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짧은 기독교 역사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활발한 선교활동을 펼치고 있는 나라로, 해외에 흩어져 사는 한인들은 고국보다 더 뜨거운 열정으로 선교에 앞장서고 있다.
교회는 이민사회서 가장 중요한 한인커뮤니티다. 미국으로 건너 온 첫 한인들은 인천의 교인들이 중심이 되었으며, 1965년 이후 새로운 이민법에 따라 미국으로 이주한 이들도 교회를 사회활동의 중요한 터전으로 생각했다.
교회를 통해 고국의 소식을 듣고, 교회에서 교제하며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공항에 내린 첫 순간부터 교회의 안내를 받아 집을 구하고, 직장을 구하고, 자동차를 등록하고, 자녀들을 취학 시키는 등 생활 전반적인 것까지 교회는 친형제 이상으로 도움을 줬다.
교회와 사회는 뗄레야 뗄 수 없는 존재다. 교회의 사회정치 참여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던 부정적으로 바라보던 지금까지 교회가 부패했을 때 사회도 부패했었다. 교회가 건강할 때 사회도 건강했다.
본지는 이처럼 중요한 기능을 감당하고 있는 뉴욕·뉴저지 지역 40개 교회의 담임 목회자를 만나 청소년 사역, 교회의 사회적 책임, 뉴욕교계의 부흥 등 다양한 이슈들에 대한 목회자들의 의견을 듣는다. 40개 교회는 각 교단별로 안배했으며 그 14번째로 뉴욕교회(대한예수교장로회 순장)를 담임하고 있는 김은철 목사를 만났다.
뉴욕교회는 1977년 고국을 떠나 온 다섯 가정을 주축으로 시작됐다. 11월 4일 예배 처소를 YMCA로 옮기고 교회명을 'The Pure Presbyterian Church'로 등록했다. 김은철 목사는 1994년 한국서 건너와 뉴욕교회를 담임하고 있다. 뉴욕교회는 다민족 사회 속에서 건강한 교회로 자라기 위해 1)한 가족같은 교회 2)중보기도하는 교회 3)사랑으로 섬기는 교회 4)일군을 양성하는 교회 5) 선교하는 교회 비전을 갖고 있다.
-편집자 주-
1. 시대의 흐름을 따라 교인들의 모습도 변해가고 있다. 이에 대한 경험한 바를 말해달라.
모태신앙으로, 교회 다니는 부모님을 보며 자랐다. 어머님은 개인 일 보다는 교회를 우선으로 생각하셨다. 교회에 헌신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자랐다. 어른들은 내 일을 하다가도 교회당을 짓는 데 가서 직접 벽돌을 나르며 도왔다. 신앙인으로서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그렇게 섬기던 분들이 70년 대 미국으로 건너 와 이민교회를 세우셨다. 교회를 먼저 섬기는 대단한 헌신을 보여주셨다. 다음 세대에게서 이런 헌신을 볼 수 없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그러나 그들이 받은 교육과 그들의 생활이 한국의 헌신적인 분위기와는 거리가 있다는 것을 이해한다. 한 편으로는 '다음 세대에게서 교회에 대한 헌신과 사랑을 볼 수 있을까'하는 생각에 염려가 되기도 한다.
감사한 것은 1.5세, 2세 중에 신앙의 대를 이어 교회 일꾼으로 세워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자라면서 보았던 어른들의 교회에 대한 헌신을 바탕으로 교회 일에 참여하고 있다.
2. '신앙의 전수'를 언급했는데, 이를 위해 교회가 어떤 노력을 해야하는가?
교회가 '교육'에 힘써야 한다.
어른들은 '교회가 아이들을 가르쳐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미국식 교육 방법에 적응한 아이들에게 한국식 신앙의 장점들을 어떻게 배우게 해야할 지 고민된다.
교회는 한글을 가르쳐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을 심어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장을 보면, 교사가 한글에 대한 자신감이 없고, 아이들이 보다 잘 알아들을 수 있는 영어로 복음을 전해야 하지 않는가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대안으로 우리 교회는 한글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또한 절기예배는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앉아 예배드린다. 절기예배 전에는 아이들에게 부모세대의 찬송을, 부모세대에게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찬송을 미리 가르친다.
개인적으로 평신도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가정 예배를 통해 이제껏 살아온 신앙의 삶을 자녀들에게 가르쳐달라'는 것이다.
3. 북한 선교에 대해 한인 교회들이 나서고 있다. 뉴욕교회는 어떻게 북한 선교를 바라보고 접근하고 있는가.
직접적으로 북한 선교를 위해 나서지는 않고 있다. 지금까지는 탈북자를 위해 써달라는 뜻을 담아 주시는 교인들의 헌금을 모아 탈북자 선교 기관에 전달했다. 탈북자, 북한 선교는 비밀리에 이뤄지고 있어서 교회가 직접 나서기는 쉽지 않다.
지난 해 부터는 북한 선교에 대해 비전을 갖게 됐다. 북한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다. 단동에 기도하는 집을 마련하고 입주예배를 드렸다. '마가의 다락방'이라고 명명한 그 집에서는 신의주가 보인다. 1년 내내 상주할 수는 없지만 교인들이 방문해 기도하고 있다.
지금 당장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않지만, 북한 선교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할 계획이다.
4. 한인 커뮤니티 내 교회의 역할이 크다. 커뮤니티를 위해 봉사하고 있는 일은.
성도들을 영적, 신앙적으로 돌보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터라 교회 목회에만 신경써왔다. 성도들이 크리스천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양육해왔다. 한 편으로는 커뮤니티를 위해 폭넓게 활동하지 못한 것이 아쉽기도 하다.
예전에는 이민자들을 위해 '에덴유치원'을 운영했던 적이 있다. 저렴한 가격에 좋은 교사진이 갖춰져 있어 소문이 나 많은 아이들이 입학했다. 그런데 갑자기 시 교육국과 환경국, 소방서에서 유치원을 방문해 문제를 삼았다. 알고 보니 유치원을 생업으로 하는 한인들이 신고한 것이었다. 한인들을 도와주고자 시작한 일이 오히려 그들에게 해를 끼쳤다는 생각에 과감히 접었다.
그래도 한글학교만은 모국어 전수를 위해 고수하고 있다. 이와 함께 노인을 위해 월, 수, 금 주 3일 영어공부 교실을 개강하고 있다.
토요일 오전에는 전도를 위해 히스패닉 형제 자매들에게 빵을 나눠주고 있으며, 1년에 한 번 그들을 초청해 잔치를 열고 있다.
5. 수평이동이 잦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리 교회의 경우 주일 1, 2부 예배를 드린다. 1부에는 낯선 사람들이 많이 찾아온다. 다른 교회에서 방문한 이들이 많다는 뜻이다.
찾아오는 모든 이들을 새교인이 아닌 새가족으로 받아들인다. 기존 교회에서 직분을 가졌던 분들은 출석 후 1년이 지나고 다녔던 교회로부터 이명 증서를 갖고 와야 직분이 인정된다. 다른교회에서 오셨던 분들이 우리 교회에 머무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직분이나 사역을 맡지 않으면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수평이동을 바람직하게 보지는 않지만 외면할 수는 없다.
6. 전도하는 한인 교회들이 줄어간다. 뉴욕교회에서는 어떻게 전도에 나서고 있는가.
매주 주말 베드로선교회가, 매달 3, 4주 주일 선교회들이 전도지를 들고 노방전도에 나선다. 노방전도는 교인들의 신앙 훈련에 도움이 되지만 전도지로 전도되는 경우는 드물다. 관계 전도를 통해 교회에 오는 경우가 많다.
7. 전 세계적으로, 특히 한국의 무슬림 비율이 늘어나고 있다. 무슬림 선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제까지 무슬림 선교에 대해 고민해 볼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 무슬림이 누구인지 배울 기회를 하나님께서 주셨다. 오는 8월, 2박 3일 간 모로코에 머물 기회가 생겼다. 그 때 직접 무슬림을 보고, 그들이 누군지 현지 선교사에게서 배우고자 한다.
역사적으로나 무엇으로나 그들은 분명히 선교의 대상이다. 그들에게도 하나님이 있지만 그들의 하나님은 알라다.
그들이 한국을 선교의 전략 기지로 삼고자 한다는 소식을 매체를 통해 접했다. 한국은 예로부터 모든 종교를 포용하고 있다. 게다가 한국인은 부지런하다. 이런 이유가 한국이 그들에게 더 매력적이지 않을까 한다. 무슬림이 한국으로 밀려오는 이 때 그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
그래서 선교사들의 사역이 귀하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남미 선교에 관심이 많아 코스타리카, 니카라과 등지를 방문했다. 니카라과의 경우 일본인이 놓아준 다리가 즐비하다. 다리 위에는 양 쪽에 일본 국기와 니카라과 국기가 나란히 걸려있다. 장기적으로 투자하며 깊숙히 자리잡은 일본에 비해 한국인은 그들에게 물건을 팔기 바쁘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일본에게 없는 '선교사'가 있다. 한인 선교사들은 고아원, 홈리스, 병원, 학교 등 국가가 못하는 일을 사역으로 하고 있다. 이와 같이 이슬람권에 선교사들이 들어가 헌신하면 큰 열매가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8. 교인들에게는 어떤 것을 강조하는가.
'생활'이다. 크리스천으로서의 생활 말이다. 성경에 따라 바르게 생활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선한 영향력, 복음의 영향력을 끼치지 않을까. 크리스천으로 올바로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전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교회는 이민사회서 가장 중요한 한인커뮤니티다. 미국으로 건너 온 첫 한인들은 인천의 교인들이 중심이 되었으며, 1965년 이후 새로운 이민법에 따라 미국으로 이주한 이들도 교회를 사회활동의 중요한 터전으로 생각했다.
교회를 통해 고국의 소식을 듣고, 교회에서 교제하며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공항에 내린 첫 순간부터 교회의 안내를 받아 집을 구하고, 직장을 구하고, 자동차를 등록하고, 자녀들을 취학 시키는 등 생활 전반적인 것까지 교회는 친형제 이상으로 도움을 줬다.
교회와 사회는 뗄레야 뗄 수 없는 존재다. 교회의 사회정치 참여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던 부정적으로 바라보던 지금까지 교회가 부패했을 때 사회도 부패했었다. 교회가 건강할 때 사회도 건강했다.
본지는 이처럼 중요한 기능을 감당하고 있는 뉴욕·뉴저지 지역 40개 교회의 담임 목회자를 만나 청소년 사역, 교회의 사회적 책임, 뉴욕교계의 부흥 등 다양한 이슈들에 대한 목회자들의 의견을 듣는다. 40개 교회는 각 교단별로 안배했으며 그 14번째로 뉴욕교회(대한예수교장로회 순장)를 담임하고 있는 김은철 목사를 만났다.
뉴욕교회는 1977년 고국을 떠나 온 다섯 가정을 주축으로 시작됐다. 11월 4일 예배 처소를 YMCA로 옮기고 교회명을 'The Pure Presbyterian Church'로 등록했다. 김은철 목사는 1994년 한국서 건너와 뉴욕교회를 담임하고 있다. 뉴욕교회는 다민족 사회 속에서 건강한 교회로 자라기 위해 1)한 가족같은 교회 2)중보기도하는 교회 3)사랑으로 섬기는 교회 4)일군을 양성하는 교회 5) 선교하는 교회 비전을 갖고 있다.
-편집자 주-
1. 시대의 흐름을 따라 교인들의 모습도 변해가고 있다. 이에 대한 경험한 바를 말해달라.
모태신앙으로, 교회 다니는 부모님을 보며 자랐다. 어머님은 개인 일 보다는 교회를 우선으로 생각하셨다. 교회에 헌신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자랐다. 어른들은 내 일을 하다가도 교회당을 짓는 데 가서 직접 벽돌을 나르며 도왔다. 신앙인으로서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그렇게 섬기던 분들이 70년 대 미국으로 건너 와 이민교회를 세우셨다. 교회를 먼저 섬기는 대단한 헌신을 보여주셨다. 다음 세대에게서 이런 헌신을 볼 수 없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그러나 그들이 받은 교육과 그들의 생활이 한국의 헌신적인 분위기와는 거리가 있다는 것을 이해한다. 한 편으로는 '다음 세대에게서 교회에 대한 헌신과 사랑을 볼 수 있을까'하는 생각에 염려가 되기도 한다.
감사한 것은 1.5세, 2세 중에 신앙의 대를 이어 교회 일꾼으로 세워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자라면서 보았던 어른들의 교회에 대한 헌신을 바탕으로 교회 일에 참여하고 있다.
2. '신앙의 전수'를 언급했는데, 이를 위해 교회가 어떤 노력을 해야하는가?
교회가 '교육'에 힘써야 한다.
어른들은 '교회가 아이들을 가르쳐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미국식 교육 방법에 적응한 아이들에게 한국식 신앙의 장점들을 어떻게 배우게 해야할 지 고민된다.
교회는 한글을 가르쳐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을 심어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장을 보면, 교사가 한글에 대한 자신감이 없고, 아이들이 보다 잘 알아들을 수 있는 영어로 복음을 전해야 하지 않는가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대안으로 우리 교회는 한글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또한 절기예배는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앉아 예배드린다. 절기예배 전에는 아이들에게 부모세대의 찬송을, 부모세대에게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찬송을 미리 가르친다.
개인적으로 평신도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가정 예배를 통해 이제껏 살아온 신앙의 삶을 자녀들에게 가르쳐달라'는 것이다.
3. 북한 선교에 대해 한인 교회들이 나서고 있다. 뉴욕교회는 어떻게 북한 선교를 바라보고 접근하고 있는가.
직접적으로 북한 선교를 위해 나서지는 않고 있다. 지금까지는 탈북자를 위해 써달라는 뜻을 담아 주시는 교인들의 헌금을 모아 탈북자 선교 기관에 전달했다. 탈북자, 북한 선교는 비밀리에 이뤄지고 있어서 교회가 직접 나서기는 쉽지 않다.
지난 해 부터는 북한 선교에 대해 비전을 갖게 됐다. 북한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다. 단동에 기도하는 집을 마련하고 입주예배를 드렸다. '마가의 다락방'이라고 명명한 그 집에서는 신의주가 보인다. 1년 내내 상주할 수는 없지만 교인들이 방문해 기도하고 있다.
지금 당장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않지만, 북한 선교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할 계획이다.
4. 한인 커뮤니티 내 교회의 역할이 크다. 커뮤니티를 위해 봉사하고 있는 일은.
성도들을 영적, 신앙적으로 돌보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터라 교회 목회에만 신경써왔다. 성도들이 크리스천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양육해왔다. 한 편으로는 커뮤니티를 위해 폭넓게 활동하지 못한 것이 아쉽기도 하다.
예전에는 이민자들을 위해 '에덴유치원'을 운영했던 적이 있다. 저렴한 가격에 좋은 교사진이 갖춰져 있어 소문이 나 많은 아이들이 입학했다. 그런데 갑자기 시 교육국과 환경국, 소방서에서 유치원을 방문해 문제를 삼았다. 알고 보니 유치원을 생업으로 하는 한인들이 신고한 것이었다. 한인들을 도와주고자 시작한 일이 오히려 그들에게 해를 끼쳤다는 생각에 과감히 접었다.
그래도 한글학교만은 모국어 전수를 위해 고수하고 있다. 이와 함께 노인을 위해 월, 수, 금 주 3일 영어공부 교실을 개강하고 있다.
토요일 오전에는 전도를 위해 히스패닉 형제 자매들에게 빵을 나눠주고 있으며, 1년에 한 번 그들을 초청해 잔치를 열고 있다.
5. 수평이동이 잦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리 교회의 경우 주일 1, 2부 예배를 드린다. 1부에는 낯선 사람들이 많이 찾아온다. 다른 교회에서 방문한 이들이 많다는 뜻이다.
찾아오는 모든 이들을 새교인이 아닌 새가족으로 받아들인다. 기존 교회에서 직분을 가졌던 분들은 출석 후 1년이 지나고 다녔던 교회로부터 이명 증서를 갖고 와야 직분이 인정된다. 다른교회에서 오셨던 분들이 우리 교회에 머무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직분이나 사역을 맡지 않으면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수평이동을 바람직하게 보지는 않지만 외면할 수는 없다.
6. 전도하는 한인 교회들이 줄어간다. 뉴욕교회에서는 어떻게 전도에 나서고 있는가.
매주 주말 베드로선교회가, 매달 3, 4주 주일 선교회들이 전도지를 들고 노방전도에 나선다. 노방전도는 교인들의 신앙 훈련에 도움이 되지만 전도지로 전도되는 경우는 드물다. 관계 전도를 통해 교회에 오는 경우가 많다.
7. 전 세계적으로, 특히 한국의 무슬림 비율이 늘어나고 있다. 무슬림 선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제까지 무슬림 선교에 대해 고민해 볼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 무슬림이 누구인지 배울 기회를 하나님께서 주셨다. 오는 8월, 2박 3일 간 모로코에 머물 기회가 생겼다. 그 때 직접 무슬림을 보고, 그들이 누군지 현지 선교사에게서 배우고자 한다.
역사적으로나 무엇으로나 그들은 분명히 선교의 대상이다. 그들에게도 하나님이 있지만 그들의 하나님은 알라다.
그들이 한국을 선교의 전략 기지로 삼고자 한다는 소식을 매체를 통해 접했다. 한국은 예로부터 모든 종교를 포용하고 있다. 게다가 한국인은 부지런하다. 이런 이유가 한국이 그들에게 더 매력적이지 않을까 한다. 무슬림이 한국으로 밀려오는 이 때 그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
그래서 선교사들의 사역이 귀하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남미 선교에 관심이 많아 코스타리카, 니카라과 등지를 방문했다. 니카라과의 경우 일본인이 놓아준 다리가 즐비하다. 다리 위에는 양 쪽에 일본 국기와 니카라과 국기가 나란히 걸려있다. 장기적으로 투자하며 깊숙히 자리잡은 일본에 비해 한국인은 그들에게 물건을 팔기 바쁘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일본에게 없는 '선교사'가 있다. 한인 선교사들은 고아원, 홈리스, 병원, 학교 등 국가가 못하는 일을 사역으로 하고 있다. 이와 같이 이슬람권에 선교사들이 들어가 헌신하면 큰 열매가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8. 교인들에게는 어떤 것을 강조하는가.
'생활'이다. 크리스천으로서의 생활 말이다. 성경에 따라 바르게 생활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선한 영향력, 복음의 영향력을 끼치지 않을까. 크리스천으로 올바로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전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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