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한국교회에 기복주의 신앙이 비판을 받는 것은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신령한 복을 너무나도 값싼 세상의 복으로 전락시킨 때문이지 성경이 복을 말하고 있지 않은 까닭이 아니다. 오히려 성경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하나님의 복이 흘러 넘쳐나고 있다. 시1:3절을 개역성경은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고 번역하였는데 공동번역은 “ 그에게 안 될 일이 무엇이랴! 냇가에 심어진 나무 같아서 그 잎사귀가 시들지 아니하고 제 철 따라 열매 맺으리.”라 하였다. 하나님의 복을 받은 자는 형통의 복, 안될 일이 없는 복을 누린다는 말이다.

복 받은 자의 행동 강령을 잘 지킨 사람들은 세상이 不況일수록 活況되고 盛況 되는 복이 약속되어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시냇가에 심기운 나무와 같기 때문이다. 말만 들어도 형통한 삶의 표본같지 않은가? 환경에 관계없이 우리의 존재와 인생을 시냇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깊이 내린 것처럼 하나님께만 그 뿌리를 깊이 내린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마르지 않는 나뭇잎처럼 번성하고 형통하게 될 것이다. 요셉이 여호수아가 그랬고 다윗의 생애가 그러했다. 또 시 1편 기자는 이 세상의 가치관을 좇아가면서 하나님의 복을 받지 못한 사람을 바람에 나는 겨에 비유하고 있다. 그 누가 바람에 나는 겨의 일생을 좋아 하겠는가 마는 딱하게도 고집 부려 가며 이 길을 택하는 자들이 적지 않다. 겨는 곡식 껍데기로 속에 알이 없으니까 무게가 없다. 그래서, 바람이 불면 바람 부는 대로 날려간다. 보라! 바람이 불지 않으면 키 안에 있는 알곡이나 겨가 일반이다. 그러나 일단 키를 까불어 바람을 일으키면 키 안의 겨는 여지없이 바람에 날아가 버리나 알곡은 키 안에 남는다.

세상의 바람도 무섭다. 아름드리 나무들이 속절없이 뽑혀진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바람, 하나님의 심판의 바람이 불면 어떻게 될까? 참으로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세상 의 복만을 좇아간 사람결국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은 생애이다. 형통의 복 안 될 일이 없는 복을 누리고 싶은가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복 있는 자의 행동강령을 따라 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