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중고등부 세례 및 견신례 예배에 대한 영상을 보여 드렸습니다. 지금까지는 매 년 3부 예배에서 이 예식을 행했는데, 그렇게 하다 보니 예식에 집중하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제한된 시간 안에 모든 것을 다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세례와 견신례만을 위한 예배를 따로 계획했습니다. 처음에는 의견이 분분하여 어려웠으나, 결국 잘 한 일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이번 세례와 견신례를 행하면서 물을 머리에 뿌리는 ‘세례’(baptism by sprinkling)와 몸 전체를 물에 잠그는 ‘침례’(baptism by immersion)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게 했습니다. 연합감리교회는 전통적으로 대부분의 교파들과 마찬가지로 머리에 물을 뿌리는 세례를 행해 왔습니다. 하지만 몸을 물에 잠그는 침례를 행하는 것도 허용하고 있습니다. 저와 동료 목회자들은 이번 예배를 준비하면서 두 종류의 세례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게 했습니다.

이렇게 결정하게 된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세례를 받는 청소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좀 더 강력하게 체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세례 혹은 견신례는 그들의 신앙 여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입니다. 그 예식을 행하는 데 있어서 본인 스스로 어떤 방식을 원하는지를 생각하게 하고 그 의미에 대해 고민하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둘째, 교육적인 효과를 생각했습니다. 두 종류의 세례 의식을 경험하게 되면, 이들이 자라면서 교회 전통에 대해 좀 더 열린 태도와 균형 잡힌 태도를 가지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오래 전에, 감리교회에서 받은 세례는 효력이 없으니 다른 교파에 가서 침례를 받겠다고 고집 피우는 청년을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청년은 오직 침례만이 유효하다고 주장하는 교파의 목회자에게 세뇌를 당했던 것입니다. 일부 교파에서는 예수님이 침례를 받으신 것처럼 우리도 침례를 받아야만 유효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청년에게, “꼭 침례를 받아야만 유효하다는 논리가 옳다면, 꼭 요단강에서 침례를 받아야만 유효하다는 논리도 가능하다”고 말하면서 설득했으나, 결국은 제 허락 없이 다른 교파에 가서 침례를 받고야 말았습니다.

세례든 침례든,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에 받는 세례입니다. 바울 사도는 꼭 할례를 받아야만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고 주장하는 유대인들에게, 진실로 중요한 것은 마음의 할례라고 말했습니다. 세례도 마찬가지입니다. 물을 머리에 뿌리든, 몸을 물속에 담그든, 중요한 것은 마음에 받는 성령의 세례입니다. 성령의 세례가 있으면 머리에 물을 뿌리는 것으로 충분하고, 성령의 세례가 없다면 몸을 수십 번 물에 담가도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 청소년들이 앞으로 두 종류의 세례 예식을 보고 자란다면, 이같이 불필요한 논쟁에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게 될 것이며, 지엽적인 문제들에 대해 너그러운 태도를 취하는 성숙성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음은 뜨겁게, 머리는 차갑게!” 그것이 감리교회의 창시자인 존 웨슬리 목사님의 기도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