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9년 2월 12일은 미국 흑인 노예 해방자 에이브러햄 링컨과 종의 기원의 진화론자인 찰스 다윈이 태어난 날이다. 이날에 미국은 링컨을 영국은 다윈을 치켜 세우며 각각 자국의 영웅을 칭송하기에 바빴다. 링컨과 다윈은 태어난 날만 같은 것이 아니라 어린 시절 모친을 잃은 것과 50대가 돼서야 한 사람은 대통령에 취임하고 또 한 사람은 ‘종의 기원’을 발표하는 위대한 업적을 달성했다는 점도 비슷하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링컨은 정치 생활 초 중반기엔 완전한 인종평등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했는데 이에 대해 어떤 정치 평론가는 “링컨의 또 다른 장점은 끊임없이 생각이 진화했다는 점이며 남북전쟁 초기엔 노예를 아예 아프리카로 돌려보내자는 생각도 했지만 이후 점점 더 열린 마음을 갖게 됐다”고 했는데. 다윈의 생물학적 진화와는 다른 사상의 진화를 통해 미국과 인류에 큰 공헌을 한 역사의 아이러니를 연출 한 것이다.

사실 종교인들 특히 기독교 지도자들이 다윈의 종의 기원을 읽고 이해하면서 비판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그저 창조론에 역행하는 진화론에 대하여 본능적혐오감 내지 적대감을 갖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정작 다윈자신은 오랜 세월동안 기독교인이었으며 항해를 떠나기 전까지 성공회 성직자가 되기 위해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했고, 노년에 이르러서는 자신이 무신론자가 아닌 불가지론자라고 주장하기도 했던 인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윈의 제자들은 다윈의 주장을 기초하여 더욱 극렬하게 창조론을 반대하여 19세기 이후 과학이 신학을 압도하게 되는 전령사 역을 톡톡히 하였던 것이다. 그 결과 인류역사에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던 인명경시 사상이 팽배하게 되고 유래 없는 세계대전을 두 차례나 치렀으며 현재도 세계 각 곳에서 국지전이기는 하나 인간의 생명이 파리목숨과 같이 스러지고 있는 형편이다.

케네디 대통령 집권이후 미국에서 조차 학교에서 창조론 수업은 사라지고 진화론이 가르쳐지니 기도가 사라지게 되었다. 다윈 추종자들은 다윈 탄생 200주년을 맞아 “종교를 뛰어넘어 진화하라”는 가 하면 영국 런던 시내를 달리는 버스에 “신은 없다”고 주장하는 무신론 광고를 실어 기세를 올리고 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미국인 가운데 63%가 창조론을 지지하고, 다윈의 진화론은 겨우 26%라는 조사가 있었다. 지금도 미국에서는 조물주가 인간을 창조했다는 창조론이 뿌리 깊게 박혀있음을 알 수 있는 조사이다. 이 때문에 34개주가 진화론 교육을 반대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는 등 점차 창조론으로의 회귀로 열을 쏟고 있다하니 이보다 좋을 수는 없는 일이다.

한편 로마 교황청은 다윈의 진화론과 기독교 신앙이 서로 공존할 수 있다고 교황청 문화평의회를 이끌고 있는 잔프랑코 라바시 대주교가 공언했다하니 가톨릭이야말로 불가지론자들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