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5장에는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하는 세 가지 비유가 나온다. 세 이야기 전부 잃어버렸던 것을 되찾아 주인이 기뻐했다는 것이 결론이다. 세 비유 중 마지막 비유인 탕자의 비유는 허랑방탕한 삶으로 아버지의 재산을 탕진하고 돌아온 아들을 껴안고 입맞추는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 우리의 죄를 묻지 않고 아버지의 집에 돌아온 자녀를 기쁘게 받아들이시는 하나님의 한없는 사랑을 보여준다.
훤칠한 키, 요즘 뜬다는 '동안', 그리고 얼굴 가득한 환한 미소까지 갖춘 유재훈 씨는 디사이플스의 초대 드러머다. 2004년 말부터 브루클린성막교회 드러머로 활약하고 있는 그에게도 '탕자의 비유'와 같은 간증이 있다. 유 씨는 "끊임없이 다른 신을 찾고, 사탄을 숭배하기까지 했던 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괘씸한 놈이라고 버리지 않고 이 자리까지 오게 하셨다."고 고백했다.
크리스천 부모님 밑에서 자란 유재훈 씨는 어린 시절부터 교회를 다녔다. 피아노를 전공했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피아노, 베이스 등의 악기를 연주했다. 세례를 받고 교회에 다니던 중 정기 총회에 참석한 그는 재정 문제로 다투는 일꾼들의 모습을 보고 크게 실망해 교회를 등졌다. 그 뒤로 하나님의 정반대의 자리에 있는 사탄을 숭배하기 시작했다. 부모님의 불화 때문에 집에서는 가출하고, 학교에 정도 붙일 수 없어 출석일수보다 결석일수가 더 많은 고등학교에서의 첫 1년을 보냈다.
그가 그렇게 하나님과 집과 학교를 떠나 방탕하게 지낼 때에도 주님께서는 그를 사랑하셨다. 결석한 아침 조회 시간마다 목회자였던 담임 교사와 반 친구들을 통해 그를 위해 기도하게 하셨다. 걷잡을 수 없이 빗나가던 때였지만 기도 덕분인지 2학년으로 올라가면서부터는 조금이나마 안정을 찾았다.
악기를 잘 다뤘던 그는 교장실로 찾아가 밴드부 결성을 허락 받고, 전국고교그룹사운드 대회에서 상도 받고 매주 열리던 채플에서 연주도 맡았다. 그때도 여전히 사탄을 숭배하고 있었지만 교회를 다니며 맛보던 즐거움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한 친구가 '너와 함께 사탄을 숭배하겠다.'고 말해 본인의 믿음이 친구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두려움,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죄송함 때문에 그 뒤로는 자신을 믿기로 결심했다.
그러다 고등학교를 마감할 때쯤 그에게 새로운 신이 찾아왔다. 그 신은 한강 위에 떠 있는 기름띠로, 형체를 감춘 '용' 이었다. 유재훈 씨는 자신이 음악으로 성공해서 이 곳에 다시 돌아오면 그 용이 형체를 드러낼 것이라고 생각했다. 유 씨는 "끊임없이 예배할 대상을 찾았다. 하나님과 대결해 이길 수 있는 무엇인가를 찾았었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졸업 후에는 홍대 앞 클럽에서 프로 뮤지션들과 함께 연주도 했다. 그곳에서 세계 최고의 드러머를 꿈꾸었고 더 큰 세계로 나가기 위해 유학을 생각했다. 유학 전 군 입대를 위해 군악대로 지원서를 내고 입영통지서를 기다리던 중 우연히 지인의 소개로 목동제자교회 디사이플스의 초대 드러머로 들어가게 됐다.
지금이야 디사이플스가 힘있는 찬양으로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지만 당시는 지역 일대 찬양의 구심점이 되겠다는 비전을 갖고 창단됐을 때였다. 디사이플스는 드럼, 전자 기타, 어쿠스틱 기타, 베이스 기타, 전자 피아노, 피아노 등 다양한 악기로 새로운 형식의 워십 음악 사역을 펼쳐나갔다.
찬양팀과 밴드 모임에는 반드시 기도하는 시간이 있어 그때마다 자리를 피했는데 어느 날은 적은 수가 모여 자리를 뜨기 어렵게 됐다. 성령님께서 인도하는대로 기도하자는 천관웅 리더의 인도 하에 한 사람씩 돌아가며 기도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차례를 떨리는 마음으로 기다리던 중 자연스럽게 시작된 'There is none like you' 찬양은 그의 마음에 평안함을 주었다. 그리고 기도하기 시작했는데 갑자기 강렬한 밝은 빛이 그를 향해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환상을 보고 그 자리에서 20분여 정신을 잃었다. 정신을 잃은 상태에서 울면서 하나님께 죄송하다고 계속 용서를 구했다.
그때 유 씨는 '예수님이 진짜였구나, 내가 그동안 사탄과 용을 믿으며 씁쓸했던 이유가 하나님의 존재 때문이었구나' 하며 "버리지 않으시고 믿으시고 이 자리까지 오게 하신 것이 너무 감사했다."고 고백했다. 그렇게 개인적으로는 예수님을 영접하고, 준비했던 디사이플즈의 기획예배도 성공적으로 마쳤다. 그때 주님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겠다는 의욕이 넘쳐 자칫 잘못된 길로 빠질 수도 있었던 자신을 붙들어주었던 천관웅 리더는 그에게 또 하나의 목표상이 됐다. 전통적으로 찬양하는 흑인 성가대와 모던 밴드가 조화를 이루는 브루클린성막교회의 모습이 너무 매력적으로 보여 교회 드럼 연주자의 꿈도 가졌다.
예수님을 만난 기쁨에 군대에 가야 한다는 것도 잊고 있다 뒤늦게 군악대에 들어갔다. 그런데 그곳에서도 하나님께서는 그를 위한 계획을 갖고 계셨다. 군악대 신우회 회장이 되게 하시고 찬양팀 '싱아웃'을 조직하게 하셔서 많은 이들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을 돕게 하셨다. 그렇게 군 생활을 마치고 유학을 떠났다. 무엇을 할까 고민하기 이전에 이미 음악을 하고 있었던 그에게 뉴욕은 꿈의 도시였다.
그러나 처음 유학생활을 시작한 곳은 캐나다였다. 캐나다에서는 영어와 재즈를 공부했다. 그에게 재즈는 음악의 끝과 같았다. 처음에는 락과 메탈을 하다 욕심이 생겨 더 복잡한 장르를 하고 싶다는 마음에 재즈를 하게 됐다.
캐나다 유학 생활 중 관광차 뉴욕에 와서 들린 맨하탄 음대와 뉴스쿨 등의 학생들의 음악 수준과 크리스토퍼 스트릿 근처 재즈 클럽에서 유명 뮤지션들의 연주에 도전을 받고 그는 당장 뉴욕으로 달려왔다. 브루클린성막교회에 찾아가 첫 오디션을 치렀다.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그래서 브루클린성막교회를 다니며 1년간 밴드의 연주를 녹음해 연습했다. 그리고 이듬해 다시 오디션에 도전했다. 평상시 오디션에는 밴드가 함께 연주해 주는 것이 일반적인데 그 날따라 밴드가 투어 일정으로 자리를 비워 오르간을 연주하는 할아버지만 그의 연주를 도왔다.
연주가 시작되면 박자를 지키려고 애써야 하는 연주자의 노력이 필요한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분의 연주와 어울리며 박자가 틀릴 수 없도록 연주가 편해지기 시작했다. 찬송가를 연주하면서부터는 은혜를 너무 받아 자신이 울고 있는지도 몰랐다. 유재훈 씨는 그 때 '이것이 예배를 드리는 것이구나' 깨닫고 크리스천 음악인으로서 나가야 할 경지를 보았다.
정말 복잡한 코드로 구성된 곡을 연주하면서도 '하나님을 예배하려고 앉아있으니 틀리면 어떠냐'는 마음가짐으로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생각하며 연주한다는 오르간 연주자의 말에서 새로운 세계를 배웠다.
유재훈 씨는 "그 경험은 걸어 다니는 것이 편하듯 악기를 연주하는 것이 편해진 첫 단계에 불과하다"고 설명한다. 자신의 악기에 편해진 후에는 그것을 넘어 함께 악기를 연주하는 이들을 편하게 해주는 두 번째 단계로 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두 번째 단계까지 와도 음악에 집중해야 하고 다른 이의 연주도 다 들어야 하니 예배는 드릴 수 없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세 번째 단계를 넘어 그 연주와 찬양의 가사를 통해 연주자가 느끼는 영적인 느낌을 흘러가게 하는 마지막 단계까지 이르는 것이 유재훈 씨의 또 하나의 꿈이다.
"세 번째, 네 번째 단계는 내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선물로 되는 것 같다."는 유재훈 씨에게는 크리스천 팀을 만들어 교회에서 공연하며 예배를 살리고 컨퍼런스를 통해 더 많은 사람에게 귀한 세계들을 전하고 싶은 소망이 있다. 특히 "교육 환경이 좋지 않아 교육의 기회가 적은 이들에게 좋은 기회를 제공하고 싶다."고 전했다.
훤칠한 키, 요즘 뜬다는 '동안', 그리고 얼굴 가득한 환한 미소까지 갖춘 유재훈 씨는 디사이플스의 초대 드러머다. 2004년 말부터 브루클린성막교회 드러머로 활약하고 있는 그에게도 '탕자의 비유'와 같은 간증이 있다. 유 씨는 "끊임없이 다른 신을 찾고, 사탄을 숭배하기까지 했던 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괘씸한 놈이라고 버리지 않고 이 자리까지 오게 하셨다."고 고백했다.
크리스천 부모님 밑에서 자란 유재훈 씨는 어린 시절부터 교회를 다녔다. 피아노를 전공했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피아노, 베이스 등의 악기를 연주했다. 세례를 받고 교회에 다니던 중 정기 총회에 참석한 그는 재정 문제로 다투는 일꾼들의 모습을 보고 크게 실망해 교회를 등졌다. 그 뒤로 하나님의 정반대의 자리에 있는 사탄을 숭배하기 시작했다. 부모님의 불화 때문에 집에서는 가출하고, 학교에 정도 붙일 수 없어 출석일수보다 결석일수가 더 많은 고등학교에서의 첫 1년을 보냈다.
그가 그렇게 하나님과 집과 학교를 떠나 방탕하게 지낼 때에도 주님께서는 그를 사랑하셨다. 결석한 아침 조회 시간마다 목회자였던 담임 교사와 반 친구들을 통해 그를 위해 기도하게 하셨다. 걷잡을 수 없이 빗나가던 때였지만 기도 덕분인지 2학년으로 올라가면서부터는 조금이나마 안정을 찾았다.
악기를 잘 다뤘던 그는 교장실로 찾아가 밴드부 결성을 허락 받고, 전국고교그룹사운드 대회에서 상도 받고 매주 열리던 채플에서 연주도 맡았다. 그때도 여전히 사탄을 숭배하고 있었지만 교회를 다니며 맛보던 즐거움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한 친구가 '너와 함께 사탄을 숭배하겠다.'고 말해 본인의 믿음이 친구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두려움,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죄송함 때문에 그 뒤로는 자신을 믿기로 결심했다.
그러다 고등학교를 마감할 때쯤 그에게 새로운 신이 찾아왔다. 그 신은 한강 위에 떠 있는 기름띠로, 형체를 감춘 '용' 이었다. 유재훈 씨는 자신이 음악으로 성공해서 이 곳에 다시 돌아오면 그 용이 형체를 드러낼 것이라고 생각했다. 유 씨는 "끊임없이 예배할 대상을 찾았다. 하나님과 대결해 이길 수 있는 무엇인가를 찾았었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졸업 후에는 홍대 앞 클럽에서 프로 뮤지션들과 함께 연주도 했다. 그곳에서 세계 최고의 드러머를 꿈꾸었고 더 큰 세계로 나가기 위해 유학을 생각했다. 유학 전 군 입대를 위해 군악대로 지원서를 내고 입영통지서를 기다리던 중 우연히 지인의 소개로 목동제자교회 디사이플스의 초대 드러머로 들어가게 됐다.
지금이야 디사이플스가 힘있는 찬양으로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지만 당시는 지역 일대 찬양의 구심점이 되겠다는 비전을 갖고 창단됐을 때였다. 디사이플스는 드럼, 전자 기타, 어쿠스틱 기타, 베이스 기타, 전자 피아노, 피아노 등 다양한 악기로 새로운 형식의 워십 음악 사역을 펼쳐나갔다.
찬양팀과 밴드 모임에는 반드시 기도하는 시간이 있어 그때마다 자리를 피했는데 어느 날은 적은 수가 모여 자리를 뜨기 어렵게 됐다. 성령님께서 인도하는대로 기도하자는 천관웅 리더의 인도 하에 한 사람씩 돌아가며 기도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차례를 떨리는 마음으로 기다리던 중 자연스럽게 시작된 'There is none like you' 찬양은 그의 마음에 평안함을 주었다. 그리고 기도하기 시작했는데 갑자기 강렬한 밝은 빛이 그를 향해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환상을 보고 그 자리에서 20분여 정신을 잃었다. 정신을 잃은 상태에서 울면서 하나님께 죄송하다고 계속 용서를 구했다.
그때 유 씨는 '예수님이 진짜였구나, 내가 그동안 사탄과 용을 믿으며 씁쓸했던 이유가 하나님의 존재 때문이었구나' 하며 "버리지 않으시고 믿으시고 이 자리까지 오게 하신 것이 너무 감사했다."고 고백했다. 그렇게 개인적으로는 예수님을 영접하고, 준비했던 디사이플즈의 기획예배도 성공적으로 마쳤다. 그때 주님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겠다는 의욕이 넘쳐 자칫 잘못된 길로 빠질 수도 있었던 자신을 붙들어주었던 천관웅 리더는 그에게 또 하나의 목표상이 됐다. 전통적으로 찬양하는 흑인 성가대와 모던 밴드가 조화를 이루는 브루클린성막교회의 모습이 너무 매력적으로 보여 교회 드럼 연주자의 꿈도 가졌다.
예수님을 만난 기쁨에 군대에 가야 한다는 것도 잊고 있다 뒤늦게 군악대에 들어갔다. 그런데 그곳에서도 하나님께서는 그를 위한 계획을 갖고 계셨다. 군악대 신우회 회장이 되게 하시고 찬양팀 '싱아웃'을 조직하게 하셔서 많은 이들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을 돕게 하셨다. 그렇게 군 생활을 마치고 유학을 떠났다. 무엇을 할까 고민하기 이전에 이미 음악을 하고 있었던 그에게 뉴욕은 꿈의 도시였다.
그러나 처음 유학생활을 시작한 곳은 캐나다였다. 캐나다에서는 영어와 재즈를 공부했다. 그에게 재즈는 음악의 끝과 같았다. 처음에는 락과 메탈을 하다 욕심이 생겨 더 복잡한 장르를 하고 싶다는 마음에 재즈를 하게 됐다.
캐나다 유학 생활 중 관광차 뉴욕에 와서 들린 맨하탄 음대와 뉴스쿨 등의 학생들의 음악 수준과 크리스토퍼 스트릿 근처 재즈 클럽에서 유명 뮤지션들의 연주에 도전을 받고 그는 당장 뉴욕으로 달려왔다. 브루클린성막교회에 찾아가 첫 오디션을 치렀다.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그래서 브루클린성막교회를 다니며 1년간 밴드의 연주를 녹음해 연습했다. 그리고 이듬해 다시 오디션에 도전했다. 평상시 오디션에는 밴드가 함께 연주해 주는 것이 일반적인데 그 날따라 밴드가 투어 일정으로 자리를 비워 오르간을 연주하는 할아버지만 그의 연주를 도왔다.
연주가 시작되면 박자를 지키려고 애써야 하는 연주자의 노력이 필요한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분의 연주와 어울리며 박자가 틀릴 수 없도록 연주가 편해지기 시작했다. 찬송가를 연주하면서부터는 은혜를 너무 받아 자신이 울고 있는지도 몰랐다. 유재훈 씨는 그 때 '이것이 예배를 드리는 것이구나' 깨닫고 크리스천 음악인으로서 나가야 할 경지를 보았다.
정말 복잡한 코드로 구성된 곡을 연주하면서도 '하나님을 예배하려고 앉아있으니 틀리면 어떠냐'는 마음가짐으로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생각하며 연주한다는 오르간 연주자의 말에서 새로운 세계를 배웠다.
유재훈 씨는 "그 경험은 걸어 다니는 것이 편하듯 악기를 연주하는 것이 편해진 첫 단계에 불과하다"고 설명한다. 자신의 악기에 편해진 후에는 그것을 넘어 함께 악기를 연주하는 이들을 편하게 해주는 두 번째 단계로 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두 번째 단계까지 와도 음악에 집중해야 하고 다른 이의 연주도 다 들어야 하니 예배는 드릴 수 없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세 번째 단계를 넘어 그 연주와 찬양의 가사를 통해 연주자가 느끼는 영적인 느낌을 흘러가게 하는 마지막 단계까지 이르는 것이 유재훈 씨의 또 하나의 꿈이다.
"세 번째, 네 번째 단계는 내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선물로 되는 것 같다."는 유재훈 씨에게는 크리스천 팀을 만들어 교회에서 공연하며 예배를 살리고 컨퍼런스를 통해 더 많은 사람에게 귀한 세계들을 전하고 싶은 소망이 있다. 특히 "교육 환경이 좋지 않아 교육의 기회가 적은 이들에게 좋은 기회를 제공하고 싶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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