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간 딸아이가 지난 가을부터 학교 실험실에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없는 시간을 쪼개어 일하는 것이 안쓰럽기는 했으나, 일하는 과정이 재미있다고 하여 다행으로 생각했습니다. 저는 부모님에게서 배운 것처럼, 일을 시작하는 딸아이에게 돈을 받으면 가장 먼저 십일조 헌금을 드리라고 다짐해 두었습니다. 그런 것은 미리 가르쳐 두지 않으면 나중에는 결심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겨울 방학 동안 이곳에 함께 있을 때, 그 동안 번 돈이 딸의 은행 계좌에 입금이 되었습니다. 자신이 번 돈에서 빠져 나간 세금 액수를 보더니 “원래 나라에서 이렇게나 많이 떼 가는 거야?”라고 물으며 놀랍니다. 저는 그 세금을 아까워하지 말라고, 네가 정부로부터 받는 학비 보조금을 따져 보면 그 세금이 전혀 아깝지 않을 거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조심스럽게 “십일조 헌금은 드렸니?” 하고 물었습니다. 이런 문제일수록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합니다. 강제가 되면 오히려 역효과만 나기 때문입니다. 딸아이는 “드려야지요. 가만 있자. 그런데 십 퍼센트면 얼마야?” 그러더니 금세 이렇게 말합니다. “허걱! 그렇게나 많이? 아, 달콤한 아침잠을 희생하면서 번 돈인데, 잉잉잉!”

저는 딸아이의 응석을 들으면서 마음이 짠했습니다. 내 지갑에서 돈을 꺼내 “야, 이거로 십일조 내고, 네가 번 돈은 네가 써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좋은 교육이 아니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최대한 목소리를 낮추어서 왜 십일조를 드려야 하는지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아까운 돈일수록 더욱 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는 것과 십일조는 우리를 물질주의로부터 보호하려는 하나님의 안전장치라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다행히도 딸아이는 기쁜 마음으로 순종했습니다.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저는 그 점에 대해 참으로 기뻤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제가 어릴 적에 어머니께서는 자주 십일조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직장을 갖고 첫 월급을 받으면 그것을 첫 열매로 여겨 하나님께 드리라는 말씀도 덧붙이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것을 당연히 여기며 자랐습니다. 저는 어머님의 그 가르침에 대해 감사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것이 저를 물질주의로부터 보호해 주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도 아이들에게 그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제 아이들이 돈만 아는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자기만 아는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의 주인이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어떤 교훈이든, 어렵게 체득한 교훈일수록 오래 갑니다. 처음 받아 든 보수를 들고 버들버들 떨면서 십일조를 떼 내고 나면, 그 교훈은 결코 잊혀 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 결심의 순간, 아이는 인생의 주권이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그 아이의 앞으로의 인생에 큰 지침이 될 것입니다.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믿음을 지키려면 가장 큰 싸움은 바로 물질주의와의 싸움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