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을 전한 박영희 목사

지난 24일 베다니교회(담임 최창효 목사)에서 개최된 상기하자 6.25 연합 기도 성회에서 박영희 목사는 평양신학교 재학시절을 회고하며 동방의 예루살렘이라 불린 평양을 파괴한 북한 당국을 규탄했다. 또 한국전쟁은 북한이 남한을 공산화시키기 위해 벌인 전쟁임을 분명히 하고 남한의 국가 정책을 비방하고 한국 전쟁을 오해케 하는 북한의 술수에 속지 말라고 강조했다.

그는 6.25 이전의 평양은 동방의 예루살렘과 같은 곳이었다고 설명했다. 박 목사에 따르면 당시 평양은 평양시내에 장로교만 70개가 있었고 주일에는 사람들이 모두 교회에 가서 상점도 모두 문을 닫았을 정도로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뜨거운 도시였다고 한다.

그러나 공산군들은 평양에 있던 기독교인들을 말할 수 없이 핍박하고 죽였다고 토로하며 "UN군이 평양에 들어왔을 때 평양의 기독교인들이 모두 태극기를 들고 거리로 나와 환영했을 정도로 공산군의 핍박은 심했다. 평양이 자유를 찾았던 날의 기쁨을 표현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전쟁의 배후에는 김일성을 앞세운 스탈린이 있었다"며 "2차 세계 대전이 끝나자마자 스탈린은 강한 정부를 구성하고 러시아와 중국, 북한을 공산화 시킨 것으로 모자라 남한까지 공산화 시키려고 작정했었다"고 설명했다.

인천상륙작전을 시작으로 국군과 UN군이 북으로 진격하다 중공군이 내려오자 국군은 북한의 많은 주민들과 함께 후퇴하였는데 당시 박 목사도 북에 있던 600만의 사람들과 함께 내려왔다. 박 목사는 기억을 더듬어 그때가 1950년 12월 4일이라며 영하 20도의 날씨에 기차 지붕까지 사람들이 올라 탈 정도로 피난 가는 사람들이 넘쳐났다고 말했다. 그는 그날 부모님과 헤어져 부모님의 임종은 고사하고 소식도 듣지 못했다며 전쟁의 슬픔을 말없이 삼켰다.

박 목사는 요즘 젊은 사람들 중심으로 한국전쟁을 남한이 먼저 침략한 것이라고 알고 있는 것을 크게 우려했다. 그는 "1950년 6.25일은 주일이었다. 농번기를 맞아 많은 군인들이 집으로 휴가를 갔다. 3일 만에 수도 서울이 함락되고 대전으로 피난을 갔다. 북침이 아닌 남침이라고 하는데 어처구니가 없다"라며 한국전쟁의 실상은 북한이 남한을 공산화 하려고 시작한 전쟁임을 분명히 했다. 이어서 그는 "남한에서 준비를 했다면 3일 만에 서울이 함락되고 군인들이 휴가를 갔겠냐?"고 반문하며 "북한이 공격하며 내려올 때 남한 군인들은 힘도 없이 처참하게 밀리기만 했었다"고 덧붙였다.

윤요한 선교사는 선교보고 시간에 "북에서 인육을 먹는다는 소문이 무성했는데, 탈북자의 증언에 따르면 사실로 밝혀졌다"고 보고했다. 탈북자 증언에 따르면 어느 집에 사람들이 가득 모여 있어 가봤더니 그 집 사람들이 사람을 잡아 인육을 떼어내 시장에 팔고 그 뼈를 아궁이에 숨겨 두었다가 당국에 붙잡혔다는 것이다.

윤 선교사는 "주민들이 사람을 먹는 이런 참혹한 실정인데 백성을 살릴 생각은 하지 않고 미사일 발사에 돈을 쏟아 붓는 정권이 과연 제대로 된 나라인가?"라고 강조하며 "북한 정권에 절대 도움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간증한 탈북자 김00 전도사는 "공식적으로 북한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김정일의 배를 채우고 군대를 강화 시키는 곳에 돈을 주고 있다"며 북한의 환영을 좋아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는 "저들은 모두 평화의 탈을 쓰고 있지만 주민들에게는 각종 만행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을 절대로 잊지 말라"고 당부했다.

끝으로 주완식 목사는 윤요한 선교사의 신간 '탈북자 선교사의 외침'에 대한 서평을 전했다. "이 책은 라디오 한국 5분 칼럼 시간에 북한의 실상을 고발하는 내용을 묶은 것이다. 북한 주민이 왜 굶어 죽는지에 대한 이유가 잘 나온다. 김일성 동상이 3만 8천개가 세워져 있고 김정일은 부인이 너무 많아 누가 부인인지 공식적으로 밝히지도 않는다. 이런 크고 작은 북한의 그릇된 실상을 사진과 함께 담았으며 중국에서 학대받는 탈북자들의 실상도 고발하고 있다는 소중한 책"이라고 평했다.

한편 박영희 목사는 탈북자 구호기관의 필요를 역설하며 "북에서 내려온 피난민들이 오갈 곳이 없을 때 서울 영락교회가 북한 구호기관을 만들었다. 피난민을 위해 교육관을 모두 개방하였고 그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을 때 모두 먹였듯이 각 도시마다 옛날 영락교회와 같은 구호 기관이 세워지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기도성회 참석자들이 말씀을 듣고 있다


▲축도 함시용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