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그들이 미국에 도착했을 때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들은 가진 것도 없었고 의지할 곳도 없는, 그저 한국전쟁으로만 알려진 동양의 한 나라에서 온 가난한 여성들에 불과했다. 그들은 영어를 배우고 미국문화를 익혀서 미국사회 안으로 발을 디디고 들어갔다. 한인사회가 아직 구성이 돼 있지 않았고, 그들은 원했거나 그렇지 않았거나 미국화 되었다. 결혼도 미국인들과 했다. 맨땅에서 일어서야 했던 그녀들이 찾은 곳은 한인교회였지만 미국인과 결혼한 여성들은 알 수 없는 이질감의 대상이었다. 미국사회에서 동양인, 한인으로 차별받던 그녀들은 한인교회 내에서도 차별감에 시달렸다. 단일민족이어야 한다는 한국적 가치관에 더해 미국에 살면서도 미국을 두려워할 수 밖에 없었던 그 당시 한인사회 분위기에서 미국화 되어 버린 여성들은 왠지 싫고 부담스런 존재였다. 우리는 이들을 ‘이중문화인’이라 부른다.

▲남부시카고한인연합감리교회 이중문화선교회 임원들이 헌신예배에서 찬양하고 있다. 오른쪽에서 다섯번째가 회장 신정옥 집사.
남부시카고한인연합감리교회는 창립된 지 30년이 됐다. 이 교회는 의사와 사업가 그룹, 그리고 이중문화인들이 주축이 되어 성장해 온 독특한 역사를 갖고 있다. 교회 안에는 20년 이상 역사를 가진 이중문화선교회가 있다. 이효삼 담임목사는 “이중문화선교회는 남부시카고교회의 가장 중요한 기둥 중 하나”라고 말한다. 이중문화선교회원들은 남부시카고교회가 어려울 때, 성장해 나갈 때마다 교회의 궂은 일을 도맡아 섬겼다. 한인교회에서조차 차별받던 이들은 오히려 더 열심히, 더 적극적으로 교회를 섬겨 차별을 극복하고 남부시카고교회의 가장 중요한 일원으로 섰다.

현재 남부시카고교회 안에 속한 이중문화선교회는 미국인과 결혼한 한인들이 활동하고 있다. 과거에는 목회자와 평신도가 비슷하게 활동했지만 목회자의 수는 줄어들고 평신도의 수는 많아졌다. 선교회원들 중 일부는 대사회적 사업에 눈을 돌리며 국제결혼가정선교회(국제선)의 모체가 됐고 교회에 남은 이들은 전국 한인 UMC 안에서 이중문화가정교회 전국연합회를 구성했다.

남부시카고교회 이중문화선교회장 신정옥 집사는 “우리 이중문화인들은 어려움 속에서도 꿋꿋한 소나무처럼 자라 왔다”고 자부하며 회원들을 격려했다. 소나무라는 말 속에 담긴, 그들이 세월 속에서 겪은, 지금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그 고충을 누가 다 알 수 있으랴. 신 집사는 76년도에 이민와 미국인과 결혼해 가정을 꾸리고 딸을 훌륭히 키워냈다. 지금의 국제결혼과 당시의 국제결혼은 타인의 시선은 물론 현실까지 많이 달랐다고 한다. “지금 여기 계신 분들은 참고 견디며 아름답게 성장해 오신 분들”이라고 격려한 후 “현재 우리 이중문화선교회는 우리 스스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사역을 넘어 훌륭한 교회 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한 모금도 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우리 이중문화인들은 남부시카고교회의 역사와 함께 해 왔습니다. 우리가 미국에 왔을 때는 한인도 없었고 가족도, 의지할 곳도 없었습니다. 더 미국화 되어야 살아 남을 수 있었고 다 미국 직장에서 돈을 벌고 미국인들과 일했죠. 이중문화인이라는 어려움이 교회 안에서도 있었지만 더 열심히 섬기는 것 외엔 방법이 없었습니다.”

이 교회를 22년째 섬기고 있는 강윤자 권사의 말이다. 강 권사는 42년 전, 이민와 전형적인 이중문화인의 삶을 살았다. 미국 직장에서 일했고 미국인과 결혼했다. 이 지역에서는 잘 알려진 1백여명 한인 입양인의 Grandma로 통한다. 미국인 가정에 입양된 한인 입양인들에게 한인 정체성을 심어 주고, 미국인 부모에게 한인 입양인의 소중함을 알려주는 그녀의 사역은 매달 정기 모임, 절기별 모임이 있을 정도로 활발하다. 한인이지만 한인이 될 수도, 미국인이 될 수도 없는 한인 입양인들은 Grandma에게 “당신은 우리와 같은 존재에요”라고 말한다. 국제선처럼 대사회 사업을 하진 않더라도 교회 안에서 이중문화선교회가 지역사회에 감당하고 있는 일은 적지 않다.

지난 4월 첫째날 이중문화인들은 “이중문화선교회 헌신예배”를 드렸다. 이효삼 담임목사는 “여호와를 도와 준 여사사 드보라”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이 목사는 “드보라는 기도로 세워진 기도하는 사사이며 말씀으로 사람들을 이끄는 지도자였다. 여호와를 도운 용사이면서 연약한 남자 장수들까지 겸손히 이끈 지도자였다”고 정리한 후, “이중문화선교회원들이 드보라처럼 일어나 하나님을 도와 영적 전쟁에서 싸워 이기는 승리자가 되길 바란다”고 격려했다.

▲정은해 목사가 이춘임 씨 사건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이 헌신예배에서는 특별히 정은해 목사(팔로스UMC)를 초청해 이춘임 씨 사건에 대한 보고를 듣고 도움을 줄 방안을 모색했다. 이 씨는 미국인 남편과의 불화와 생활고를 못이겨 1999년 당시 11세였던 딸과 함께 수면제를 과다복용해 동반자살을 시도했지만 미수에 그치고 2002년 8년형을 받았다. 자녀와의 동반자살이 한인들의 정서에서는 그나마 이해가 되는 일이지만 미국사회에서는 친자 살인 미수 등 중범죄로 인정됐다. 이 씨는 국제결혼한 한인여성으로 한인사회와는 관계없이 살아오다 이 사건 이후, 한인사회의 관심과 한인교회의 온정이 답지되자 글렌브룩한인연합감리교회에 출석하며 세례받고 성도가 됐다.

오는 4월 7일 이 씨는 6년만에 가석방된다. 정은해 목사는 “두달에 한번씩 정기적으로 면회를 가면 내가 오히려 위로를 받고 올 정도로 이 씨는 은혜 가운데 뜨겁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으며 과거의 일을 많이 뉘우치고 있다”고 전했다. 정 목사는 “지금부터가 문제다”라고 말했다. 범죄 기록 때문에 취업은 물론 거주지 렌트, 각종 사회활동에 중대한 지장이 있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재 47세인 이 씨는 교도소에서 위생사 자격증, 컴퓨터 자격증, 네일아트 자격증을 취득한 상태지만 미래가 결코 안정적일 수 없다. 정 목사는 “지금부터 우리 한인들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때”라고 강조하며 “현재까지 5천불 가량 지원금이 모인 것 같다. 그리고 물질적 지원 이상으로 성도들의 기도와 격려가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신정옥 집사는 “아직 한인이민 사회보다 국제결혼 사회가 작다. 이민사회가 시작되기 전, 이민 오신 분들이 국제결혼 후 처하게 되는 어려움을 들을 때 참 마음이 아프다. 이 어려움을 몸으로 겪은 우리가 적극적으로 나서자”고 격려했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자신들과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을지 모르는 이중문화인들을 주님의 사랑으로 돕기에 이중문화선교회원들이 손발을 걷을 것은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이날 이중문화선교회원들은 2천5백불을 모금했다. 이와는 별도로 이중문화가정교회 전국연합회(회장 송종남 목사)에서도 이미 이 씨를 위해 5백불의 헌금을 남부시카고교회 이중문화선교회로 보낸 상태다.

한편, 이중문화가정교회 전국연합회는 8월 3일부터 6일까지 몬타나 칼리스펠에서 전국목회자 세미나와 9월 28일부터 10월 1일까지 워싱턴 타코마에서 평신도 영성훈련을 개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