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년부터 선교사역을 감당해 오면서 안식년과 같은 기회를 한 번도 가진 적이 없다. 경제적인 이유도 있었고 또 어떤 때에는 선교지를 비울 형편이 되지 않아서 그러다 보니 안식년을 한 번도 가지질 못했다.

금년 헝가리에 들어와 동유럽 집시선교 사역을 시작한 지 만 6년이 되었지만 선교사역이 확대되어가고 있고 현지 지도자들을 세우고 있는 중에 있어 안식년을 갖기에는 무리였다. 그래서 지난해부터 안식년 대신에 금년 여름 시간을 내어 형제들 모두 살고 있는 캐나다에서 전 가족이 만나기로 약속을 하였다.

또한 미국에 있는 어느 한인교회에서 금년 여름 캐나다에 있는 형제들을 방문할 때에 초청하고 싶다고 하여 금년 여름은 캐나다의 형제들을 만나고, 미국에 있는 한인교회 등을 방문하여 집시선교 사역을 교회 앞에 보고하고 함께 하는 시간들을 가질 계획들을 세웠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먼저 캐나다의 동생 중에 막내 제수씨가 만 10년 만에 아이를 갖게 되었다. 조카가 있지만 벌써 10살이 되어 학교를 다니는 중에 다시금 조카가 들어서게 된 것이다. 그런데 제수씨가 아이가 들어서면서 몸이 약하여 병원에 출입을 하고 있고 8월 중순 경에 아이를 출산한다고 하니 아무래도 캐나다 행은 무리일 것 같았다. 또한 우리를 초청하고 싶다는 한인교회 역시 경제 불황의 여파로 인해서 초청을 연기했으면 한다고 해서 미국 역시 갈 수가 없게 되었다.

결국 그렇다 보니 금년에도 안식년은 커녕 짧은 일정으로 형제를 방문하고 미국에 있는 한인교회를 방문하는 것도 어렵게 되었다. 그러던 차에 터키에서 선교사역을 하고 있는 후배 선교사님과 통화를 하던 중 후배 선교사님이 차라리 터키를 방문해서 소아시아 지역의 성지를 한 번 둘러보는 것은 어떠냐고 하기에 안식년 대신에 가족들과 함께 소아시아 지방을 한 번 둘러보고 오는 것으로 계획을 바꾸게 되었다.

안식년 대신 소아시아 터키로의 여행
터키는 동서양의 길목에서 오랜 역사와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헬레니즘 시대 이전에도 있었지만 생략하고 로마시대, 비잔틴 시대, 셀주크시대, 오스만 제국시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명의 유적과 유물이 산재해 있었다.

터키가 더욱 특별했던 것은 소아시아 지역으로 성경에 나오는 지역들이 터키에 있었고 서기 300년 대 초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기독교가 공인된 후에 동로마 수도 콘스탄티노플이 터키에 있었기 때문에 기독교 역사의 현장이기도 했다.

동로마 수도였던 이스탄불을 둘러보고 난 후에 서머나 교회가 있었던 이즈밀 지역, 에베소 지역, 사도 요한과 누가의 묘, 라오디게아 교회가 있었던 지역, 사도바울의 고향인 다소 지역, 그리고 안디옥 지역까지 사도행전과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여러 지역들을 돌아볼 수 있는 귀한 기회였다.

무슬림 문화 속 복음 없는 터키 집시들의 삶
터키를 돌아보면서 종종 눈에 띄는 것은 터키 집시들의 모습이었다. 헝가리에서 집시선교를 하다 보니 터키의 집시들의 삶은 어떠한지 궁금하였다. 먼저 이스탄불에서 만난 집시들은 주로 아이들이 거리에서 구걸을 하는 모습이었다. 무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머리에 스카프(히잡이라고 부름)를 둘러쓰고서 주로 관광객들에게 접근해서 구걸을 하고 있었다.

이스탄불에서 사흘 정도 머물게 되었는데 제법 많은 집시 아이들을 만났다. 성 소피아 성당 인근에는 많은 사람들이 더위를 피해 해 질 무렵이면 모여서 함께 차를 마시고 대화를 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때에 집시 아이들은 서너 명씩 짝을 이루어 주로 관광객들에게 접근하곤 했다. 가까이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던 터키 사람들과 터키 집시민족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터키 사람들은 집시 아이들을 “거리의 아이들”이라고 불렀다.

이스탄불에서 안디옥 지역으로 내려가는 도중에 대로 주변 곳곳에 집시들이 거주하고 있는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이들은 주로 도시로 들어가는 입구나 도시가 끝나는 지역에 천막을 치고 집단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들 역시 날씨가 40도에 가까운데도 불구하고 이스탄불에서 만났던 아이들처럼 머리에 히잡을 쓰고서 천막 밖에서 한 낮에 땀을 흘려가면서 빵을 굽는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터키 집시 천막촌 모습.
터키를 방문 중에 터키에 살고 있는 집시들과 교제나 방문 등은 없었고 다만 지역을 지나면서 그들을 삶을 잠시 엿볼 수밖에 없었는데 그들 역시 참으로 힘든 삶을 살고 있는 듯하였다. 그들을 보면서 헝가리에 있는 집시형제들을 생각해 보았다. 터키의 집시들과 헝가리의 집시들을 비교하는 것은 별로 바람직한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헝가리의 집시들은 행복한 사람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는 헝가리의 집시들은 복음을 듣고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있고 복음을 언제든지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지만 모슬렘 문화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터키의 집시들은 복음을 듣기에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음은 분명해 보였다. 삶의 현실도 어려운데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영적으로 곤고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터키 집시들의 모습이었다.

또한 헝가리는 공산주의 국가였을 때에 헝가리 인들이나 집시들에게 모두 동일하게 주택이나 직장 등을 제공하였고 지금도 사회, 복지 제도에 있어 많은 금액은 아닐지라도 집시들에게 국가에서 최선을 다해 지원을 하고 있다. 그래서 헝가리의 집시들은 터키의 집시처럼 천막생활을 한다거나 이동하는 집시들이 거의 없고 국가에서 제공하는 집에서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터키의 집시들은 국민으로서 등록이 되지 않고 신분증 조차 없이 자유인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하니 과연 터키 정부에서 집시들을 위한 사회, 복지 정책은 무엇일까 생각을 해 보았다.(확인해 보지 않았음)

짧은 일정에다 지나치면서 방문객의 눈에 비친 터키에 있는 집시들의 모습은 참으로 안타깝기가 그지없었다. 그들의 빈곤한 삶과 오늘 잠시 머물다가 내일이면 정처 없이 떠도는 집시들의 삶이 모슬렘의 문화권 속에서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유리하는 그러한 모습이었다.

터키를 떠나 선교현장으로 돌아온 이후에 여전히 터키에서 만났던 히잡을 쓰고 있던 집시 여자 아이들의 모습, 여러 곳을 지날 때 무더운 날씨 아래서 빵을 굽던 집시 여인네들, 천막을 치고서 언젠가 때가 되면 다시금 정처 없이 떠나야 하는 터키의 집시들이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을 찾게 되고 그 하나님께서 소망의 항구(시 107:30)로 인도하시는 날이 속히 오기를 기도할 따름이다.

Rev. Choi, Young & Anna (최 영 & 양 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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