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비카스 스와루프의 장편소설 'Q&A'을 각색한 인도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가 작품상, 감독상 포함 총 8개 부문을 수상하여 화제이다, 이 영화는 인도 뭄바이 빈민가를 전전하며 어렵게 자란 한 청년이 최고 2천만루피(약 6억원)의 상금이 걸린 퀴즈쇼 '누가 백만장자가 되고 싶은가'에 출연해 승승장구하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 작품이 세계인에게 준 충격은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 중 첫 외국 영화라는 것이다. 아카데미 시상식에 참석한 후 뭄바이로 금의환향한 아역 배우들은 일약 국민 영웅들이 되었다. 인도 정부는 실제 뭄바이의 가난한 이들에게 갖가지 복지 혜택을 약속하는 등 나라의 성가를 올린 이들에게 보랏빛 내일을 약속하였다. 그러나 후일담으로 곧 들려온 소식은 씁쓸하기만 하다. 아자루딘 이스마일(10)이란 아역 배우가 장거리 비행과 미국에서의 각종 행사 참석에 따른 피로를 호소하면서 팬이나 언론과 더 이상 만나고 싶지 않다고 하자, 이에 격분한 아버지가 아들을 발로 차고 뺨을 때려 이 소년은 울면서 아버지로부터 도망쳤다는 것이다. 인도판 앵벌이 아버지가 아닐 수 없다.

이 영화가 몰고 올 파장은 무엇일까? 인도인들은 물론 더 많은 세계인들이 일확천금을 꿈꾸며 도박장으로 달려가지나 않을까? 그리고 영화 속의 운 좋은 이 청년과는 반대로 무일푼이 되어 죽음을 재촉하지나 않을까? 인도가 오랫동안 가난했지만 고상하게 지녀왔던 사회 문화 종교의 철학적 가치가 서서히 경제라는 괴물에 무너지는 것 같은 영화가 아닐 수 없다.

반면 근래에 본 일본 만화 ‘메모리즈 티어즈’라는 영화를 보면서 인간 심성의 따뜻함에 눈시울을 붉혔다. 한 도쿄의 도시 처녀가 시골을 동경하다가 드디어 일주일의 휴가를 내 염색용 꽃밭을 일구고 사는 먼 친척 뻘 할머니집에 가면서 한 농촌 총각과 결혼하게 된다는 간단한 내용이다.

그러나 이런 단순한 이야기를 풀어가면서 이 도시처녀의 어린 시절을 계속 끄집어 내어 그녀가 귀농할 수밖에 없었던 자자분한 사건들을 오우버 랩 기법을 사용하여 보여준다. 그녀의 과거와 현재를 퍼즐 맞추듯 쫓아다니기에 바쁘지만 어느새 보는 이들은 과거의 아련한 추억에 빠지게 한다. 내 경우는 짝꿍이었던 가실이가 그 영화 속에서 튀어 나왔으며, 짝 사랑했던 점례가(이름은 잊었다) 조용히 손 사례를 치고 있다. 서울에서 나서 자란 나에게 따로 고향이 있을리 없지만 눈 내린 북아현동 언덕길을 함성을 지르며 쏜살같이 내려오던 군단이며, 복사꽃이 흐드러지게 핀 복주물 뒷산을 헤매고 다니던가, 이시영 부통령집 마당에 주렁 주렁 맺힌 버찌를 향해 돌 팔매들을 날리던 악동들을 다시 끄집어 내 기억의 화첩을 만들어 주었다. 왜 이런 영화들을 더 만들어 내지 못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