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교우께서 다른 지역에 사시는 친구에게 <엄마를 부탁해>를 선물로 보내고 저의 설교 CD를 보냈습니다. 얼마 후, 그 친구가 연락을 하여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런 설교를 하고도, 너희 목사, 아직 안 쫓겨났니?“ 그분은 매우 보수적인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시는데, 그분의 생각에는 ‘소설 나부랭이’를 가지고 설교한다는 것이 납득이 되지 않았던가 봅니다. 그런 설교를 하는 목사도 이해가 안 되고, 그런 목사를 쫓아내지 않은 것도 이해가 안되었는가 봅니다.

교우 여러분, 저를 쫓아내지 않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 쫓아내지 않으실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지지해 주시고 기도해 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내색을 안해서 그렇지, 우리 교우들 가운데도 그런 느낌을 가진 분이 계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를 믿고 묵묵히 지켜보아 주셨습니다. 2007년도에 영화 <밀양>을 가지고 설교할 계획을 세웠을 때도 매우 조심스러웠습니다. 그래서 먼저 장로 기도회에서 이야기를 꺼내 보았습니다. 그 때, 저는 저의 걱정이 기우였음을 알았습니다. "그 같은 설교가 신세대와 불신자에게 가장 효과적이니, 한 번 해 보십시다"라고 격려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때 "저는 행복한 목사입니다"라는 칼럼을 쓴 기억이 있습니다.

진실로 그렇습니다. 목사가 마음 놓고 창조적인 실험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교회와 교인들이 많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창조하는 영이신데 교회는 자주 전통과 관습에 포로가 되어 삽니다. 그러한 태도는 하나님의 성령을 억압하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정말 좋은 교회는 목사와 교인들이 모두 성령의 감동을 힘입어 지속적으로 창조적인 일을 해 가는 교회입니다.

예수님의 설교를 유심히 살펴 본 사람이라면, 그분의 설교가 주로 이야기로 되어 있음을 발견할 것입니다. 설교 중에 성경을 직접 인용하는 것은 그 분에게 있어 드문 일이었습니다. 설교 내용과 중심 주제와 결론은 늘 성경에 뿌리를 두고 있었지만, 성경을 드러내놓고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대신, 그 분은 이야기들을 만들어 사용하셨습니다. 그분은 가장 탁월한 이야기꾼이었고, 가장 심오한 문학가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물과 사건을 사용하여 신선한 이야기를 만드셨고,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예수님처럼 이야기를 창조할 재주가 없는 저는 다른 사람이 만든 좋은 이야기를 사용한 것입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이 뜻을 알아주시고 지원해 주신 교우들께 감사드립니다. 연속설교가 진행되는 동안 어느 교우께서 그러셨습니다. "교회 나오는 것이 이렇게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지난주일, 어느 교우께서는 이 연속설교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한 20년 전에만 그런 설교를 들었어도 제가 얼마나 달라졌을지요! 이렇게 늦게 깨달은 것이 너무 한스럽습니다“ 라고 하셨습니다. 그분의 눈에 눈물이 가득했습니다. 여러분들로 인해 제가 얼마나 행복하고, 또한 얼마나 감사한지요! (2009년 6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