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면서 본지는 워싱턴 지역의 한인교회들이 초창기 한인교회들의 역사를 돌아보면서 새로운 미래를 열어나갈 수 있도록 김택용 목사의 글을 연재한다. 김택용 목사는 1976-77년 제2대 워싱턴지역 한인교회협의회 회장을 역임한 워싱턴교계의 살아있는 증인이다. 김택용 목사는 현재 워싱턴한인장로교회 원로목사이며 워싱턴 신학교 학장을 맡고 있다.

김 목사는 워싱턴한인사회의 시작과 발전-역사 이전의 한인교회, 초창기 한인교회 12교회, 초창기 교회 통합 운동과 초기 교회 연합사업 등에 대해서 집필했다.


3)세 번째로 세워진 교회-워싱턴 한인장로교회

워싱턴지역에서 세 번째로 세워진 한인교회는 1965년 7월에 시작된 워싱턴 한인장로교회이다. 그러니까 워싱턴지역에는 1956년부터 그 때까지 약 10년 가까이 화부 한인감리교회와 제일한인침례교회가 양립되어 있었다. 미주의 다른 지역에서도 마찬가지로 워싱턴에서도 교인들의 분포로 볼 때에는 장로교 교인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는 한국에서 장로교단의 교세가 다른 교단에 비하여 월등히 크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교포수의 증가와 함께 장로교회가 수립되기를 바라는 교인들이 점점 많아지는 추세였다.

1961년 한국의 5. 16 군사 혁명 때에 미국에 온 강경옥 장로와 워싱턴에 거주하고 있던 박원봉 목사 그리고 김순복 씨 등 12명이 뜻을 모아 1965년 7월 4일에 첫 예배를 드리고 7월 11일에 Howard University Chapel에서 교회 설립 예배를 드렸다. 교회 설립 위원장을 맡았던 강경옥 장로가 초대 교역자로 시무 하게 되었다.

이로써 워싱턴 한인장로교회는 1965년 7월 15일, 이 지역에 세 번째로 수립된 교회가 된 것이며 워싱턴 지역 최초의 장로교회가 된 것이다. 그 때 당시의 한인은 약 800명 정도로 늘어나 있었다. 초기에는 예배 장소가 마땅치 않아 임시 모임 장소로 Washington DC의 Howard University Chapel과 National Presbyterian Church등을 전전하다가 백악관 근처의 New York Avenue Presbyterian Church에 정착하였다. 워싱턴한인장로교회가 이 교회에 정착할 수 있었던 것은 New York Avenue Presbyterian Church의 특별한 배려에 기인하지만 이 교회가 소속하고 있는 연합장로교회 교단의 선교정책, 특히 소수민족 교회에 대한 인식이 변해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미국연합장로교회(United Presbyterian Church) 교단에서는 1959년까지 “이민으로 온 소수 민족이 미국에 와서 자기들의 말로 예배드리는 것을 허락 할 수 없고, 누구를 막론하고 장로교회당에서 모두 영어로 통일하여 예배를 드린다.”는 선교 정책을 고수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정책은 시대의 변천과 함께 1959년에 이르러 상기 선교 정책을 수정할 것을 총회에 상정하여 “외국어를 사용하는 장로 교인들이 교회당을 빌려서 자기들의 언어로 예배를 드려도 무방하다.”고 하는 획기적인 수정 결정을 내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배경 속에서 워싱턴 한인장로교회는 New York Avenue Presbyterian Church로부터 적극적인 후원을 받으면서 성장의 기틀을 잡아갔다. 1966년에 안상엽 목사가 제2대 담임 목사로 부임하여 4년 동안 시무 하였고 1970년 5월에 김택용 목사가 제 3대 담임 목사로 부임하였다. 동 교회는 1975년에 Alexandria에 있는 Bible Protestant Church를 구입, 자체 교회당을 마련하였다. (이윽고 교회가 부흥함에 따라 1981년에는 Burke, VA에 있는 5에이커 대지에 있는 Church of God 교회당을 구입, 이전하여 교회 중흥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동 교회는 1998년에 9524 Braddock Road, Fairfax, VA 소재 Calvary Baptist Temple을 구입하였으며, 김택용 목사는 2000년 30년 목회 후 원로 목사로 은퇴하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