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유학을 오려고 비자를 신청하자, 미 대사관은 X-ray 사진필름을 첨부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 사진도 미국 대사관에서 지정한 세 병원에서 찍은 사진이어야 했습니다. 비자 신청을 접수하고 얼마 후 대사관에서 통지가 왔습니다. 과거에 폐를 앓다가 치료된 흔적이 있으니 그 전 해에 찍은 X-ray 사진을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과거에 폐병을 앓은 흔적이 있다고 했지만 저는 폐병 때문에 병원에 가본 적이 없으며 약을 먹어본 적도 없었습니다. 우리 식구들 중에 폐병을 앓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전 해에 찍은 사진도 없었습니다. X-ray 사진이라고는 고등학교 시절에 학교에서 단체로 찍은 것이 전부로 기억했으며 병원 이름도 모르니 그 필름을 찾아낼 도리가 없었습니다. 저는 이 문제를 상의하려고 세브란스 병원에 근무하는 외숙모에게 찾아갔습니다.

그 당시에는 세브란스 병원에 가려면 언덕길이 있었습니다. 그 길을 올라가는데 숨이 찼습니다. 저는 속으로“내가 정말 환자인 모양이다. 이 정도 걸어 올라가는 것 때문에 숨이 차다니”하며 겁이 더럭 났습니다. 외숙모를 만나니“조카, 폐병을 앓지 않아도 어떤 이유로 병이 생겼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낫는 경우가 있는데, 조카도 그런 모양이야! 별로 걱정하지 말아요”라고 위로해주셨습니다. 그 후 오늘까지 저의 폐는 튼튼합니다.

그런데 외숙모를 찾아가던 그 날 경사진 길에서 왜 그리 숨이 찼을까? 하고 가끔 생각이 났습니다. 그것은 심리적인 이유였습니다.“폐병을 앓았다고 한다! 나는 폐병 환자였구나! 유학도 못 가게 될 것이며 폐병으로 죽을지도 모른다”등의 불길한 생각 때문에 그 날 나는 그처럼 숨이 찼던 것입니다.

우리 조상들은‘범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했습니다. 아주 위험한 형편에 처할지라도 정신을 잃지 않으면 살아 날 길이 생긴다는 말입니다. 성경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 어떤 형편에 처하든 마음을 지키는 사람은 위기를 극복하고 승리한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전 세계가 경제적 태풍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기다리는 좋은 소식은 아직 별로 없고 좋지 않은 소식은 계속 들려오고 있습니다. 우리 마음에 두려운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우리 자신이 너무 무력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이런 때 우리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예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폭풍이 이는 바다에서 하셨던 주님의 말씀입니다.“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막 6:50). 두려움에 압도되면 파선하고 맙니다. 주님은 지켜보고 계시며 도와주실 것입니다. 샬롬

목양실에서 문창선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