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수요일 오전 11시면 무료 급식을 받으려는 도시빈민들의 쇄도로 굿스푼이 소란하다. 경기침체로 인해 바짝 마른 일자리, 엄동설한 혹독한 추위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빈민들, 갖가지 서글픈 사연을 가지고 온 저들의 연약함이 모여 더 추워보인다. 월세를 내지 못해 세간살이와 신분증까지 집 주인에게 차압당한채 거리로 쫒겨 나와 당장 덮고 잘 이불을 청하는 멕시코 출신 꾸르스(25세), 아예 홈리스로 전락하여 주변 쉘터에서 자고 샤워하러 달려오는 힘겨운 사람들이 사랑스런 서비스를 받는 곳이다. 여러해 노숙자로 전전하는 후안과 몇 명의 라티노들은 베일리 쉘터에서 겨울을 나고 있다. 그동안 굿스푼은 저들의 용변보는 화장실로, 샤워실로, 자기 식대로 음식을 조리하여 잠시나마 행복한 식사를 하는 식당으로 사용되었고, 꽤많은 단골 손님이 찾는다.

사무실 모퉁이에 간이 의자와 거울을 세워놓고 시작하는 거리 이발소에도 빈민들이 줄이 길다. 겹겹이 껴입은 외투를 벗고, 털모자에 잔뜩 짖눌려진 머리를 세워 모양있게 깍으려면 꽤 오래 한기를 참아야 한다. 온두라스 떼구시갈빠에서 온 후안이 첫번째 손임으로 가운을 두른다. 그의 얼굴엔 예리한 칼로 난자당한 흉측한 상처가 깊고 길게 나있다. 그 사고때문인지 후안의 왼쪽 눈엔 동공이 없다. 밤새 퍼마신 막술 냄새, 소변 지린냄새, 땟국줄이 줄줄 흐르는 외투와 덥수룩하게 자라 둥지 튼 머리채가 어지럽게 삐져나온채다. 뒤쪽 머리는 한사코 오피스 근무자처럼 단정하게 잘라 달라며 까탈스런 요구를 하다 술기운에 골아 떨어진다.

찾아오는 빈민들을 위해 점심 급식을 조리하는 이 선생 부부는 충남 홍성이 고향이다. 조리장으로 섬김지 벌써 2년째다. 매주 토요일만 섬기던 그가 현재는 수요일 점심까지 두번 책임지고 있다. 지난 수요일에도 어김없이 큰 솥 두통 가득한 밥과 다양한 빵들이 춥고 허기진 70여 명의 이방인 노동자들에게 나눠졌다. 뒤늦게 도착한 10여명을 굶겨서 보낼 수 없다며 우동을 끓여 수발하느라 혼을 쏙 빼놓고 말았다. 남은 우동으로 점심을 때우고 한숨을 돌린 것이 오후 1시경이다. 우체국에 소포를 찾으러 갔다가 지갑이 분실된 것을 알았다 화장실 입구 선반에 걸어뒀던 자켓에서 지갑이 없어진 것이다. 과연 누구 짓일까? 감사는 커녕 봉사자의 지갑을 슬쩍한 장발장 같은 나그네는 누굴까?

낡은 지갑엔 크레딧 카드 2장, 캐쉬 250달러, 수표 50달러, 그리고 운전면허증이 들어 있었다. 2006년 미국에 도착하여 영주권 절차를 밟고 있는 터라 아이디는 정말 중요했다. 면허증을 카피하지 못했고, 넘버조차 기록치 못한 불찰에 당을 치며 후회했지만 이미 쏟아진 물처럼 소용 없었다. 크레딧 카드는 냉큼 정지시켰으나 분실한 아이디는 종일 가슴을 아리게 했다. 검안하고 새안경을 맞추려고 아내 몰래 모아두었던 돈은 못 찾는다 하더라도 제발 아이디만은 찾고싶어 착잡한 마음으로 기도할 수 밖에 없었다.

실컷 먹고 떠난 일행들을 찾아 거리를 헤매며 탐문수사를 펼쳤다. “어버이처럼 먹이고 힙인 봉사자의 주머니를 터는 패륜은 있을 수 없다.”며 양심에 호소했다. 주방 청소와 설거지를 돕던 호세와 로저가 낌새가 수상한 후안을 설득했다. 걱정으로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가던 이 선생이 활짝 웃은 게 저녁 9시경이다. 8시간만에 지갑을 다시 찾았다. 운전면허증과 크레딧카드가 그대로 담겨있다. 안경을 맞추려고 숨겨두었던 고래 힘줄 같은 돈은 알코올중독자 후안의 목구멍으로 술술 넘어가고 말았다.

“아이디 찾은 것만해도 감사하다”며 소탈하게 웃는 이선생 부부는 지난해 11월 일자리를 잃어 4개월째 핍절한 생활을 하고 있다. 아무일 없던 것처럼 씩씩하게 주방으로 돌아가 조리하는 그들이 아름답다. 환하게 볼 수 있는 근사한 안경을 선사하고 싶다.

(도시빈민선교, 재활용품, 중고차량 기증: 703-622-2559 / 256-0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