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목회의 고질 병 가운데 하나는 가족 이기주의이다. 가족의 수장이 바른 신앙을 가진 그룹이 없지는 않다. 일예로 사위의 목회를 배후에서 묵묵히 지원하면서 자녀들의 이탈을 자신의 사후라고 못박으므로 불협화음을 최소화하는 지혜로운 장로가 있다. 그 결과 아름다운 교회를 건축하고 가족외 교우들에게 있는 듯 없는 듯 그림자역을 잘 소화하는 가족을 둔 목회자는 그야말로 행운아이다.

반면에 가족과 교회를 구별하지 못하고 상왕의 자리에서 간섭하므로 가족과 교회가 공중분해 되는 예도 있다. 그러나 재미있는 이민교회의 가족주의 현상은 혈연중심에 머물지 않고 가족 이외의 신앙이익 집단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교회가 내홍에 싸이면 이들은 분봉하는 벌떼처럼 떼를 지어 이동한다. 정탐군을 보내 이동할 교회의 형편을 내밀하게 조사하는 한편 막후교섭을 통하여 자신들의 위치를 다짐받기도 한다. 그렇기에 이들은 옮겨서도 결코 멜팅팟이 되려고 하지 않는다. 교회속에 교회를 구성하고 언제든지 다시 이동할 만반의 준비태세를 갖추고 있다. 인위적으로 친교 좌석 배치를 해보려고 애쓰지만 헛수고이다. 저들은 언제나 한 테이블에 앉으므로 세과시를 한다. 이들은 그룹의 이익만을 위하고 그룹외 외부의 사람들에 대해 무관심하다.

지혜로운 목회자(?)는 이러한 신 가족주의 현상을 역으로 이용하고 저들을 한 단위 사역그룹으로 묶음으로 자신의 목회에 유용화하여 상부상조한다. 그러므로 이유를 묻지 않고 교회의 앞문은 활짝 열려 있고 뒷문도 활짝 열어 놓는다고 기세등등이다. 그러나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러한 신 가족주의의 행동규범은 그룹이 교회내에서 주도권을 갖는데 전투적인 까닭에 언제나 분쟁의 핵이된다는 것이다. 밀월이 끝날 때는 엄청난 댓가룰 치러야 함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떠날때는 말없이 떠나지 않는다. 한 바탕 휘젓고 유유히 사라질때 즈음에는 야곱이 라반에게서 등친 양처럼 배가 되어 있는 경우도 허다하다.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무엇하면 이제는 버젓이 신접 살림을 차리면 그만이다. 이것이 이민 목회의 비애 중에 하나이다.

경제위기 일수록 신가족주의 문화가 새로운 트렌드로 등장할 것이라고 예상한 경제 연구소가 있다. 그리고 여가생활의 중심이 개인에서 가족으로 변하는 패밀리즘이 유행하는 것으로 그 전망은 빗나가지 않았다 한다. 교회가 어려울 수록 이 신 가족주의 파워는 엄청난 도전으로 목회를 시련의 장으로 만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