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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받은 사람의 세 번째 행동강령은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는 것이다. "오만한 자"는 원어로 <레침>인데 이는 입을 삐쭉거리며 비웃고 조롱한다는 뜻이 있다. 재미있게도 오만한 자의 기준은 분수에 넘치는 자리에 앉는 것이다.
구약 이사야서 14장에 보면 사단의 기원이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후 사단의 계열 죄인들은 오만한 자리에 앉으려고 심히 안달하고 있음을 인간 역사가 입증하고 있다. 이스라엘을 괴롭힌 에돔족이 그러했고 개인으로 오만한 자의 대표적인 인물을 꼽으라 하면 사울 왕이 될 것이다. 그는 분수를 넘는 오만으로 왕직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제사장직까지 탐하다 망했다.
예수님 당시의 서기관들도 오만한 자의 자리를 좋아하였다. 오죽하면 예수님이 이렇게 친히 경계 하셨을까! “회당의 상좌와 잔치의 상석을 원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막12:39) 세상에는 오만한 자로 만원이다. 소련의 우주 비행사 유리 가가린은 우주 여행에서 돌아와 ‘우주에 하나님은 없다’고 말했는데 그것은 오만한 무신론자가 내 뱉을 수 있는 최고의 망언이 아닐 수 없다.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그의 피조된 육안으로 볼 수 없는 것이 당연 한 것이다.
반면 상대성 원리로 유명한 아인슈타인은 “원자 속에는 존귀한 분이 계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우리는 그분에게 경건해 지지 않으면 안 된다” 고 하였다. 그러면 복 있는 자들의 행할 행동 강령은 무엇인가? 오만한 자들과 함께 앉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자녀들과 이 세상의 오만한 자들과의 거룩한 분리이다. 이것을 성별(聖別)이라 부른다.
그러나 한국 교계는 너무도 오만하게 되어 치료 불능이 아닐까 하는 우려가 일 정도이다. 속어에 꼴값 떤다는 말이 있다. 모든 꼴에는 값이 있는데 오만함은 그 꼴에 값을 한정 없이 누추하게 떨어트리는 행위인 것이다. 교회가 대형화되어 비서실제가 정착되어 소위 유명목사에게 직접 전화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우스개 소리로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전화해도 대형교회 모모한 목사들과는 통화 할 수 없을 것이라 한다. 웬 경호원들을 그렇게 많이 대동하고 다니는지 분명한 것은 저들에게는 순교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게 뿐이랴! 저들만의 써클이 있어 귀족화되고 그러니 세습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 되었다. 교만의 극치가 오만이다!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으려면 겸손의 자리로 나아가야 한다.
구약 이사야서 14장에 보면 사단의 기원이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후 사단의 계열 죄인들은 오만한 자리에 앉으려고 심히 안달하고 있음을 인간 역사가 입증하고 있다. 이스라엘을 괴롭힌 에돔족이 그러했고 개인으로 오만한 자의 대표적인 인물을 꼽으라 하면 사울 왕이 될 것이다. 그는 분수를 넘는 오만으로 왕직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제사장직까지 탐하다 망했다.
예수님 당시의 서기관들도 오만한 자의 자리를 좋아하였다. 오죽하면 예수님이 이렇게 친히 경계 하셨을까! “회당의 상좌와 잔치의 상석을 원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막12:39) 세상에는 오만한 자로 만원이다. 소련의 우주 비행사 유리 가가린은 우주 여행에서 돌아와 ‘우주에 하나님은 없다’고 말했는데 그것은 오만한 무신론자가 내 뱉을 수 있는 최고의 망언이 아닐 수 없다.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그의 피조된 육안으로 볼 수 없는 것이 당연 한 것이다.
반면 상대성 원리로 유명한 아인슈타인은 “원자 속에는 존귀한 분이 계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우리는 그분에게 경건해 지지 않으면 안 된다” 고 하였다. 그러면 복 있는 자들의 행할 행동 강령은 무엇인가? 오만한 자들과 함께 앉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자녀들과 이 세상의 오만한 자들과의 거룩한 분리이다. 이것을 성별(聖別)이라 부른다.
그러나 한국 교계는 너무도 오만하게 되어 치료 불능이 아닐까 하는 우려가 일 정도이다. 속어에 꼴값 떤다는 말이 있다. 모든 꼴에는 값이 있는데 오만함은 그 꼴에 값을 한정 없이 누추하게 떨어트리는 행위인 것이다. 교회가 대형화되어 비서실제가 정착되어 소위 유명목사에게 직접 전화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우스개 소리로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전화해도 대형교회 모모한 목사들과는 통화 할 수 없을 것이라 한다. 웬 경호원들을 그렇게 많이 대동하고 다니는지 분명한 것은 저들에게는 순교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게 뿐이랴! 저들만의 써클이 있어 귀족화되고 그러니 세습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 되었다. 교만의 극치가 오만이다!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으려면 겸손의 자리로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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