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에서 시작한 경제위기가 세계적인 추세로 확산해 나아가면서 정부가 엄청난 스티물레스 재정정책과 베일아웃 금융구제정책을 실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위기의 폭과 길이는 점입가경인 듯한 체감을 느끼게 합니다.

그래서 요즈음에는 ‘경제의 위기’는 ‘경제학의 위기’, 더 나아가 ‘경제학자의 위기’라고 주장하는 논의들이 분분합니다. 쏟아져 나오는 경제지표마다 극히 비관적인데, 고등논리를 바탕으로 발달해 온 현대경제학은 무슨 해명과 무슨 처방을 내놓고 있는가,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경제학자들이나 주요경제정책결정의 자리에 앉아 있는 경제학자들은 무슨 소용이 있는 것인가 하는 주장입니다.

1930년 대공황이후 70년만에 닥치는 최악의 경제위기를 해명하고 처방책을 마련해 놓아야 할 현대경제학이나 경제학자들이 해명도 못하고 일치된 분명한 처방전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한 불신이 고조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면 왜 현대경제학이 위기를 맞고 있으며, 불신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까?

현대경제학이 전개하는 이론이나 제시하는 정책을 뒷받침하는 근본전제가 잘못된 것이 아니냐하는 비판에서 위기와 불신이 배태되지 않았나 여겨집니다.

현대경제학이 근본바탕으로 하고 있는 근본전제는 사회의 모든 경제행위와 관련해서 규정하고 주장하는 인간정체성에 관한 것입니다. 현대경제학이 대전제로 설정한 인간정체성은 ‘경제인’ (Homo Economicus)입니다. 경제인의 내용은 경제학이 학문으로 발달하기 시작한 18세기 중반부터 형성되어 왔지만 경제인이라는 용어가 공식적으로 사용된 것은 19세기말에서 20세기로 넘어 오면서부터입니다.

경제인이란 한마디로 정의하면 경제행위에 관련한 ‘합리성’ (Rationality)을 간직한 인간을 지칭합니다. 합리성은 이간의 이성을 바탕으로 하여 경제에 관련해서 합리적인 지식을 얻고 합리적인 판단/결정을 내리는 인간특성을 의미합니다.

합리적인 지식이란 미래에 대한 포괄적인 지식을 내용으로 하고 있으며, 합리적인 판단/결정이란 자기이해(Self-Interest)를 기반으로 최소한의 희생을 들여 최대한의 공리(Maximum Utility Function)를 얻는 판단/결정을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대 경제인이라는 근본전제가 문제가 되기 시작하는 것은 인간의 이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미래에 대한 지식과 확신이 ‘지나치게’ 확대되고, 또한 공리최대화가운데 자기이해추구를 위한 판단/결정이 ‘지나치게’ 집중하게 되는 경향에서 발생합니다. 다시 말해 인간의 이성이란 인간의 이성이 최고라고 ‘지나치게’ 추구하다 보면 악을 잉태할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이는 지금의 경제위기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현대자본주의는 금융자본주의로서 금융시장의 효율적 움직임이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의 원활한 역동성을 진작시킵니다. 금융시장의 효율성은 그 시장의 경제주체인 금융자금관리자의 경제행위에 달려있습니다. 금융자금관리자는 ‘경제인’이기 때문에 자기 합리성을 기준으로 하여 미래에 대한 ‘과도한’ 지식과 확신을 갖고 자기이해추구를 위하여 투자에 ‘과도한’ 판단/결정을 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경향이라 여겨집니다.

금융자금관리자들의 과도한 지식/확신과 과도한 판단/결정이 천문학적 숫자의 불실 금융파생상품을 낳았고 그것의 도산으로 인하여 빙하사태같은 금융위기/경제위기를 결과하게 된 것입니다.

경제위기의 어려움을 체감하면서 현대경제학의 근본인간정체성인 ‘경제인‘에 대하여 기독교의 기본인간정체성인 ‘죄인’과 연관하여 묵상함으로서 구원을 받았지만 세상, 특히 경제세상을 살아가는 기독인에게 하나님의 진리를 터득케 하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기독교의 신앙은 모든 인간은 ‘죄인’, 즉 ‘타락한 인간’이라는 인간정체성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죄와 타락이란 하나님을 떠난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을 떠났다는 것은 인간의 모든 삶, 즉 육신적, 정신적, 영적인 삶이 하나님의 기준에서 벗어난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경제적인 삶과 연관시켜 보면 각종 경제행위에 필요한 지식획득이나 판단/결정을 하나님의 절대적인 기준을 도외시하고 자기의 합리성에만 지나치게 의존하는 죄의 속성을 말합니다. 이러한 죄의 속성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기준에 순종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회복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회복은 먼저 인간의 기본정체성인 ‘죄인’임을 인정하고(회개), 다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죄인’과 ‘경제인’은 어떻게 연결이 됩니까? 모든 지식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에서 나오고, 모든 판단/결정은 하나님으로부터 온다고 솔로몬은 말했습니다. 각종 경제행위에 필요한 지식회득과 판단/결정에 인간의 합리성을 활용한 것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요점은 합리성의 활용에 하나님의 절대적인 기준을 준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합리성도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즉 인간이 타락하기전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현대경제학이 근본전제로 삼고 있는 ‘경제인’에 구원받은 ‘죄인’의 본래 모습을 접목시킬 수 있다고 한다면 ‘경제인’은 새롭게 태어날 수 있을 것이고 현대경제학도 새롭게 태어 나게 될 것입니다.

(백 순, 미국노동성선임경제학자/글로발소사여티자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