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가 지구화의 도전에 직면해 있다.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에 한국교회가 어떻게 대응하는지 배우길 원한다.”

1975년 한국 땅을 처음 밟았던 현대신학의 대가 위르켄 몰트만(J. Moltmann) 교수가 83세의 나이로 다시 한국을 방문했다. 처음 그를 한국에 인도했었던 한신대의 초청을 받아 제3차 해외 석학 초청 강연회 연사로 참석하기 위함이다.

현재 독일 튀빙겐대학교 신학대 명예교수로 7,80년대 한국 민중신학자들에게 영감을 부여했던 몰트만 교수는, 11일 오후 3시 한국기독교회관 7층 예배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한국에 대한 애정과 격려를 전했다.

칼 바르트(Karl Barth) 이후 현대 신학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신학자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그는 84년 ‘민중-한국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의 신학’이라는 책으로 독재와 맞섰던 한국의 민중신학을 독일에 처음 소개하기도 했으며, 당시 한국 민중신학을 이끌었던 서남동, 안병무, 문익환 목사 등과 교제하며 한국교회 진보신학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로 평가된다.

1964년 일약 세계 신학계의 주목을 받게 만든 책 ‘희망의 신학’은 초월적 하나님의 부정 또는 하나님의 초월성에만 집중했던 양극단에서 벗어나 역사적 현실에 대한 관심과 철저한 종말론적 재해석을 강조했다.

몰트만 교수는 인사말에서 “지금까지 아마 8번 정도 한국을 방문한 것 같다”며 “34년 전 한국은 군부독재 치하에서 한신대 교수님들이 쫓겨나거나 감옥에 갇히기도 했었다. 79년 방문 때는 상황이 너무 악화되어 저 자신도 강연할 수 없었고, 서남동 교수님도 학교에서 쫓겨나 경주에 함께 여행했던 기억도 난다”고 소회를 전했다.

곧바로 그는 독일의 통일 과정을 경험한 신학자로서 한반도 분단과 통일에 대한 관심을 전하며 “한반도 통일은 사회적 정의와 평화스런 방법으로 실현되길 바란다. 소위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 의한 흡수 통일이 아닌, 인간적 정의가 실현되는 통일이 되길 바란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현대신학의 한 축을 이끌어 온 신학자를 대면한 자리인 만큼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질문이 쏟아져 나왔고 흥미로운 답변도 이어졌다.

유럽 교회의 변화와 새로운 부흥을 위해 선교에 대한 새로운 개념의 필요성을 강조한 그는 “선교란 생명의 복음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새로운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것인데 자칫 종교간 대화와 혼동되어선 안 된다”며 “상대방의 종교는 인정하지만 서로 배우는 수준에서 머문다면 선교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교회의 일치를 이끌었던 이로서 “옛날에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일치를 통해 성장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한국교회는 일치보다 분열을 통해 성장한 독특한 모습을 보였다”고 뼈아픈 농담을 전하기도 했다.

변화된 한국 신학 풍토에 대한 평가로는 “전 세계가 신 자유주의적 지구화에 어떻게 대응하는가는 나라마다 교회마다 다르다”며 오히려 “한국교회가 어떻게 대응하는지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또 75년 방문 당시 한국교회 대표적 지도자인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와 영향을 주고받았던 기억도 꺼냈다.

마지막으로 왜 교회의 일치와 연합이 필요하느냐는 질문에는 “하나되길 원하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 때문”이라고 짧고 명쾌한 답변을 내놓았다. 다음은 기자회견 일문일답.

“종교간 대화와 선교를 혼동해선 안돼”
조용기 목사와 교제했던 기억 전하기도


-기독교의 큰 흐름이 유럽에서 아시아로 변하고 있다.

“유럽의 교회가 점점 쇠퇴하고 아시아의 교회가 부흥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교회가 성장은 했으나 내부의 갈등이 심한 것도 사실이다. 유럽의 그리스도교회가 새롭게 부흥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새로운 출발을 위해선 선교에 대한 새로운 개념이 필요하다. 선교란 생명의 복음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새로운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것인데 이것이 자칫 종교간 대화와 혼동이 생겨선 안 된다. 상대방의 종교는 인정하지만 서로의 종교를 배우는 수준에서 머문다면 선교라 말할 수 없다.

옛날 그리스도의 교회는 일치를 통해 성장하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한국교회는 일치보다 분열을 통해서 성장한 독특한 모습을 보였다. 교회의 일치를 위해선 꼭 필요한 두 가지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가르친 성만찬과 기도다. 이 두 가지는 교회 일치를 위해 변할 수 없는 요인이다.”

-자신의 신학이 한국교회와 신학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나.

“스스로 판단한다는 게 좀 그렇지만 희망의 신학보다 십자가 신학이 영향을 끼치지 않았나 생각한다. 민중신학자들이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였지는 모르지만, 희망컨대 그리스도인들이 폭력적인 정권에 저항하는 데 신학적으로 도움이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80년대 초반 한국을 방문했을 때 인상 깊었던 것은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심한 고문을 받고 입원까지 했던 목사님을 방문했었는데, 그 때 옥에 갇힌 목사님의 어머님이 검은색 숄을 쓰고 명동성당 앞에서 기도했던 장면이 기억난다. 그 어머니들이 썼던 검은 숄을 독일에 소개하고 한국에 고난받는 그리스도인들과 함께하기 위해 주일 그 숄을 썼던 적이 있다.

글을 쓴 사람과 읽는 사람에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다른 문제라 생각한다. 70년대 왔을 때 여의도순복음교회에 초청받았는데 그때 저에게 요청한 주제가 ‘희망의 신학’이었다. 조용기 목사와의 대화 가운데 조 목사님이 그동안 개인의 구원, 영혼 구원만을 강조했는데 앞으론 사회 구원, 생태계 구원, 치유까지도 많이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때 저도 깊은 인상을 받고 그 경험을 신문에 쓰기도 했다.”

-7,80년대 한국을 방문했을 때와 지금 한국교회의 신학이 어떻게 변한 것 같나.

“일단 군부독재는 더 이상 아니다. 경제적 상황도 달라졌다. 한국사회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지구화의 도전에 직면해 있다. 신자유주의적 지구화다. 어떻게 대응하느냐는 나라마다 교회마다 다르다. 한국교회가 어떻게 대응하는지 배우고 싶다.”

-80이 넘은 나이인데도 건강이 넘치신다. 어떻게 관리하시나. 최근 독일에서의 일상은 어떠하셨나.

“지금까지 솔직히 늙을 시간이 없었다. 현재 <희망의 윤리>라는 책을 쓰고 있다. 생명의 윤리, 땅의 윤리, 정의의 윤리를 주제로 한다.”

-왜 교회가 일치해야 하나.

“간단히 답하겠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되길 원하셨던 예수님의 기도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