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국에선 「워낭소리」라고 하는 한 다큐형식의 독립영화가 일반 극장에서 상영되어 관객 60만을 넘어섰다고 한다. 얼마나 감동적인지 영화가 끝나 앤딩싸인이 나고도 한참이나 훌쩍이는 사람들이 태반이며, 대통령 내외도 경호원없이 극장을 찾았다 하니 궁금하여 인터넷을 뒤적여 다수의 영화평을 읽어 보았다.

'워낭'은 말과 소의 귀에서 턱 밑으로 늘여 단 방울. 또는 턱 아래에 늘어뜨린 쇠고리를 말한다고 하는데 그 줄거리는 매우 간단하다. 평생 땅을 지키며 살아온 농부 최 노인에게 30년을 부려온 소 한 마리가 있다. 소의 수명은 보통 15년. 그런데 이 소의 나이는 무려 마흔살. 살아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 이 소는 최고의 농기구이고, 유일한 자가용이다. 무뚝뚝한 노인과 무덤덤한 소. 둘은 모두가 인정하는 환상의 친구다.

그러던 어느 봄, 최 노인은 수의사에게 소가 올 해를 넘길 수 없을 거라는 선고를 듣게 된다. 농부는 친구들에게 자기는 이 소가 죽으면 기꺼히 상주(喪主)가 될 것이라고 너털 웃음을 웃는다. 소가 죽음을 맞이할 때 할아버지는 묵묵히 소의 워낭을 풀어준다. 평생 일만하던 소는 죽을 때가 다돼서야 워낭과 작별을 한다.

이 영화의 주제는 동반자이다. 이 소는 이 최 노인에게는 평생 배신하지 않는 동반자였던 것이다. 그에게는 출가한 9남매나 되는 자식들이 있으나 하나도 동반자로 옆에 있어 주질 못하지만 이 소는 자신의 수명을 어겨가면서 까지 이 노인의 평생 동반자가 되어 주었던 것이다.

인생들에게는 어느 누구나 동반자가 있다. 그런데 그 동반은 한시적 동반, 평생의 동반, 영생의 동반이 있다. 인간은 그 누구나 그 인생길에서 한시적 동반자를 만난다. 각종의 연과 목적으로 만나게 됨이 태반인 이 동반 관계는 그 연과 목적이 다 할 때 사정없이 끝나버린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이 허허실실(虛虛實實)의 동반관계가 청산될 때 죽음까지 생각게 된다. 믿었던 친구가 사랑한 여인이 배신할 때의 공허는 최상의 스트레스를 가져온다. 평생의 동반도 일생이란 한시적 동반이기는 하지만 인생의 궤를 같이 한다는 의미에서는 한시 동반보다는 그 격이 높다. 회갑을 훌쩍 넘기면서 이제는 턱바치고 미주알 고주알로 담소할 수 있는 배우자와 평생을 동반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점점 더 크게 깨닫는다. 게다 간간히 만나서 취미와 기호(嗜好)를 나누고 인생의 경륜을 담론할 수 있는 평생의 친구 한 둘이 있다면 금상첨화이다.

그럼에도 인생이 본래 고독한 것은 한 번은 죽는 다는데 있다. 평생의 동반자들이 하나 둘씩 사라질 때 우리는 영생의 동반자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여야 한다. 우리에게 십자가의 사랑으로 새 생명을 주신 것은 영생의 동반자가 되어 주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