅니다. 아브라함은 눈을 들어 산을 보았는데 롯은 눈을 들어 땅을 바라봅니다. 요단 지역을 보니 아주 비옥하고 살기 좋은 땅이었습니다. 이것을 선택한 사람이 롯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바라보는 시각이 다릅니다.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가 있습니다. 롯은 먹음직스러운 것만을 봤습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 거주했고 롯은 애굽과 같은 소돔 땅을 선택했습니다. 가나안 땅은 비가오지 않으면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땅이고 애굽은 물이 넉넉해서 걱정이 없는 땅 이었습니다. 사람은 약간 부족한 것이 있어야 겸손합니다. 애굽 땅에 살면 하나님에 대한 기도가 필요 없고 서서히 부패하고 타락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지켜주셔야 농사가 가능한 땅입니다.
우리가 선택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선택해야지 내가 좋은 것을 선택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주의 일을 하면 주님은 내 일을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일은 그것에 필요한 것을 주십니다.
우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할 때 사건 보다 해석이 중요합니다. 항상 기뻐한다는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지만 기쁘게 여기라는 것입니다. 어려워도 힘들어도 웃으려고 애를 쓰십시오. 하나님은 감당치 못할 것이 없습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여호와께서 책임지십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가난한 것 같은데 부유하고, 무명한 자 같은데 유명하고 뭔가 모를 매력이 있습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이 가장 매력적입니다.
조카 롯은 눈에 보이는 대로 선택합니다. 아브라함은 체질적으로 눈을 들어 산을 보며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성령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신앙생활은 구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은혜의 보좌 앞에 나가는 자입니다. 신앙생활은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 도전하고 비전을 받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결국 조카 롯이 사는 소돔과 고모라에 네 왕이 들어와 모든 재물과 양식을 빼앗고 롯과 부녀를 잡아 갑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조카 롯을 구하고 모든 재물을 찾아옵니다.
섬기는 자 아브라함
넷째로 아브라함은 남을 대접하고 섬기기를 잘했습니다. 항상 부지런하고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섬기는 것이 체질화 되었습니다. 미적거리고 마지못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남을 섬기고 받들어야 마음이 편한 사람이었습니다. 대접하기를 잘했다가 부지불식간에 천사를 대접하게 됩니다. 주는 자가 복이 있고 섬기는 자가 큰 자입니다.
여러분 아브라함과 조카 롯이 선택하는 스타일이 너무나 대조적입니다. 모든 것은 선택과 판단이 좌우합니다. 하나님은 지혜를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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