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 한번 와 보세요” 이 말은 어쩌면 ‘잠 못 이룰 정도로 아름다운’ 시애틀에 방문해 보라는 자랑처럼 들릴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지독한 외로움에 사랑을 달라는 목마른 요청으로 나는 기억하고 있다. 필자가 중학생이었던 어느 겨울방학의 연말, 내가 다녔던 서울 H교회의 청년부 형, 누나들이 고아원을 방문하는 길에 함께 따라간 적이 있었다. 신도시가 생기기전이라 낭만과 고즈넉한 분위기가 물씬 풍겨났던 교외선 완행열차 밖으로 썰매를 타는 아이들의 모습, 차량이 한산 했던 국도에는 휴전선이 가까움을 알리는 도로 표지판, 그사이로 ‘통일로 가는 길’이라는 돌 비석이 스쳐 지나갔다.
‘과연 그곳은 어떤 곳일까?’ 라는 호기심과 ‘성탄을 맞아 좋은 일 한다’는 마음은 막상 그곳에 도착해서 보니 내가 생각한 것과는 많이 달랐다.
제법 좋은 옷을 입은 아이도 있었고, 나이가 적은 아이들은 우리의 방문에 기대감이 섞인 명랑함이 보였다. 그러나 사춘기의 아이들은 얼굴을 숙인 채, 조금 먼 거리에서 힐끔힐끔 우리 쪽을 쳐다보았다. 처음의 이런 서먹한 분위기는 우리가 가져간 선물을 나눠주고 함께 어울려 게임(아마 요즈음 아이들로부터는 원시인 소리를 들었을 - ‘망까기’, ‘다방구’ 등)을 하는 사이 서서히 완화되었다. 이렇게 한바탕 어울린 후, 내년 연말에도 다시 올 것을 기약하고 서서히 헤어지려는 데 한 초등학교 5학년인 듯한 남자 아이가 아쉬움을 삭이며 한마디 툭 던졌다. “여름에 한번 와 보세요” “아니 왜?” 내가 궁금해서 물었다. 나이에 비해 성숙해 보였던 그 아이는 “요즈음처럼 연말과 성탄절에는 배가 터지게 먹지만, 한 여름에는 간장과 꽁보리밥만 놓고 먹지,,,” 하며 말꼬리를 흐렸다.
그 아이의 그 말이 나의 마음을 깊숙하게 찔렀다. ‘연말연시와 성탄에는 우리만 오는 것이 아니라 많은 단체와 교회들이 방문을 하지만, 정작 여름에는 바캉스다, 수련회다 해서 다들 다른 곳으로 관심이,,, 정말 그 아이의 말이 사실일까?’ 나는 그의 말을 왠지 확인(?)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무엇보다 도움이 일회적으로 하고 끝나니 그들이 받게 될 서운함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이듬해 내가 교회의 고등부임원이 되었을 때, 나는 이 이야기를 임원들에게 나누었고 “우리가 한번 여름에 방문해 보면 어떨까?”라고 제의했다. 모두들 나의 제안에 동의했고, 임원들뿐만 아니라 같은 또래 친구들도 그 해 여름방학에 그곳을 함께 방문하기로 했다.
많은 사람들이 강으로 바다로 떠난 한 여름, 갑작스런 우리의 방문에 고아원 관계자들이 놀랬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기뻐한 것은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그 아이의 말대로 한 여름의 식단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그가 나에게 말했던 그대로였다. “형, 내 말 맞지?” 우리를 반겼던 그 아이의 눈빛은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 그때가 그 아이들하고 순수하게 정이 들었고, 우리는 서로 마음을 열고 편지도 주고받았다. 그 후 우리 동기들은 대학생이 되어서도 매년 여름을 휴전선 근처의 고아들과 보냈던 기억이 요즈음 ‘북한 어린이를 위한 동전 모금 통’에 동전을 넣으며 문뜩 떠올랐다.
도움을 받는 쪽에서 정말 힘든 때는 지금처럼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일로 바쁘거나 관심에서 멀어질 때가 아닐까? 도움을 받는 쪽이 가장 도움이 필요할 때가 언제인지를 고려하여 돕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왕에 도움을 받는 사람 편의 필요와 시기까지도 우선하여 지속적으로 한다면, 그분들에게 더 큰 보탬과 위로가 되지 않을까? 성경에 보면 ‘참된 경건’에 대한 정의를 해 놓았다. “하나님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약1:27). 이 말씀은 경건하게 되는 것이 경건하게 되기를 원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도움을 받는 이의 입장을 먼저 살피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뜻이다.
또한 자기의 주장만을 관철시키는 말이나 남의 시시비비를 판단하는 자기의적 행동에서 우리가 경건해 지는 것이 아니라, 물질과 인간관계에서 소외된 이웃과 굶주린 동족을 먼저 돌아보는 실천에서 ‘경건’은 시작된다는 뜻도 된다. “여름에 한번 (와)보세요!” 30여 년 전, 한 고아가 나에게 했던 말이다. 현재 굶주림이 심해가는 이북의 어린이들이 만약, 우리가 사는 세상과 우리들이 즐기는 여름을 알게 된다면 과연 어떤 말을 우리에게 할까? ‘평화와 사랑의 답’은 그들의 요청 속에 들어있고, 그 요청에 응답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마련되어 가는 것을 ……
‘과연 그곳은 어떤 곳일까?’ 라는 호기심과 ‘성탄을 맞아 좋은 일 한다’는 마음은 막상 그곳에 도착해서 보니 내가 생각한 것과는 많이 달랐다.
제법 좋은 옷을 입은 아이도 있었고, 나이가 적은 아이들은 우리의 방문에 기대감이 섞인 명랑함이 보였다. 그러나 사춘기의 아이들은 얼굴을 숙인 채, 조금 먼 거리에서 힐끔힐끔 우리 쪽을 쳐다보았다. 처음의 이런 서먹한 분위기는 우리가 가져간 선물을 나눠주고 함께 어울려 게임(아마 요즈음 아이들로부터는 원시인 소리를 들었을 - ‘망까기’, ‘다방구’ 등)을 하는 사이 서서히 완화되었다. 이렇게 한바탕 어울린 후, 내년 연말에도 다시 올 것을 기약하고 서서히 헤어지려는 데 한 초등학교 5학년인 듯한 남자 아이가 아쉬움을 삭이며 한마디 툭 던졌다. “여름에 한번 와 보세요” “아니 왜?” 내가 궁금해서 물었다. 나이에 비해 성숙해 보였던 그 아이는 “요즈음처럼 연말과 성탄절에는 배가 터지게 먹지만, 한 여름에는 간장과 꽁보리밥만 놓고 먹지,,,” 하며 말꼬리를 흐렸다.
그 아이의 그 말이 나의 마음을 깊숙하게 찔렀다. ‘연말연시와 성탄에는 우리만 오는 것이 아니라 많은 단체와 교회들이 방문을 하지만, 정작 여름에는 바캉스다, 수련회다 해서 다들 다른 곳으로 관심이,,, 정말 그 아이의 말이 사실일까?’ 나는 그의 말을 왠지 확인(?)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무엇보다 도움이 일회적으로 하고 끝나니 그들이 받게 될 서운함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이듬해 내가 교회의 고등부임원이 되었을 때, 나는 이 이야기를 임원들에게 나누었고 “우리가 한번 여름에 방문해 보면 어떨까?”라고 제의했다. 모두들 나의 제안에 동의했고, 임원들뿐만 아니라 같은 또래 친구들도 그 해 여름방학에 그곳을 함께 방문하기로 했다.
많은 사람들이 강으로 바다로 떠난 한 여름, 갑작스런 우리의 방문에 고아원 관계자들이 놀랬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기뻐한 것은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그 아이의 말대로 한 여름의 식단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그가 나에게 말했던 그대로였다. “형, 내 말 맞지?” 우리를 반겼던 그 아이의 눈빛은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 그때가 그 아이들하고 순수하게 정이 들었고, 우리는 서로 마음을 열고 편지도 주고받았다. 그 후 우리 동기들은 대학생이 되어서도 매년 여름을 휴전선 근처의 고아들과 보냈던 기억이 요즈음 ‘북한 어린이를 위한 동전 모금 통’에 동전을 넣으며 문뜩 떠올랐다.
도움을 받는 쪽에서 정말 힘든 때는 지금처럼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일로 바쁘거나 관심에서 멀어질 때가 아닐까? 도움을 받는 쪽이 가장 도움이 필요할 때가 언제인지를 고려하여 돕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왕에 도움을 받는 사람 편의 필요와 시기까지도 우선하여 지속적으로 한다면, 그분들에게 더 큰 보탬과 위로가 되지 않을까? 성경에 보면 ‘참된 경건’에 대한 정의를 해 놓았다. “하나님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약1:27). 이 말씀은 경건하게 되는 것이 경건하게 되기를 원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도움을 받는 이의 입장을 먼저 살피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뜻이다.
또한 자기의 주장만을 관철시키는 말이나 남의 시시비비를 판단하는 자기의적 행동에서 우리가 경건해 지는 것이 아니라, 물질과 인간관계에서 소외된 이웃과 굶주린 동족을 먼저 돌아보는 실천에서 ‘경건’은 시작된다는 뜻도 된다. “여름에 한번 (와)보세요!” 30여 년 전, 한 고아가 나에게 했던 말이다. 현재 굶주림이 심해가는 이북의 어린이들이 만약, 우리가 사는 세상과 우리들이 즐기는 여름을 알게 된다면 과연 어떤 말을 우리에게 할까? ‘평화와 사랑의 답’은 그들의 요청 속에 들어있고, 그 요청에 응답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마련되어 가는 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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