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건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과 삼가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경건훈련은 마음과 태도의 훈련이다. 매일 성경 읽고 묵상하는 목적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유지하며 순종하는 삶을 살기 위한 것이다. 경건의 모양은 있더라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순종하지 않는다면 위기에 처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말라기 시대에 이스라엘은 제사장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잃어버렸다. 제사장들은 매일 반복되는 제사가 귀찮아져 눈 멀고, 다리 절고, 병든 동물로 대충 제사를 드렸다. 백성들은 살다 싫어지면 강제로 이혼하고 이방 여인을 취하여 성결을 욕보였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헛된 일이라 푸념했다.

제사장도 백성들도 조상 대대로 여호와를 섬기는 집안에서 자란 사람들이다. 그들은 태어난 지 8일 만에 할례를 받아 자기 몸에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흔적을 남기고 양들이 피흘리며 죽어가는 이유를 수도 없이 듣고 자랐다. 종교의식엔 계속 참여하고 있었지만 제사장도 백성도 하나님을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은 잃어버렸다.

성경지식이나 예배의식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더 소중하다. 신앙은 교리에 대한 지적인 동의나 예배의식 참여 보다 주님과 바른 관계 속에서 나오는 신뢰와 확신과 순종이다. 교리와 예배는 생활 속의 헌신으로 표현될 때 생명이 있다. 헌신은 과거에 얻은 칭의의 증표인 동시에 현재의 성화와 미래의 영화에 이르게 하는 수단이다.

경건의 시작은 십자가의 죽음이다. 죄로 타락해 하나님을 거역하는 옛 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의와 진리를 따르는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죽은 사람에겐 육체의 욕망도 사단의 유혹도 작용할 수 없다. 거듭난 새 사람은 진리를 깨닫고 주님의 뜻에 순종할 마음이 생긴다.

새 사람으로 태어나는 영적 변화는 성령을 통해 이루어진다. 심령의 갱신과 부흥은 성령 부어 주심에 달려 있다. 갈급한 마음으로 말씀을 사모하며 기도하게 만들고 확신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따르게 만드는 분은 오직 성령이시다.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며 교회를 섬기도록 능력주시는 분도 성령이시다. 육신의 욕망을 이겨내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헌신할 수 있는 힘도 성령이 주신다.

참된 경건은 하늘나라의 소망을 이 세상에서의 삶의 문제와 연결시켜준다. 내세 지향적 신앙과 이 세상에 대한 관심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참된 경건은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돕고 불의에 맞서야 한다.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현대 세계 속에서 어떻게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가?”(Bonhoeffer) 묻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