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은 프랑스인으로 칼뱅이라 불러야 옳다. 지금은 새문안교회 담임인 이수영목사가 장신대원에서 가르치면서 처음으로 주장하고 부르기 시작하였다. 올해는 종교개혁자이자 장로교회 창설자인 칼뱅의 탄생 500주년이 되는 해이다.

한국에서는 칼뱅 탄생 500주년 기념사업회’(대표회장 이종윤 목사)가 조직되어 서울 강남구에 그의 이름을 딴 ‘칼빈길’을 요청하는 등 여러 기념사업을 계획하였는데 감사예배 및 기념음악회, 칼빈 공로상 수여, 학술심포지엄, <기독교 강요>(현대 불어판) 기증식, 칼빈 흉상 (장신대)기증식, 칼빈 우표 발행 및 칼빈 문진 제작 교계 지도자들과의 간담회 등이었다. 모르기는 해도 이런 사업들이 한국의 부자 장로교회들에 의해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칼뱅이 살아있다면 이런 사업들을 원할까? 하는 의문이 든다. 어느 발빠른 여행사는 종교개혁전문 순례예행사를 만들어 칼뱅의 발자취를 따라 순례할 여행객들을 모집하여 재미를 쏠쏠히 보는 중이라고 하니 칼뱅의 탄생 5백주년에 이름 내고 돈 버는 사람들은 한국인들이 아닐까 한다.

사실 장로교 창시자로 칼뱅을 내 세우는 것은 좀 무리가 있다. 그는 다만 장로정치의 모델을 마련한 것일뿐 오늘 날의 장로교의 원형은 스콧트랜트의 죤 낙스에게서 찾고 그 중흥을 화란의 아브라함 카이퍼에서 찾아야 한다고 본다.

칼뱅은 마틴 루터가 벌려놓은 종교개혁을 「기독교강요」하고 하는 위대한 신학서를 출간하므로 모든 개혁주의 교회의 아버지가 되었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따라서 칼뱅 5백주년을 기념하는 것은 장로교만의 전유가 되어서는 안되고 모든 개혁주의 교회의 기념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칼빈은 말씀의 생활화를 부르짖은 쏠라 스크립툴라(Sola Scriptula)의 사도로 청빈의 삶을 살았으므로 장로교는 굳이 칼뱅을 창시자로 자랑하려면 이 점을 부각시키고 이런 운동을 칼뱅 탄생 5백주년을 원년으로 삼는 지혜가 요구된다. 기념사업회가 ‘한국장로교회 연합과 일치를 위해’라는 제목으로 교계 지도자들과의 간담회을 추진한다하니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전체 한국교회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장로교회가 연합하는 것은, 곧 한국교회의 연합을 의미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