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 헌팅턴은 그의 저서를 통해 기독교 중심의 서구 사회와 이슬람 세계 사이에 대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고 암시했다. 2001년 9·11테러, 2003년 이라크 전쟁이 이를 확증해 준 축소판이라는 것이다. 지금도 종교 단체 간 대결, 신학적 대결, 영적 현상 및 회심 대결 등에서 양 종교는 팽팽한 긴장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테러와 대 테러 전, 종교 박해와 같은 형태로도 대결은 계속되고 있다.

이슬람은 어떤 종교인가? 그들은 무엇을 믿으며, 무엇을 말하는가?

기독일보에서는 김덕래, 초미성 선교사의 글을 통해 이슬람과 무슬림에 대한 궁금증을 하나하나 풀어간다.


▲초미성, 김덕래 선교사(왼쪽부터)
1980년대, 한국은 해외 여행이 자유롭지 못했다. 오늘 우리 대부분은 그런 날들을 기억조차 못하고 있고 또 어린 세대는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도, 할 필요도 못느낀다.

그런 시절에 우리는 해외 선교사로 파송되었다. 여권을 받는 것 조차 기적으로 여기던 때 선교에 대해 많은 체계적 준비도 없이 그것도 이슬람 국가인 파키스탄에 선교사로 가게 되었다. '무식이 용감'이라고 아는 바가 별로 없었기에 두려움이 없었나 보다. 그저 죽으면 죽으리라는 한국 기독교 신앙의 원조를 가슴에 품고 거룩한 땅 파키스탄에 들어가 지낸 15여년의 세월들을 생각해 보면 웃음과 눈물이 가슴에 스며든다.

파키스탄에 있던 어느날 우연히 텔레비전 속의 비행기와 건물들이 화염에 싸인 장면을 보며 영화인지 현실인지 분간하지 못할 때, 거리에 나온 사람들의 함성을 들을 수 있었다. 성조기가 불 태워지는 것을 보았고 그 무엇을 향한 성난듯 흥분한 그들의 눈에서 공허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9/11로 인해 우리는 파키스탄을 떠나야 했다.

9/11 이후 많은 사람들이 물었다. 이슬람은 도대체 어떤 종교인가? 이슬람은 테러를 신성시하는, 폭력을 사랑하는 종교인가? 평화를 사랑한다는 그들의 말은 모순인가, 위선인가? 등등. 이슬람에 대한 서적들도 그 어느 때보다 많이 출판되었다.

그 이후 이슬람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교회마다 이슬람 국가에 나가 있는 선교사들을 위해 무척 열심히 기도하기 시작했고 파키스탄이나 아프가니스탄이 많은 교회의 초관심 선교지가 되기도 했다. 아프가니스탄의 선교의 문이 열리는 듯 하였고 선교후보생들이 이슬람 선교를 위해 헌신하기도 하였다. 단기선교팀들이 우후죽순처럼 이슬람권을 찾았고 그로 인한 물의도 많이 빚었다. 부정적 여파로 때로는 더 이상 단기선교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으면 하는 씁쓸한 바램도 있었다.

9/11 이후에도 계속적으로 생기는 자살폭탄과 테러, 그 전쟁의 신음은 멈추지 않았다. 심지어 이제는 무슬림들이 세계를 어떻게 이슬람화하고 있는지, 그 성장 속도는 얼마나 빠른지. 그래서 세계는 곧 이슬람화 될 것임을 예견하는 듯한 말들도 공공연히 듣고 있다.

'혼돈'이라는 단어가 우리 가운데 크게 거하고 있음에 가장 기본적인 것에 충실해야 하는 필요를 깨닫게 되었다. '무슬림은 누구인가? 이슬람은 무엇인가? 어떻게 그들을 사랑의 복음으로 품을 수 있을까? 그들이 원하는 사랑은 무엇일까?' 고민을 갖고 우리는 3년 전 처음 LA지역에서 이슬람 퍼스펙티브세미나를 시작하게 되었고 뉴욕에서도 지난 두 달간 두 번 하게 되었다. 매 번 매우 긍정적인 흥미로운 결과를 보며 이슬람 선교에 대한 하나님의 때를 느낄 수 있었다.

이제 이슬람에 관한 컬럼을 시작하며 가장 기본적 질문을 하고 싶다. 왜 우리는 이슬람을 알아야 하는가?

첫째, 이슬람은 세계에서 기독교 다음으로 큰 종교이다. 미국에서도 곧 두번째로 큰 종교가 될 것이다. 어디서나 무슬림을 보게 된다. 내 옆 집에 사는 이도 무슬림.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미국 시민권자이지만 히잡을 쓰고 학교를 다닌다. 꾸란 교육을 위해 인근 모스크에도 정규적으로 나간다. 학교 성적도 뛰어 나다. 백인, 흑인 가리지 않고 미국사람들이 무슬림이 되고 있다.

어디 미국만 그런가? 한국에서도 이젠 모스크의 숫자가 많아져 쉽게 모스크를 보게 된다. 이슬람이 좋아 이슬람으로 개종한 한국 청년들도 많다. 지식인들도 포함된다. 한국에 일하러 온 무슬림들과 결혼하여 무슬림이 된 한국 처녀들은 어떤가? 이제 무슬림은 외면할 수 없는 함께 공존해야 하는 바로 내 이웃이 되어 버렀다.

둘째, 이슬람은 유대교와 기독교와 매우 흡사하다. 그래서 무슬림들은 기독교인들에게 '형제'라고 부르기도 한다. 같은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한다. 좀 왜곡되기는 했어도 성경적 이야기를 꾸란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같은 뿌리로 시작했어도 기독교와 이슬람은 전혀 다른 종교이기에 우리에게는 정확한 정보가 있어야 한다. 이슬람을 역사적, 종교적, 문화적등 다양한 관점에서 보며 이해할 때 불필요한 혼돈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게 된다.

셋째, 무지로 인한 증오와 두려움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여기저기서 들려 오는 소식에 의하면 곧 한국은 이슬람 종주국이 될 듯 하며, 이슬람의 급성장으로 우리의 종말이 이슬람과 대적될 수 밖에 없는 운명을 느끼게도 한다. 이슬람 포비아, 정확한 지식은 우리로 하여금 두려움에서 자유롭게 한다. 그리고 대처할 상황에서 지혜를 갖게 한다.

마지막으로, 무슬림은 우리 주님이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신 그 구속의 역사에 함께 존재하기 때문이다.모든 무슬림은 복음을 들을 권리가 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무슬림을 사랑해야 한다. 복음의 핵심이 사랑이고 헌신이요 희생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모든 것을 소중히 여기신 주님이기에 이슬람을 알 때 그 울타리 안에서 삶을 고뇌하는 무슬림을 알 수 있게 된다.

누군가를 알고자 하면 그에 대한 궁금증이 많기 마련이다. 왜 무슬림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나? 왜 무슬림 여자는 부르카를 쓰는가? 무슬림들은 어떻게 구원을 얻는가? 그들에게 예수님은 어떤 존재인가? 왜 그들에게 예루살렘이 그토록 중요한가? 정말 그들은 테러를 용납하며 신성시하는가? 그들은 어떻게 예수를 믿게 되는가?...너무나도 많은 질문들이 떠 오른다. 이 궁금한 것들을 무슬림의 관점에서 보고 이해하고자 할 때 무슬림을 향한 진정한 사랑의 문이 열리게 될 것이다. 그래서인지 다음 글을 더 빨리 쓰고 싶어진다.

김덕래, 초미성 선교사
WEC 파키스탄 선교사. 이슬람 퍼스펙티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