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27일 화요일 미국의 저명한 작가인 죤 업다이크 (John Updike, 1932-2009)가 76세를 일기로 메사추셋트주의 한 작은 마을 덴버 호스피스방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펜실바니아주 한 자그마한 마을 레딩에서 태어나 하바드대학에서 영어를 전공한 지성파작가로서, 소설, 에세이, 평론, 시 등 다양한 문학작품활동을 벌려 60여권에 달하는 책을 출판한 왕성한 작가였습니다.

저도 그의 책을 오래전이지만 읽어 본적이 있어서 마음속으로 안타까워하면서 그가 저술한 작품들을 뒤적이다가 아직 발표하지 않은 죤 다이크 시의 한 구절을 읽으면서 무릎을 치고 ‘기독교는 역설적인 진리이다’라는 진리를 새삼스럽게 마음속에 되새겼습니다.

“역설적인 진리이다”라는 뜻이 무엇입니까? 어떠한 현상은 보여지는 사실, 즉 현실대로 이러 이러한 것임을 나타내고 있는데, 그러나 오히려 그 현상은 그러하기 때문에 그것 속에서 그것과 반대되는 것을 돋보이게 한다는 진리, 즉 진실이라는 설명입니다. 바로 기독교가 그렇다는 말입니다. 죤 다이크의 시 한 구절에서 이 역설적인 기독교진리관을 새롭게 확인한 것입니다.

죤 다이크의 시구절은 이렇게 쓰여졌습니다.

생명은 초라한 구실이고
그리고 죽음은 현실이고, 어둡고, 거대하다.
죽음의 충격은 아무 곳이 아니라
죽음이 일어나는 곳에 기록되리라.

For life's a shabby subterfuge,
And death is real, and dark, and huge.
The shock of it will register
Nowhere but where it will occur.

('Requiem' from forthcoming "Endpoint and Other Poems.")

시인은 이 시구절에서 생명과 죽음에 대하여 관찰하고 있습니다. 그는 생명과 죽음에 관한 현실적인 사실, 즉 보이는 진실을 뚜렷하게, 직설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생명은 현실적인 눈으로 살펴보면 구질구래 초라하기 짝이 없고 세상적인 삶에는 무슨 구실과 핑계가 그리많은지, 어떠한 일도 좋으면 자랑스러운 핑계를 대게 되고, 좋지 않으면 불평의 구실을 열거하기에 열을 올리게 되는 것이 우리가 생명을 유지하는 삶입니다.

그러다가 죽음은 반드시 오는 현실적이며, 죽음후의 일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심연의 어두움인 것이고, 더 나아가 너무 거대하기 때문에 불확실하고 허망하다는 것이며, 죽음이 가져다 주는 충격은 지금까지 아무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누구나 무엇에나 어디에나 속한 관념적인 것이 아니고 죽음이 일어나는 현장에서만 끔직하게 경험해야하는 충격을 안겨다 주는 것이라고 시인은 관찰합니다.

생명과 죽음에 대한 시인의 발랄하고 직설적인 표현을 읽으면서 내가 직접 접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현장적 심령의 경험을 맛보았습니다. 여기에서 언뜻 죤 다이크가 시적 형상화를 통하여 형이상으로 암시하고자 하는 요체가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것은 다름 아니라 기독교의 역설적 진리이었습니다.

생명(삶)은 초라한 구실이기 때문에 초라한 구실속에서 풍성한 당위(창조)를 간절히 바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죽음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고 깊은 구렁텅이의 어두움이고 도무지 가늠할 수 없는 불확실한 것이고 현장적인 충격이 크기 때문에 현실속에서 장래를, 어두움속에서 빛을, 불확실속에서 확실을, 충격속에서 평강을 분명히 바라보고 기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초라함이 있기 때문에 풍성함이 더 돋보이고 가치있다는 역설입니다. 현실과 어두움과 불확실과 현장충격이 있기 때문에 소망과 빛과 확실과 평강의 참된 가치가 더 두드러지게 들어 난다는 역설적 진리를 의미합니다.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더 풍성하다는 성경의 진리와 통하는 내용입니다.

여기에서 조심하고 주의해야 할 것은 은혜의 풍성함을 얻기 위하여 죄를 더 많이 짓자는 뜻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생명의 풍성함을 더 얻기 위하여 생명의 초라함을 더 영위하자는 의미나, 죽음후의 소망과 빛과 확실과 평강을 더 분명하게 하기 위하여 죽음의 실재와 어두움과 불확실과 충격을 일부러 더 경험하자는 의미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이러한 역설적인 진리를 기독교는 주장하고 강조합니까? 이 세상에 가득 차 있는 초라함과 현실과 어두움과 불확실과 충격을 올바로, 분명하게, 정확하게 깨닫고, 겪어보고, 체험했을 때에만 참된 역설적인 진리를 터득하고 그 진리에로 돌아와 참된 기독인의 삶을 살아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것이 바로 기독교의 역설적 진리의 삶입니다.

/백 순, 미국노동성선임경제학자/지스카자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