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의 기도 덕분에 열흘간의 한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금쪽같은 시간을 쪼개어 가족과 친지들을 만나고 돌아왔습니다. 저희 어머님의 건강에 대해 걱정해 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아기처럼 되신 어머님을 더 뵐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하며 어렵게 돌아서 왔습니다.

35년 전에 함께 교회 생활을 했던 친구들을 볼 기회도 있었습니다. 까까머리 고등학생의 모습으로 헤어진 이후 50대가 되어 다시 만났습니다. 어떤 친구는 삶의 무게가 매우 무거워 보였고, 어떤 친구는 든든한 중년의 풍모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반갑기도 했고, 안쓰럽기도 했으며, 자랑스럽기도 했습니다. 특별히 감사했던 것은 친구들이 대부분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중도에 방황했던 친구도 있고, 현재 교회와 멀리 살고 있는 친구도 있지만, 중년이 되어 절실한 믿음에 이른 친구들이 더 많았습니다. 오고 가는 대화 속에서 느끼는 믿음과 고민과 열망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대화하던 중, 교회 직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친구들은 갑자기 직분자를 세우는 데 따르는 문제들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직분을 바라고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느니, 목회자가 직분을 정치적으로 악용한다느니, 돈이 없으면 교회에서의 직분도 얻지 못한다느니, 또는 직분자들에게 지우는 짐이 너무 무겁다느니, 주로 부정적인 이야기들이 많았습니다. 목사 친구를 앞에 두고 자기들끼리 한참 토론을 하더니, 가만히 듣고만 있던 저에게 결론을 내 보라고 했습니다. 저는 “할 말은 없고, 같이 기도하자!”고 대답했습니다.

교회 직분에 대해 친구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한편으로는 안타깝고 부끄럽게 느꼈습니다. 실제로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합니다. 이민교회는 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감사한 마음도 가졌습니다. 저희 교회는 이 많은 문제들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희가 완전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직분자를 세우는 데 있어서 아주 좋은 제도를 마련하여 실천해 왔습니다. 매년 선출되는 천거 위원회가 기도 중에 직분자를 세우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친구들이 개탄한 문제들이 저희 교회에서는 별로 생기지 않습니다.

오늘은 권사 취임과 장로 안수례가 있는 날입니다. 우리 교회는 직분자를 세우는 과정에서도 차별성이 있지만, 직분자를 세우는 일에 있어서도 차별성이 있습니다. 다른 교회에서는 별도의 예배를 드리면서 외부 손님들을 초청하여 요란한 잔치를 벌이는데, 우리 교회는 주일 대예배에서 이 예식을 행합니다. 새로 취임하는 직분자들에게 힘에 부치도록 헌금이나 기념품을 봉헌하도록 강요하는 교회가 많은데, 우리 교회는 각자 본인들의 믿음에 맡깁니다.

우리 교회는 직분이 커지는 것은 더 낮아지라는 뜻임을 믿습니다. 오늘 취임하는 권사님들과 장로님들은 한 단계 더 낮아져 다른 교우들을 위해 섬기시고 그로 인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낮아지는 일에 축하하는 것이 맞지 않아 보이지만, 그래도 “여러분, 축하합니다!” (2009년 2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