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알라스카에서 여름을 두번째 보내고 있다. 여름마다 집에서 직접 기른 상추며 오이들로 식탁이 풍성한데 맛있기도 하지만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다.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라온 나는 사실 이런 야채들을 키우는 것을 가까이 볼 기회가 없었는지라 볼 때마다 신기하고 감격(?)스럽기까지 하다.

며칠전에도 집사님의 비닐하우스에서 한쪽은 오이들이 다른 한쪽에서는 토마토들이 자라고 있었다. 그런데 토마토가 자라는 곳을 봤더니 땅에 떨어진 것들이 많이 있었다. 속으로 아까운 생각이 들기도 하고 해서 물어보니 좋지 않은 것들은 미리 따서 버려야 나머지 토마토들이 알차게 큰다는 것이었다.

내가 직접 야채를 키우지는 않지만 나도 들어서 아는 이야기이다. 좋지 않은 열매들을 만약 아깝다고 그냥 함께 두면 좋은 열매도 부실하게 되어 결국 못먹게 된다는 말이겠지. 이런 것을 생각하며 혹시 우리에게 있는 좋지 않은 열매들은 무엇이 있는지를 묵상해 보았다.

더 많이 이해하고 사랑하지 못하는 마음들, 자존심들, 다른 사람들보다 나를 먼저 생각하는 이기심들, 내 기준과 생각으로 판단하고 말하여 상처주는 일들… 많은 사람들이 분명히 자신속에서 버려야 하는 것들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버리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나 자신 역시 버려야 하는 많은 것들을 쥐고 있으면서 아직도 과감히 버리지 못하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아마도 버린뒤에 느껴지는 어떤 상실감 때문이 아닐까? 버려져 땅에 떨어져 있는 열매들을 보면서 저것은 괜찮은 것이었는데, 조금만 더 가지고 있었더라면 나에게 어떤 유익을 주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들.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자존심을 버리고 이웃을 사랑할려고 하니 내 마음과는 달리 속도 없는 사람인양 취급하는 무시와 업신여김의 눈총들….

그러나 이런 상실감들은 버리고 난뒤에야 풍성한 열매를 맺게되는 자연의 이치를 미처 생각지 못한 어리석음이요, 가문의 자랑도 자신의 학식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던 사도 바울에게 부어졌던 엄청난 은혜를 믿지 못하는 불신앙 이리라. 또한 만물을 다스리시는 신의 모습을 버리고 낮고 낮은 자리에 오셔서 가난하고 병든자들과 함께 하시며 결국 십자가에 자신의 생명을 버리심으로 나에게, 우리에게 구원이라는 큰 열매를 허락하신 예수님을 생각한다. 그리고 오늘 나는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 떨어진 토마토와 그 위에 탐스럽게 열린 열매를 번갈아 보며 묵상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