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A 회장 임기 동안 과제가 무엇일까요?

세계 복음주의자들을 하나로 묶는 일입니다. 현재 131개 국가가 가입해 있는데 아직 가입을 안 한 나라에는 WEA 기구를 조직해서 세계복음화를 위해 하나되도록 할 것입니다.

또한, 종교자유문제도 중요합니다. 20세기에 순교자가 가장 많았는데 그 중 98%가 기독교인이었습니다. 종교의 자유가 없는 국가 지도자들을 만나 종교의 자유를 허락하게 하고 핍박을 멈추도록 촉구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핍박을 받는 자들 대부분이 복음주의자들입니다. 복음주의자들은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주장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핍박을 받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뒤에 우리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또한, 노예, 여성, 어린아이들, 질병, 기아 근절 등등 할 일이 많습니다. 이런 일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가톨릭, WCC와도 힘을 모아야 합니다. 그 안에도 복음주의자들이 있거든요. ‘삼위일체’의 신앙을 고백하고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을 인정한다면 타 종교 앞에서 하나가 돼야합니다. Global Christian Forum을 통해 기독교 대화의 장을 열어가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 상황은 어떻습니까?

WEA, WCC, 카톨릭이 협력하듯 한국에서도 한기총, KNCC, 카톨릭이 협력해야 합니다. 그래도 KNCC는 복음주의자들이 절대 다수입니다. 한국교회는 특히 ‘로잔 언약’으로 요약된 복음주의 교리를 대부분 믿고 있습니다. 로잔 언약에서 ‘복음(gospel)’은 ‘영혼 구원’과 ‘사회 책임’으로 정의하기 때문에 한국교회들 대부분은 교회가 인간 구원과 사회적 책임을 병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44년의 목회를 스스로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참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아무런 불만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제가 미처 생각지 못한 것들까지 다 커버해주셨습니다. 저는 성경에서 분명히 말하는 것은 목숨 걸고 고수했고, 성경에서 불분명하게 말하는 것은(종말론 같이 해석상 차이가 나는 것들) 제 소신껏 말하고 남이 말하는 것도 존중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비성경적인 것이나 성경과 무관한 것에는 상관을 안했습니다. 보통 비성경적인 것으로 인해 다들 분쟁이 시작됩니다. 이런 원칙을 지켰기에 평화롭게 다투지 않고 목회를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조금 아쉬웠던 부분이 있다면?

목회에 100% 전력투구하지 못한 것입니다. 평생을 교수생활을 하면서 목회를 했기 때문입니다. 전 교수가 되기를 원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학문적인 것보다는 목회자들과 평신도들이 쉽게 많이 볼 수 있는 책들을 썼습니다. 성경적으로 반박할 수 없는 확실한 신학만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하려고 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저의 목회는 평생 끌려다닌 목회였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젊은이들이 저를 따라 하고 싶어 한다는 것입니다.

요즘 ‘두 날개’ ‘가정교회’ 등 많은 목회 패러다임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후배 목회자들에게 주는 조언은 있다면?

이름만 다를 뿐 한국교회에서 오래 전부터 다 해왔던 것입니다. 저는 처음부터 ‘평신도 목회’를 강조했습니다. 목사 혼자서 하면 안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은사를 개발하고 훈련시켜 충분히 활용해서 동역하는 것이 목회 철학입니다. 목회를 시작하기 전부터 풀타임 교수였기 때문에 평신도들과 함께 하는 목회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초기에 이 말을 하면 목사, 평신도 모두 싫어하더군요.

후배들에게 조언을 하라면 구원의 사역, 성화의 사역, 섬기는 사역 이 세가지를 하라는 것입닌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하셨던 사역입니다. 즉 기본에 충실하라는 것입니다.

김상복 목사는

김상복 목사는 1939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서울대를 나오고 그레이스 신학대학원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은 김 목사는 워싱턴 바이블 칼리지 등에서 19년간 교수로 지냈다. 엘리컷 시티에 소재한 벧엘교회를 창립하고 11년간 목회한 그는 1989년 한국 할렐루야교회에 부임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목회자의 리더십’ ‘지도자에게서 배우라’ 등 다수의 출판사에서 많은 책을 냈으며 아시아복음주의연맹, 세계복음주의연맹, 한국세계선교협의회 등 주요 단체의 회장을 맡으며 한국 교계를 이끌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