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교회 개척은 현실적인 문제만 아니라 개척 3년과 7년에 한차례씩 ‘계속해서 목회자의 길을 가야만 하는가’라는 위기 의식이 따른다. 이 위기의 때를 극복하면 계속해서 목회를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새벽 이슬 같이 목회 현장에서 사라져버린다. 본지는 이민 사회 교회 개척자들에게 힘을 주고 아울러 한인 교회의 나아갈 바를 알기 위해 어려움을 극복한 목회자와의 만남 시간을 가진다. 목회자와의 만남은 목회자들이 시무하는 교회의 교세, 목회자의 교단적 배경, 목회 연수 등에 관계 없다.

여섯번째 만남은 미주베델교회 정요한 목사다. 정 목사는 공군 군종병으로 제대 후 낙동강에서 빠져 죽을 뻔하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뒤 목회자가 되기로 했다. 정 목사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고, 인천 부평 베델교회에서 개척 10년째 되던 해에 3층 규모의 성전을 건축했다. 성전 완공 후 정 목사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엘에이에서 이민 목회를 시작, 현재 웨스턴과 5가에 위치한 교회에서 10년째 목회를 하고 있다.

이민목회 쉽지 않더라

정 목사는 한국에서 성전을 건축한 후 IMF 당시 미국으로 왔다. 당시 생활 기반이 전혀 닦여 있지 않던 때라 정 목사는 목회자 이니 목회에 전념했고 사모는 남편이자 목회자인 정 목사의 내조를 위해 한번도 해보지 않은 봉제 일을 시작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이 대통령으로 있을 당시 많은 이들이 경제적인 호황을 누렸듯 정 목사의 가정도 사모가 시작한 봉제 일 덕에 경제적인 기반을 닦았다.

정 목사는 사모의 내조로 목회에 전념할 수 있었지만 개척 첫해와 3년째 되던 해에 성장하지 않는 교회를 보며 밀려오는 자괴감과 절망감으로 어려움을 겪었다고 고백했다. “한국에서는 열심히 하면 된다 교회가 성장 한다라는게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민목회를 그렇지 않더군요. 아마 이민목회를 하는 대부분의 사람이 이와 같은 경험이 있을 겁니다”

이민목회와 한국교회 목회의 차이에 대해 정 목사는 “이민목회 쉽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했고, 교회의 더딘 성장과 밀려오는 경제적 어려움을 정 목사는 친구 목회자와 교회를 방문하는 새신자를 통해 극복했다. 비슷한 시기에 목회를 시작한 목회자를 통해선 동병상련을, 이미 이민목회를 시작한 목회자들을 통해선 위로와 격려를 받아 어려움을 이겨나갔다. 새신자를 통해선 영혼 구원의 기쁨으로 위로를 받았다. “매달 한 차례 친구 목회자들과 모임을 갖고 있습니다. 모임은 아주 정겹고 신나며, 그 동안의 삶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합니다. 이런 친구들이 있기에 또 다른 기쁨으로 목회에 전념할 수 있는 겁니다. 또 교회를 섬기기 위해 스스로 찾아온 한 성도를 통해 한 생명이 얼마나 귀한지를 또 다시금 알아가며 기쁜 마음으로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소망으로 바라본다

정 목사는 이민목회 10년을 맞아 또 다른 10년을 소망으로 바라본다. 그 동안의 경험을 토대로 잘 될 것이라는, 많은 이들이 전도될 것이라는 소망으로 새롭게 목회를 시작한다. “짧지 않은 세월 목회를 해왔지만 이민목회를 하며 깨달은 것은 역시 성실한 목회자가 많은 이들을 전도해 교회를 부흥시킨다는 것입니다. 목회자가 소망이 없이 살아선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에 하면 된다 잘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정 목사는 끝으로 노래하는 사람들이 모인 교회라고 교회 자랑을 하며 “목회를 해보니 무임 목회자가 가장 서러운 것 같습니다. 어려운 때이지만 담임목회자들이 무임목회자들을 위해 무언가를 해준다면 이민교회가 더욱 따뜻해지고 아름다운 모형을 이루리라 봅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