훼드럴웨이장로교회 조봉환 목사
날짜 : 2009년 4월 25일(토)
성경본문 : 시편 22편 1-11
이 아침 하나님이 다윗의 심령을 통하여서 우리에게 생명의 양식을 주실 줄 믿습니다. 다윗의 기도 내용을 보면 다윗은 하나님의 버리움을 당한 것처럼, 하나님이 돌아보지 아니하시고 침묵하시는 그 하나님에 대해서 다윗은 정말 애절하게 하나님께 간청하고 절규하는 그런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다윗을 왜 이렇게도 박정하게 대하시는가. 생각해보면 이해가 안 되는 그런 내용입니다. 이 시 전체를 보면 다윗이 죄 때문에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다는 내용은 없습니다. 이 시를 지을 때, 이 기도를 할 때가 다윗이 사울왕에게 쫓김을 받는 상황 속에서 이 기도를 드리는 것으로 학자들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 사울왕의 쫓김을 받는 다윗의 생활의 비참한 실상은 다른 곳에는 찾아보기 힘든데, 여기에서 보면 그 깊이가, 그 비참이 얼마나 큰가 보여줍니다. 이 상황에서 다윗은 사람으로서는 견딜 수 없는 고난과 어려움을 당한 것입니다. 사실 다윗이 사울왕의 칼을 피하면서 600명이 되는 수하에 있는 사람들의 의식주 해결도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가는 곳마다 다윗을 사울에게 고해바치는 이스라엘에 살 수가 없어서 외국까지 가면서 피신하는 그 삶이 얼마나 비참했겠습니까. 그리고 다윗을 만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대부분은 다윗과 사울왕 사이에서 다윗의 비참한 모습을 보고 조롱하는 말을 서슴없이 했고 다윗을 죽일 사람으로 모욕하는 말들을 수없이 많이 했습니다. 그러니 정신적으로도 견딜 수 없는 생활이었고 마치 하나님이 저주하는 사람인 것으로 그렇게 사람들이 여겼습니다.
이런 상황이 너무 어렵고 힘든데 그런데도 다윗은 이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상황 속에서 정말 애절하고 애타게 기도함에도 그 기도에 응답하지 않는 것입니다. 침묵하고 계셨습니다. 왜 하나님은 특별한 죄를 지어서 죄의 징계를 받는 것도 아닌데 다윗의 기도를 듣지 않는 것처럼 침묵하실까요. 어떻게 다윗은 하나님을 붙잡고 믿음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욥기의 욥도 어려움 속에서 계속 기도했음에도 하나님께서 그를 피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앞 뒤 어디를 봐도 계시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계속 기도하였습니다.
우리도 믿음의 길을 가는데 이런 상황을 당할 수 있습니다. 어려운 곤경에 빠져있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해도, 하나님 앞에 부르짖고 눈물을 흘려도 전혀 하나님의 대답이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 왜 하나님께서 들으시지 않으실까, 그래도 하나님을 붙들고 의지하면서 지내야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인자하시고 자비하시고 은혜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우리를 향한 사랑은 변치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고 그 사랑의 크기는 끝이 없는 무궁한 사랑입니다. 그 사랑으로 계속해서 우리를 사랑하고 계시는 것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신음소리도 들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니 이렇게 절규하는 기도를 듣지 않으십니까. 하나님은 들으시고 다 알고 계십니다.
다윗은 사울왕에게 원한을 살만한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사울왕의 칭찬을 받고 사울왕으로 부터 도움을 받아야 할 일을 한 사람이지 사울 왕을 해칠만한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이 다윗이 당하는 어려움은 사람으로서는 당할 수 없는 처절하고 비참한 상황이라 하였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말하기를 6절에, 나는 벌레요 사람이라. 벌레라는 히브리 말의 뜻은 벌레 중에서도 가장 비참한 존재로 자신을 평가하고 자기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욥도 자기의 비참한 모습을 짐승에 비춰서 나는 타조와 이리 같다고 했는데 얼마나 비참한 상황이면 그렇게 말했을까요. 그것은 사람들이 다윗을 사람으로 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가는 곳마다 사울왕의 보호를 받기 위해서 다윗은 무조건 비난하고 조롱하고 훼방하는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백성의 조롱거리가 됐다는 것입니다. 민족의 훼방거리가 된 자신을 바라볼 때에, 사람들이 계속 자기를 비웃고 비난하는 소리를 듣는 이 다윗의 마음속에는 나는 사람이 아니라 벌레라, 구더기라 할 정도로 비참함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 속에서 다윗을 보면 하나님이 자기를 버린 것 같은 현실을 당하고 있으면서도 다윗의 중심 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신령한 믿음이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있습니다. 계속 하나님을 붙잡고 있습니다. 자기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이 날 때부터,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하나님을 의지하는 그런 존재로 태어났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그런 마음은 상황이 어떠하든지 상관없이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전능하시고 하나님은 자기를 건지시는 분이시고 자기를 절대로 버리지 않으시는 그런 전능자의 힘이 되시는 하나님인 것을 다윗은 조금도 의심치 않고 믿는 믿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속에서 다윗은 소망이 하나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봐도 자기의 희망은 하나님, 자기의 현재의 상황이 정말 비참하고 사람으로서는 정말 어려운 지경에서도 그를 건지시는 분, 그의 소망은 하나님입니다. 이 믿음이 다윗의 마음속에 깊숙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이 상황 속에서도 계속 부르짖으면서 22편 후반에 가면 '하나님이 분명히 자기를 건지셨습니다'라고 과거형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자기는 분명히 건짐을 받는다는 표현을 하고 기도를 합니다. 극한 어려움 속에서도 다윗은 절망과 좌절하면서 믿음을 포기한다든지 하나님을 절대로 떠날 이유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다윗을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다윗을 그 어려움 속에 두신 것은 하나님의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가 귀한 믿음을 갖고 있으나 변화될 수 있는 가능성을 아시는 하나님이 그를 연단하고 단련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정말 믿음의 왕으로 쓰시기 위해서 그런 어려운 과정을 오래토록 두고 어려움 속에서 그를 붙드시는 하나님을 체험케 하기 위해서 그 어려운 시련 속에 다윗을 두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절망 속에서도 침묵 속에 가만히 계신 것이 아니고 다윗을 위해서 일을 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다윗의 믿음, 미래를 위해서, 다윗의 복된 승리의 미래를 위해서 하나님이 일을 하고 계십니다. 때가 되니까 하나님이 다윗을 위해 모든 대적자를 물리치시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성공이 되도록 하나님께서 축복을 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다윗이 그 어려움 속에서, 힘든 과정 속에서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믿음의 기도를 계속 한 다윗,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서 놀라운 역사를 이루지 않았습니까. 이것은 마치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수행하는 과정 속에 엄청난 고난과 수난을 받게 하셔서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하며 기도를 할 정도로 어려움 속에 가만히 계시다가 결국 예수님이 수난을 당하신 후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역사를 이루신 것처럼 다윗을 통해서도 그 일을 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진정한 믿음은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간절히 하나님을 버리지 않고 붙잡고 기도하는 기도 속에서 우리 믿음이 형성이 되는 것입니다. 참 믿음은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붙잡는, 정말 절규하면서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붙들고 기도하는 기도 속에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 기도가 성장하는 믿음의 밭입니다. 기도 속에서 우리 신앙이 성장하고 열매 맺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도 우리 생활 속에 떠나지 않는 어려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어려움, 아무리 생각해도 왜 이런 어려움 가운데 있을까 하는 그런 어려움 말입니다. 그 속에서 하나님 앞에 간구해도 응답이 없는 상황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외면하거나 듣지 않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는 침묵이지만 극한 어려움 속에서 기도하는 그 기도 속에서 하나님을 붙잡고 바라보는 그 믿음을 받으시면서 하나님은 일을 하고 계십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이루시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시고 우리의 처절한 비참한 상황보다 몇 십배 몇 백배의 열매로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이 사실을 여러분 마음속에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을 버리지 아니하는 기도 속에서 우리의 믿음은 성장하고 순수하게 되는 것이고 그 믿음이 성장하면서 하나님의 귀하신 뜻이 이루어지고 우리의 모든 비참한 상황이 완전하게 회복되는 역사가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
날짜 : 2009년 4월 25일(토)
성경본문 : 시편 22편 1-11
이 아침 하나님이 다윗의 심령을 통하여서 우리에게 생명의 양식을 주실 줄 믿습니다. 다윗의 기도 내용을 보면 다윗은 하나님의 버리움을 당한 것처럼, 하나님이 돌아보지 아니하시고 침묵하시는 그 하나님에 대해서 다윗은 정말 애절하게 하나님께 간청하고 절규하는 그런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다윗을 왜 이렇게도 박정하게 대하시는가. 생각해보면 이해가 안 되는 그런 내용입니다. 이 시 전체를 보면 다윗이 죄 때문에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다는 내용은 없습니다. 이 시를 지을 때, 이 기도를 할 때가 다윗이 사울왕에게 쫓김을 받는 상황 속에서 이 기도를 드리는 것으로 학자들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 사울왕의 쫓김을 받는 다윗의 생활의 비참한 실상은 다른 곳에는 찾아보기 힘든데, 여기에서 보면 그 깊이가, 그 비참이 얼마나 큰가 보여줍니다. 이 상황에서 다윗은 사람으로서는 견딜 수 없는 고난과 어려움을 당한 것입니다. 사실 다윗이 사울왕의 칼을 피하면서 600명이 되는 수하에 있는 사람들의 의식주 해결도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가는 곳마다 다윗을 사울에게 고해바치는 이스라엘에 살 수가 없어서 외국까지 가면서 피신하는 그 삶이 얼마나 비참했겠습니까. 그리고 다윗을 만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대부분은 다윗과 사울왕 사이에서 다윗의 비참한 모습을 보고 조롱하는 말을 서슴없이 했고 다윗을 죽일 사람으로 모욕하는 말들을 수없이 많이 했습니다. 그러니 정신적으로도 견딜 수 없는 생활이었고 마치 하나님이 저주하는 사람인 것으로 그렇게 사람들이 여겼습니다.
이런 상황이 너무 어렵고 힘든데 그런데도 다윗은 이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상황 속에서 정말 애절하고 애타게 기도함에도 그 기도에 응답하지 않는 것입니다. 침묵하고 계셨습니다. 왜 하나님은 특별한 죄를 지어서 죄의 징계를 받는 것도 아닌데 다윗의 기도를 듣지 않는 것처럼 침묵하실까요. 어떻게 다윗은 하나님을 붙잡고 믿음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욥기의 욥도 어려움 속에서 계속 기도했음에도 하나님께서 그를 피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앞 뒤 어디를 봐도 계시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계속 기도하였습니다.
우리도 믿음의 길을 가는데 이런 상황을 당할 수 있습니다. 어려운 곤경에 빠져있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해도, 하나님 앞에 부르짖고 눈물을 흘려도 전혀 하나님의 대답이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 왜 하나님께서 들으시지 않으실까, 그래도 하나님을 붙들고 의지하면서 지내야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인자하시고 자비하시고 은혜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우리를 향한 사랑은 변치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고 그 사랑의 크기는 끝이 없는 무궁한 사랑입니다. 그 사랑으로 계속해서 우리를 사랑하고 계시는 것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신음소리도 들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니 이렇게 절규하는 기도를 듣지 않으십니까. 하나님은 들으시고 다 알고 계십니다.
다윗은 사울왕에게 원한을 살만한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사울왕의 칭찬을 받고 사울왕으로 부터 도움을 받아야 할 일을 한 사람이지 사울 왕을 해칠만한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이 다윗이 당하는 어려움은 사람으로서는 당할 수 없는 처절하고 비참한 상황이라 하였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말하기를 6절에, 나는 벌레요 사람이라. 벌레라는 히브리 말의 뜻은 벌레 중에서도 가장 비참한 존재로 자신을 평가하고 자기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욥도 자기의 비참한 모습을 짐승에 비춰서 나는 타조와 이리 같다고 했는데 얼마나 비참한 상황이면 그렇게 말했을까요. 그것은 사람들이 다윗을 사람으로 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가는 곳마다 사울왕의 보호를 받기 위해서 다윗은 무조건 비난하고 조롱하고 훼방하는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백성의 조롱거리가 됐다는 것입니다. 민족의 훼방거리가 된 자신을 바라볼 때에, 사람들이 계속 자기를 비웃고 비난하는 소리를 듣는 이 다윗의 마음속에는 나는 사람이 아니라 벌레라, 구더기라 할 정도로 비참함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 속에서 다윗을 보면 하나님이 자기를 버린 것 같은 현실을 당하고 있으면서도 다윗의 중심 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신령한 믿음이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있습니다. 계속 하나님을 붙잡고 있습니다. 자기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이 날 때부터,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하나님을 의지하는 그런 존재로 태어났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그런 마음은 상황이 어떠하든지 상관없이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전능하시고 하나님은 자기를 건지시는 분이시고 자기를 절대로 버리지 않으시는 그런 전능자의 힘이 되시는 하나님인 것을 다윗은 조금도 의심치 않고 믿는 믿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속에서 다윗은 소망이 하나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봐도 자기의 희망은 하나님, 자기의 현재의 상황이 정말 비참하고 사람으로서는 정말 어려운 지경에서도 그를 건지시는 분, 그의 소망은 하나님입니다. 이 믿음이 다윗의 마음속에 깊숙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이 상황 속에서도 계속 부르짖으면서 22편 후반에 가면 '하나님이 분명히 자기를 건지셨습니다'라고 과거형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자기는 분명히 건짐을 받는다는 표현을 하고 기도를 합니다. 극한 어려움 속에서도 다윗은 절망과 좌절하면서 믿음을 포기한다든지 하나님을 절대로 떠날 이유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다윗을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다윗을 그 어려움 속에 두신 것은 하나님의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가 귀한 믿음을 갖고 있으나 변화될 수 있는 가능성을 아시는 하나님이 그를 연단하고 단련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정말 믿음의 왕으로 쓰시기 위해서 그런 어려운 과정을 오래토록 두고 어려움 속에서 그를 붙드시는 하나님을 체험케 하기 위해서 그 어려운 시련 속에 다윗을 두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절망 속에서도 침묵 속에 가만히 계신 것이 아니고 다윗을 위해서 일을 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다윗의 믿음, 미래를 위해서, 다윗의 복된 승리의 미래를 위해서 하나님이 일을 하고 계십니다. 때가 되니까 하나님이 다윗을 위해 모든 대적자를 물리치시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성공이 되도록 하나님께서 축복을 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다윗이 그 어려움 속에서, 힘든 과정 속에서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믿음의 기도를 계속 한 다윗,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서 놀라운 역사를 이루지 않았습니까. 이것은 마치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수행하는 과정 속에 엄청난 고난과 수난을 받게 하셔서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하며 기도를 할 정도로 어려움 속에 가만히 계시다가 결국 예수님이 수난을 당하신 후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역사를 이루신 것처럼 다윗을 통해서도 그 일을 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진정한 믿음은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간절히 하나님을 버리지 않고 붙잡고 기도하는 기도 속에서 우리 믿음이 형성이 되는 것입니다. 참 믿음은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붙잡는, 정말 절규하면서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붙들고 기도하는 기도 속에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 기도가 성장하는 믿음의 밭입니다. 기도 속에서 우리 신앙이 성장하고 열매 맺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도 우리 생활 속에 떠나지 않는 어려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어려움, 아무리 생각해도 왜 이런 어려움 가운데 있을까 하는 그런 어려움 말입니다. 그 속에서 하나님 앞에 간구해도 응답이 없는 상황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외면하거나 듣지 않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는 침묵이지만 극한 어려움 속에서 기도하는 그 기도 속에서 하나님을 붙잡고 바라보는 그 믿음을 받으시면서 하나님은 일을 하고 계십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이루시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시고 우리의 처절한 비참한 상황보다 몇 십배 몇 백배의 열매로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이 사실을 여러분 마음속에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을 버리지 아니하는 기도 속에서 우리의 믿음은 성장하고 순수하게 되는 것이고 그 믿음이 성장하면서 하나님의 귀하신 뜻이 이루어지고 우리의 모든 비참한 상황이 완전하게 회복되는 역사가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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