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열렸던 베트남 선교 20주년 기념대회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한 사람이 있었다. 대회 실무적인 부분을 책임 맡아 인도했던 김수진(가명) 간사다. 내빈들을 인도하고 대회를 원활하게 이끄느라 정신 없었지만 표정만큼은 마치 소풍 전날 들뜬 어린아이 같았다.
그녀에게 이번 대회가 더욱 뜻 깊었던 것은 이 대회가 본인 스스로 베트남 선교사로 첫 발걸음을 내딛는 자리였기 때문이었다. 마지막 날 파송의 시간, 10여 명의 선교사들과 나란히 선 자리에서 김 간사는 유난히 많은 눈물을 쏟았다. 안수를 받기 위해 앉은 자리에서도 한참을 일어나지 못했다. 다시 환한 웃음을 찾은 그녀는 나중에 뜻밖의 간증을 전했다. “장요나 선교사님이 아니었으면 이미 죽은 목숨이었을 수도 있어요. 공짜로 다시 얻은 삶인데 하나님께 아낌없이 드리고 싶은 마음 뿐입니다.”
얼마 전 세상에 떠들썩하게 했던 연쇄살인범 강호순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녀는 “힘들 때가 있어도 하나님이 살리셨다는 그때의 생각을 하면서 마음을 다시 회복하곤 한다”고 말했다.
경기도 군포에서 초·중 입시 학원을 운영하느라 결혼도 하지 않았던 그녀는 애초부터 선교에 대한 열정이 있었다. 장요나 선교사와는 지난해 단기선교 차 베트남에 머물게 되면서 처음 만났다. 베트남 선교의 아버지라 불리는 장 선교사에게서 “선교란 죽음을 감내하는 것”이라는 진정한 목자로서의 모습에 감동을 받았고, 당초 말레이시아로 선교를 떠나려던 계획을 변경해 이후 1년간 선교를 준비해왔다.
그녀는 “그 때가 딱 갈등의 시기였다”고 말했다. 선교에 대한 열정이 있었지만 “꼭 베트남으로 가야 하나”라는 마음이 한쪽에 여전히 자리잡고 있었다. 마침 한국에서 베트남 선교 기념대회가 준비되어 기획실무위원 간사로 섬기기로 마음먹은 때 강호순과 우연히 만나게 됐다. 자녀들의 과외 선생님을 구하고 있던 강 씨에게 한 지인이 학원 원장이자 교육자였던 그녀를 소개시켜 준 것이었다.
때마침 그녀는 기념대회를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어 과외를 다른 사람에게 소개시켜줬다. 하지만 강호순은 그녀에게 자녀의 교육에 대한 고민을 전하고 조언을 구하는 등 계속 접근을 시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당시 선교에 ‘미쳐있던’ 터라 다른 것에는 전혀 관심을 갖지 못했었다”고 말했다.
“오히려 그 친구(강호순)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오직 베트남에서 농업선교를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만 있어 무조건 복음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 선교를 권면했었어요. 미션 마인드만 있다면 누구라도 갈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라고 그녀는 말했다. ‘대담하시다’라는 기자의 표정을 읽었는지 “언론에서 보다시피 (강호순이) 외모는 굉장히 착하게 생겨 의심도 못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강호순이 그간 많은 도움을 줘서 고맙다며 식사를 대접할 것을 거듭 요청해 할 수 없어 약속을 잡았다. 그녀는 하지만 “약속 당일 장요나 선교사님이 기념대회 준비로 한국에 입국하신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존경하는 선교사님을 직접 배웅하지 않을 수 없어 약속을 취소했다”고 했다. 그리고 약속했던 날짜가 지난 지 3일 째 되던 날, TV에서 강 씨가 구속됐다는 뉴스를 접했다.
하나님이 사용하시려고 살리셨다는 마음뿐
교육 경험 살려 국제종합대학 사역이 비전
김 간사는 “소식을 듣고 충격에 위경련을 일으켜 심한 고통을 겪었다”고 했다. 그녀는 “계속된 위경련으로 극심한 고통이 이어져 ‘베트남 선교를 떠나라는 말씀에 무조건 순종하겠다’고 다짐하는 순간 위경련이 멈췄다. 다 알 수는 없지만 하나님이 저를 사용하시기 위해 살려주셨다는 마음뿐이었다”고 말했다. 즉시 학원 등 모든 걸 접고 선교에만 집중했다.
그녀는 “주님의 사역을 하면서 귀한 동역자를 만나게 해주시는 것이 큰 축복”이라며 “장요나 선교사님 역시 죽었다 살아나신 분이고 힘들어도 절대 뒤를 돌아보지 않으시는 모습을 보며 신앙의 큰 도전이 된다”고 말했다.
6월 초 베트남으로 떠난다는 그녀는 횃불선교재단(이형자 권사)에서 설립해 완공을 앞두고 있는 하노이 복지 센터에서 고아원 사역을 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그동안 교육 사업의 경험을 바탕으로 곧 설립될 종합국제대학에서의 사역도 꿈꾸고 있다.
그녀는 “그동안 하나님이 저를 선택해 어려움도 겪게 하시면서 ‘지명해서 쓰겠노라’ 하시는 음성을 늘 느낀다”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파수꾼의 사명을 주셔서 감사하고 그 사명을 죽기까지 감당하길 원한다. 늘 하나님께서 지켜주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전했다.
그녀에게 이번 대회가 더욱 뜻 깊었던 것은 이 대회가 본인 스스로 베트남 선교사로 첫 발걸음을 내딛는 자리였기 때문이었다. 마지막 날 파송의 시간, 10여 명의 선교사들과 나란히 선 자리에서 김 간사는 유난히 많은 눈물을 쏟았다. 안수를 받기 위해 앉은 자리에서도 한참을 일어나지 못했다. 다시 환한 웃음을 찾은 그녀는 나중에 뜻밖의 간증을 전했다. “장요나 선교사님이 아니었으면 이미 죽은 목숨이었을 수도 있어요. 공짜로 다시 얻은 삶인데 하나님께 아낌없이 드리고 싶은 마음 뿐입니다.”
얼마 전 세상에 떠들썩하게 했던 연쇄살인범 강호순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녀는 “힘들 때가 있어도 하나님이 살리셨다는 그때의 생각을 하면서 마음을 다시 회복하곤 한다”고 말했다.
경기도 군포에서 초·중 입시 학원을 운영하느라 결혼도 하지 않았던 그녀는 애초부터 선교에 대한 열정이 있었다. 장요나 선교사와는 지난해 단기선교 차 베트남에 머물게 되면서 처음 만났다. 베트남 선교의 아버지라 불리는 장 선교사에게서 “선교란 죽음을 감내하는 것”이라는 진정한 목자로서의 모습에 감동을 받았고, 당초 말레이시아로 선교를 떠나려던 계획을 변경해 이후 1년간 선교를 준비해왔다.
그녀는 “그 때가 딱 갈등의 시기였다”고 말했다. 선교에 대한 열정이 있었지만 “꼭 베트남으로 가야 하나”라는 마음이 한쪽에 여전히 자리잡고 있었다. 마침 한국에서 베트남 선교 기념대회가 준비되어 기획실무위원 간사로 섬기기로 마음먹은 때 강호순과 우연히 만나게 됐다. 자녀들의 과외 선생님을 구하고 있던 강 씨에게 한 지인이 학원 원장이자 교육자였던 그녀를 소개시켜 준 것이었다.
때마침 그녀는 기념대회를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어 과외를 다른 사람에게 소개시켜줬다. 하지만 강호순은 그녀에게 자녀의 교육에 대한 고민을 전하고 조언을 구하는 등 계속 접근을 시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당시 선교에 ‘미쳐있던’ 터라 다른 것에는 전혀 관심을 갖지 못했었다”고 말했다.
“오히려 그 친구(강호순)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오직 베트남에서 농업선교를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만 있어 무조건 복음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 선교를 권면했었어요. 미션 마인드만 있다면 누구라도 갈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라고 그녀는 말했다. ‘대담하시다’라는 기자의 표정을 읽었는지 “언론에서 보다시피 (강호순이) 외모는 굉장히 착하게 생겨 의심도 못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강호순이 그간 많은 도움을 줘서 고맙다며 식사를 대접할 것을 거듭 요청해 할 수 없어 약속을 잡았다. 그녀는 하지만 “약속 당일 장요나 선교사님이 기념대회 준비로 한국에 입국하신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존경하는 선교사님을 직접 배웅하지 않을 수 없어 약속을 취소했다”고 했다. 그리고 약속했던 날짜가 지난 지 3일 째 되던 날, TV에서 강 씨가 구속됐다는 뉴스를 접했다.
하나님이 사용하시려고 살리셨다는 마음뿐
교육 경험 살려 국제종합대학 사역이 비전
김 간사는 “소식을 듣고 충격에 위경련을 일으켜 심한 고통을 겪었다”고 했다. 그녀는 “계속된 위경련으로 극심한 고통이 이어져 ‘베트남 선교를 떠나라는 말씀에 무조건 순종하겠다’고 다짐하는 순간 위경련이 멈췄다. 다 알 수는 없지만 하나님이 저를 사용하시기 위해 살려주셨다는 마음뿐이었다”고 말했다. 즉시 학원 등 모든 걸 접고 선교에만 집중했다.
그녀는 “주님의 사역을 하면서 귀한 동역자를 만나게 해주시는 것이 큰 축복”이라며 “장요나 선교사님 역시 죽었다 살아나신 분이고 힘들어도 절대 뒤를 돌아보지 않으시는 모습을 보며 신앙의 큰 도전이 된다”고 말했다.
6월 초 베트남으로 떠난다는 그녀는 횃불선교재단(이형자 권사)에서 설립해 완공을 앞두고 있는 하노이 복지 센터에서 고아원 사역을 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그동안 교육 사업의 경험을 바탕으로 곧 설립될 종합국제대학에서의 사역도 꿈꾸고 있다.
그녀는 “그동안 하나님이 저를 선택해 어려움도 겪게 하시면서 ‘지명해서 쓰겠노라’ 하시는 음성을 늘 느낀다”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파수꾼의 사명을 주셔서 감사하고 그 사명을 죽기까지 감당하길 원한다. 늘 하나님께서 지켜주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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