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새벽예배를 드리고 나면 몇몇 교우님들과 함께 인근에 있는 빠네라(Panera)에 가서 커피와 베이글로 아침식사를 하면서 성도의 교제를 나누는 시간을 갖습니다. 새벽예배를 통해 말씀의 은혜를 받은 후, 함께 살아가는 신앙의 동반자들과 간단하지만 함께 식사를 하며, 서로 살아가는 삶의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또 다른 은총이라고 생각합니다. 작년에 작고하신 곽종문 장로님께서는 생전에 매일 새벽예배를 드리셨는데 예배 후 함께 커피와 베이글을 나누시면서,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는 말씀을 자주 하시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난 월요일 아침에는 오랜만에 황병국 장로님께서 자리를 함께 하셨는데, 얼마 전 아들 내외가 한국으로 이사를 한 후 요사이 김 권사님과 함께 살아가며 두 분이 나누는 정 깊은 이야기를 나누어 주셨습니다. 워낙 황 장로님께서는 김 권사님에 대해서는 항상 “부인”이라고 하시면서 요즘 젊은이들이 들으면 닭살이 돋는다고 할 만큼 부부 금실이 좋다는 소문을 아마 여러분들도 이미 들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바로 그 전날 저녁 무렵, 김 권사님이 뜨개질을 하고 있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니 그 모습이 참 아름답더랍니다. 그렇게 권사님 뜨개질하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입이 궁금하다는 권사님을 위해 단숨에 가게로 달려가서 건빵을 사다 주었더니 권사님께서 그렇게 맛있게 잡수시더라는 요지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이틀 후인 수요일 아침에는 아주 오랜만에 황 장로님께서 김 권사님과 함께 빠네라에 오셨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다가 화제가 황 장로님의 ‘건빵 사건’으로 이어졌는데, 실제 그 사건의 주인공이신 김 권사님의 증언(?)은 황 장로님의 이야기와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장로님을 통해 들을 때는, 그날 김 권사님께서 건빵이 먹고 싶다고 해서 장로님께서 사다 드렸더니 권사님이 그렇게 맛있게 먹더라고 들었는데, 김 권사님의 말로는 자신은 건빵이 별로 인데 장로님께서 건빵을 사다 주시면서 ‘맛있지.. 맛있지’ 하기에 그냥 ‘그렇다’고 했노라고 하시면서, 사실 본인은 건빵은 별로이고 생과자를 좋아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권사님은 장로님께서 건빵을 사다 준다고 하시길래, ‘설마 건빵이야 사오시겠나...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내가 좋아하는 생과자를 사다 주겠지’ 하고 기대를 했었는데 정말로 건빵을 사다 주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은 생과자인데 남편이 건빵을 사다준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말은 그렇게 했어도 아마 남편이 생과자를 사올 거라 생각하며 기다렸는데, 정말로 건빵을 사온 남편에 대해 실망을 했을 권사님의 입장이 이해가 되면서, 아내가 건빵을 좋아하는 것 같아서 아내가 좋아하는 건빵을 단숨에 사다 주고는 건빵을 먹는 아내에게 맛있느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대답까지 하는 것을 들으며 흐뭇해했는데, 사실 자기는 건빵보다 생과자를 더 좋아하고 자기가 건빵이 먹고 싶다고 하면 남편이 생과자를 사다줄 줄로 알았다는 아내의 이야기가 얼마나 황 장로님을 황당하게 했을지도 이해가 되었습니다.

황 장로님 내외분의 건빵과 생과자 이야기를 들으면서 크게 공감을 한 것은 우리네 삶속에서도 이런 비슷한 일들이 비일하게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상대방도 당연히 좋아하리라고 생각한다거나, 말은 그렇게 했지만 마음은 달리 생각하고 있으면서 그걸 상대방이 몰라주어서 섭섭하다는 이야기를 주변에서 자주 듣기도 하고 직접 경험할 때가 적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관계인 부부 사이에서 이런 오해는 자주 일어나서 서로가 배우자에게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정확하게 말해 주지 않으면 어떻게 알 수 있느냐’고 불평하는가 하면, ‘말로 표현하지 않는다고 마음까지도 모르느냐’고 윽박지르기가 일쑤입니다.

이런 오해와 그로 인한 불평이 우리들에게 왜 그리 유난히 많은지 생각해 보니 물론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성격이나 문화적 성향도 없지 않지만 우리는 자라나면서 공교육이든지 아니면 사교육이든지 어떤 교육 과정을 통해서 다른 이들에게 자신의 의견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방법이나 상대방의 이야기를 통해 말하는 이를 바르게 이해하는 소위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에 대한 아주 기초적인 지식조차 습득하지를 못했다는 치명적인 부족함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가르침의 부족, 대화를 나누는 방법과 기술 습득의 부족은 비단 사람과 사람사이의 대화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신앙인들에게는 하나님과의 대화인 기도생활에서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대화를 나눈다고 하면서 자신의 요구만 큰 소리로 통보하는 식의 기도를 열정적인 기도라고 평가되고, 정작 자기가 마음속에 생각하는 것과 입술로 고백하는 것이 다른 정직하지 못한 기도들이 많이 있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더 늦기 전에 바람직한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배워야 할 듯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