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바뀌는 현상을 들판의 초목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철새의 계절이 오면 떼 지어 먼 곳으로 날아가는 기러기 떼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기러기 떼의 나는 모습은 그 자체도 아름답지만 여러 가지 과학적 방법으로 기러기를 추적한 조류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보면 사람들에게도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첫째. 기러기는 혼자 나는 것보다 떼를 지어 날 때 71%나 더 오래 날 수 있습니다. 10%, 20%의 상승효과만 있다 해도 엄청난 것인데 71%의 상승효과는 믿어지지 않는 수치입니다. 이는 혼자 하는 것보다 함께할 때 나타나는 시너지 효과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피조물을 함께 살아야 하는 공동체적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공동체와 무관하게 살 수 있는 존재는 하나도 없습니다. 성령의 역사는 하나 되게 하는 것이요, 사단의 역사는 분열되게 하는 것입니다.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가면서 내 자신의 삶이 모든 사람들을 하나 되게 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분리된 인생들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기 위해서 예수님은 자신이 찢김을 당하시고 피를 다 쏟으셨습니다.

둘째. 기러기는 왜 V자 대형으로 나는가? 이것이야말로 누구도 생각지 못한 창조주의 지혜입니다. V대형으로 날면 공기대(Swatch of air)가 형성되어 뒤따르는 기러기들이 날기 쉽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철저히 서로 도와주며 날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보기도 좋지만 단순히 보기 좋게 하기 위해서 V자를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뒤에 있는 동료를 조금이라도 편히 날게 하기 위해서 V자를 만드는 것입니다. 따라서 가장 앞에서 나는 리더 기러기가 가장 빨리 지치게 됩니다. 이것을 아는 기러기들은 가끔 위치를 바꾼다는 것입니다. 특정 기러기에게만 힘든 일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교대로 위치를 바꾸어 힘든 일을 나누어 하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맡겨진 임무를 충실히 감당할 뿐만 아니라 때때로 필요를 따라 상대를 돕고 짐을 나누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운 공동체 생활 모습입니다. 기러기의 나는 모습 속에서 자신보다 오히려 남을 배려하는 가슴 뭉클한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남을 배려하는 협동정신에 있어서 이토록 완벽한 공동체가 있을 수 있을까? 부끄러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셋째. 기러기들은 날면서 계속 웁니다. 이것은 힘들어 지르는 비명이 아닙니다. 기러기의 울음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닙니다. 하나는 자기의 위치를 알림으로써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서로를 격려하는 나팔소리와 같은 것이라고 합니다. 힘겹게 먼 길을 날면서도 가족과 동료를 격려하는 기러기의 울음소리에서도 우리는 배워야 합니다. 기러기들은 대륙을 지나고 대양을 건너 참으로 먼 여행을 합니다. 인생이 지나고 나면 짧다고 하지만 때로는 멀고도 먼 여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가족은 멀고도 먼 여행을 평생 함께 하는 공동운명체입니다. 상대방 때문에 힘들다고 비명을 지르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격려하는 따뜻한 마음이 언어생활에서도 나타나야 합니다. 삶은 언어와 행동으로 이루어집니다. 서로를 향한 배려와 협력이 행동으로, 언어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말이지만 결과는 매우 치명적일수도 매우 유익할 수도 있습니다. 아무 의미 없는 것 같은 기러기의 울음소리 한마디가 그토록 중요한 역할을 한다면 사람의 언어야 말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겠습니까?

넷째. 만일 기러기 한 마리가 아프거나 부상으로 함께 여행을 계속하지 못하게 될 경우 반드시 서너 마리의 동료가 이 낙오자와 더불어 머문다고 합니다. 동료의 불행을 함께 짊어지는 모습은 죄로 인해 사망과 저주의 구덩이에 빠진 인생을 구하시기 위해 오신 예수님의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요즘 세상 같으면 겉으로는 위로하는 것처럼 말하면서 경쟁자의 낙오를 기뻐할지 모르겠으나 기러기들은 불행당한 동료를 따라 낯선 땅에 머물며 그가 회복되기까지 기다려 준다는 것입니다. 자신도 보호자 없는 신세임에도 불구하고 남편과 두 아들을 잃고 홀로 된 시어머니 나오미를 모시기 위해 끝까지 따라갔던 룻이 생각납니다. 인생의 행복과 성공은 남의 희생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남을 위한 나의 희생에서 얻어 집니다. 동료의 불행을 나의 불행으로 받아들이고 함께 고통을 나누는 모습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며, 그리스도인의 삶인 것입니다. 함께 울고 함께 웃으며 생사를 같이하는 것이 사랑이요, 행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