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어렸을 때 동네 아이들과 소꿉장난하며 놀던 시절이 기억납니다. 철수는 아빠 역할을 하고 영회는 엄마 역할, 그리고 옆집 진순이와 석영이는 애기 역할을 하며 놀던 소꼽장난입니다. 이러한 소꼽장난은 세대를 거치면서 소꿉장난 놀이기구를 장난감 회사에서 만들면서 좀 더 고급화되었지만 우리 어렸을 때만 해도 그런 놀이기구가 없어서 주로 흙장난을 하며 소꿉장난을 하던 것을 기억합니다.

흙을 쌀 씻듯이 씻고 불에 얹혀서 밥을 하고 국을 끓이고 만두를 빚고, 엄마 역할을 하는 영희는 수건을 머리에 동이고 열심히 방 청소를 하면서 곧 퇴근할 남편, 철수를 기다립니다. 그러면 아빠 역을 하는 철수가 여지없이 비틀비틀 집으로 들어오는 시늉을 합니다.

술 취한 음성으로 "여보, 나 왔소. 문 열어!" 하고 소리를 지르면 엄마는 앙칼진 목소리로 "또 먹었어...또?" 하고 소리를 지르고, 부부간의 말다툼이 벌어지면, 애기 역할을 하는 진순이는 앙하고 울어대기 시작합니다. 가정의 단면도가 마치 microcosm처럼 축소되어 어린 아이들의 소꿉장난에 나타났던 것을 기억합니다. 요즈음 아이들도 그 옛날처럼 소꿉장난을 할까?

요즘 들어 이러한 소꿉장난이 마치 현실의 세계를 축소판(microcosm)처럼 우리의 현실을 나타내게 하는 여러가지 TV 프로그램이 한국에 나오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으로 "우리 결혼했어요"라는 프로그램으로 연예인들이 가상으로 결혼하여 그 결혼 생활의 단면도를 마치 사실인냥 리얼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기타 시골에서 전원 생활을 "체험"하면서 현실처럼 그 체험을 소개하면서 현세대의 단면도를 보이는 대표적인 소꿉장난들이 공중파를 타고 있습니다.

소꿉장난이 차지하는 영적 의미는 대단히 큽니다. 우리들은 우리의 부모들이 하는 것을 그대로 답습하듯이 배우면서 자랐습니다. 부모들이 하는 것은 좋은 것이던 나쁜 것이던 할 것 없이 그대로 모방하면서 그 안에서 우리의 자아를 하나하나 형성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더 성장하면서 학교에서 이론적이고 학문적인 것들을 배우면서 이렇게 어려서부터 우리가 가지고 있던 microcosm적인 상(像-image)들을 계속해서 허물고 새롭게 세우면서 성장해왔지만 결국 어른이 되고 우리가 반복하는 것은 학교에서 배운 이론이 아니라 어릴 때 소꿉장난하면서 모방했던 부모들의 모습이 우리에게 그대로 나타나는 수가 많은 것을 결코 무시할 수가 없습니다.

소꿉장난은 우리의 신앙생활에서도 그대로 반영됩니다. 우리가 가정에서 어떻게 신앙을 지켜나가는가? 공적인 자리(?)라고 할 수 있는 교회에서가 아니고 가장 사적인 자리라고 할 수 있는 가정에서 어떻게 하나님께 기도하고 어떻게 말씀과 찬양을 일상의 삶에서 유지하는가하는 것은 우리의 어린 자녀들에게도 그대로 소꼽장난처럼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인생의 반항기와 이성교육등이 자녀들에게 반대급부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그러한 영향은 시간이 지나다 보면 오히려 한시적이 되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결국 소꿉장난처럼 모방하던 어릴 때 배운 신앙은 장성한 후에도 그대로 우리의 삶에 나타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본능적이고 원천적인 반응(intuitive response)은 우리가 어릴 때 배운 것이 잠재적으로 그리고 습관적으로 튀어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가정의 달을 맞아 우리가 스스로에게 진지하게 물어야할 질문이 있습니다.

우리의 자녀가 오늘 동네 아이들과 소꿉장난을 하고 논다면 어떤 모습으로 가정과 교회, 그리고 그들의 삶을 연출할까? 우리는 스스로 자녀들에게 좋은 role model의 역할을 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