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우리나라 설날을 맞이하면서 우리 시대 우리나라의 대표적 지성인중의 한 분으로 꼽히는 이어령 선생님께서 쓰신 글을 읽었습니다. 선생님은 젊은 시절부터 우리 사회와 사람들을 향해 자신의 생각을 진솔하게 그리고 매우 설득력 있게 나누는 필객으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아오셨는데 최근에는 기독교 신앙에 입문하시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계십니다.

여러 분야에 대한 다양하고도 깊이 있는 해박한 지식과 경험들을 토대로 우리 사회에 잠식되어 있는 부조리와 불합리들을 예리하게 파내고 이를 지적하는 글을 통해 선생님은 당신의 글을 대하는 독자들에게 때론 깊은 감동과 감격을 나누고, 때로는 비장한 각오를 다짐하게 하거나 감추어진 부조리와 불합리를 파헤치는 통쾌함을 주었는데, 신앙생활을 하신 후부터 쓰는 글들에는 같은 사회를 향한 글이지만 전과 달리, 부족함을 채우고, 모난 것을 보듬는 마음이 담겨져 있습니다.

이는 비단 삶을 살아오면서 쌓은 지식이나 경험 때문만은 아니고, 새롭게 접한 신앙 때문에 자신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또 그러한 사회를 바라보는 자신에 대한 시각의 변화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마치 벼랑 끝에 서 있는 듯이 모두가 어렵다고 예견하는 올해를 시작하면서 날게 해달라는 선생님의 간구에 함께 입을 모아 간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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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벼랑 끝입니다, 날게 하소서 ”
시 / 이 어 령

벼랑 끝에서 새해를 맞습니다.
우리에게 날 수 있는 날개를 주소서.
어떻게 여기까지 온 사람들입니까.

험난한 기아의 고개에서도
부모의 손을 뿌리친 적 없고
아무리 무서운 전란의 들판이라도
등에 업은 자식을 내려놓은 적 없었습니다.

남들이 앉아 있을 때 걷고
그들이 걸으면 우리는 뛰었습니다.
숨 가쁘게 달려와 이제
꿀과 젖이 흐르는 땅이 눈앞인데
이 낭떠러지에서 그대로 떨어지라 하십니까.

벼랑이 벼랑인 줄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어쩌다가 '북한이 핵을 만들어도 놀라지 않고
수출을 3,000억 달러를 해도
웃지 않는 사람들"이 되고 말았습니까.
거짓 선지자들을 믿은 죄입니까.
남의 눈치 보다 길을 잘못 든 탓입니까.

정치의 기둥이 조금만 더 쏠려도,
시장경제의 지붕에 구멍 하나 더 나도,
법과 안보의 울타리보다 철없는 자의 키가
한 치만 더 높아져도
그때는
천인단애(千仞斷崖)의 헛발을 내딛는 추락입니다.

덕담이 아니라 날개를 주십시오.
비상(非常)에는 비상(飛翔)을 해야 합니다.
독기 서린 정치인들에게는
비둘기의 날개를 주시고,
살기에 지친 서민들에게는
독수리의 날개를 주십시오.
주눅 든 기업인들에게는
갈매기의 비행을 가르쳐 주시고
진흙 바닥에 처박힌 지식인들에게는
구름보다 높이 나는 종달새의 날개를 보여주소서.

날게 하소서.
뒤처진 자에게는 제비의 날개를,
설빔을 마련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공작의 날개를,
홀로 사는 노인에게는 천 년 학의 날개를 주소서.
그리고 남남처럼 되어 가는 가족에는
원앙새의 깃털을 내려 주소서.

갈등과 무질서로 더 이상 이 사회가 찢기기 전에
기러기처럼 나는 법을 가르쳐 주소서.
소리를 내어 서로 격려하고
선두의 자리를 바꾸어 가며 대열을 이끌어 간다는
저 신비하고 오묘한 기러기처럼
우리 모두를 날게 하소서.

아닙니다. 아주 작은 날개라도 좋습니다.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지금 외치는 이들 소원을 들어 주소서,

은빛 날개를 펴고 새해의 눈부신 하늘로 날아오르는
경쾌한 비상의 시작!
벼랑 끝에서 날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