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하사(鯨戰蝦死)라는 말이 있다. 고래 싸움에 새우 사망이란 뜻인데 어쩐 일인지 속담엔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고 풀이하였다. 이 속담은 힘센 사람들끼리 서로 싸우는 중에 공연히 약한 사람이 그 사이에 끼여 아무 관계없이 해를 입을 때 쓰는 말이다.

실제로 고래싸움 사이에 새우가 있을 일은 없다. 고래만큼 큰 크기의 동물 싸움에 보잘것 없는 새우가 그 사이에서 괜히 있다가 해를 보는 경우를 말하는 것뿐이리라! 드라마틱한 상대적 비교를 하기 위해서 고래와 새우라는 동물을 사용한 것뿐인데 인간사회에서는 이보다 더 맛갈진 비유는 없을 것이다.

고부간의 갈등가운데 끼인 남편이나. 교단의 리더쉽의 투쟁아래 희생되는 가여운 교회들과 힘없는 목사들이나 정적들끼리 피튀기는 싸움덕에 앉아서 손해보는 수많은 국민들이 비유에 딱 맞는다 할 것인데 새우에 해당하는 힘없는 자는 참 죽을 맛이다. 홀로된 시어머니와 만만치 않은 며느리 사이의 남편은 잔챙이 새우에 지나지 않는다. 교권없는 목사나 교회가 줄세우기에 항명하면 그 길로 사망선고이다. 국회에서 고성방가도 모자라 기물파손을 예사로 하는 선량은 가둘 염도 못하지만 어쩌다 술취해 노상방뇨하는 서민들에게는 호루라기를 잘도 분다. 문제는 고래싸움에 등 터질 정도만 되면야 아물면 그만이지만 고래싸움 끝에 남을 새우는 없다는데 있다. 말하자면 즉사(卽死)일터이니 영문 모르고 당한 자는 얼마나 억울한 일이랴!

이는 한국에서만 있는 일이라고 천만의 말씀이다. 미국의 경찰도 말 못하는 이민자들 별 것 아닌 것 가지고 두드려 패는 데는 이골이 나있다. 고래싸움에 불면의 밤을 보내는 것은 고래가 아니라 새우가 됨은 당연지사이며 게뿐인가? 화 삭이는 담즙이 고갈되어 오장육부가 타 들어가는 것 같은 고통을 홀로 직면해야 한다. 언제 이 고래싸움이 끝날 것인가? 에 대한 물음에 대한 자답(自答)은 새우목숨이 고래싸움덕에 비명횡사하는 날이 될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인간이 ‘고래싸움에 새우가 웃는다’는 책을 써서 쏠쏠하게 인쇄를 챙겼다 하니 그 비법을 기필코 배워야겠다. 게다가 ‘고래싸움에 새우등 단단해 진다’는 신 속담도 있다하니 한줄기 섬광처럼 지나는 지혜는 경전하사의 반대가 하전경사(蝦戰鯨死)라고 할진대 새우 싸움에 고래 사망이란 말이 된다면 고래싸움 전에 새우싸움을 선점해 고래들이 줄줄이 뭍에 올라와 자살하는 것처럼 고래들을 넉 아웃시키는 꿈이나 꾸어 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