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놀부! 거기서 그러면 어떻게 해요. 다시. 다시.”, “대사 하고 손 쑥 넣어서 돈을 빼야지. 주머니 왜 만지세요?”, “지금 거기 그렇게 서면 왼쪽 관객은 보여도 오른쪽 관객이 배우를 못 봐요. 자리를 거기, 네 거기, 거기 서야지.”

일기예보에선 18일 밤부터 폭설과 폭풍이 예상된다고 하는데 방금 전 시카고한인제일연합감리교회 본당에서는 한바탕 서릿발이 내렸다. 오는 21일 시카고한인제일연합감리교회 주일대예배에선 교회 성도들과 지역 주민들을 향해 성극의 막이 오른다. 지난 9월 28일 발족된 성극사역위원회가 선보이는 두번째 연극이다. 시카고 지역에선 윌로크릭교회가 주일예배 때나 각종 절기 때 성극을 선보이긴 하지만 한인교회 중에는 전문화된 성극을 하는 교회가 아직은 없다. 시카고한인제일연합감리교회는 성극의 복음전달 효과에 주목하며 성가대처럼 전문 성극사역위원회를 만들었다.

지금 연습 중인 “놀부야, 하나님이 부르셔”의 배우들은 모두 아마추어다. 성극사역위원회의 위원장 김귀숙 집사, 연출을 맡은 김주성 선생, 서현주 씨는 제외하고다. 김 집사는 십여년 전 시카고 한인 YWCA에서 막을 올려 힛트한 ‘에스더’에서 하만 역으로 열연한 바 있고 김주성 선생(모뉴망미술학원)은 미술 전공자지만 대학 동아리부터 시작해 40년 연극인생이다. 서현주 씨는 대학생 때 연극을 공부한 연극학도다.

나지막한 어둠 속에서 스크루지 놀부와 저승에서 방문한 그의 친구 ‘허풍선’의 대화가 한참 오가자 조명이 밝아지고 또 한차례 서릿발이 시작됐다. 배우의 자세, 위치, 대사, 감정 이입, 발성, 음향효과까지 아주 골고루 지적이 오고 간 후, 배우들이 한차례 토론을 벌인다. 다시 불이 꺼지고 그 장면이 시작됐다.

▲기자가 볼 때는 만점이라도 아직도 뭐가 부족한지 연출자와 배우, 스탭들의 지적과 토론이 한동안 오고 간다. 그러나 한참동안 토론한 후 그들의 연기는 뭔가 달라졌다.
“김 선생님. 벌써 밤 10시인데 아직 연습하세요?”
“네.”
“이 정도만 해도 제가 볼 땐, 뭐 프로 뺨 치겠는데요.”
“아직 멀었어요.”
“교회에서 이 정도 하는 것도….”
“에이. 더 프로답게 해야죠. 지금은 한 50점도 못 줘요.”

또 불이 환히 켜진다. 기자가 볼 때는 감정 전달도 잘 됐고, 조명도 좋았고 연기도 좋았다. 그런데 김주성 선생과 서현주 씨가 또 배우들에게 한바탕 한다. 다시 불이 꺼졌다. 이번엔 제대로 뭐가 나왔다.

“오케이.”

보통 일주일에 세번, 공연을 일주일 앞두곤 매일 저녁 9시부터 3-4시간 연습한다고 한다. 교회에서 하는 장기자랑이나 찬양의 밤 정도 행사로는 뭔가 부족하다. 성극 분야를 개발해서 성도에겐 감동과 은혜를, 불신자에겐 복음을 전하는 도구로 사용하려는 성극사역 멤버들의 노력은 오늘도 자정을 넘기려나 보다. 폭설이 걱정돼 이만 일어나자, 문 밖에서 잠깐 쉬고 있던, 검은 옷에, 검은 삿갓, 쇠사슬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허풍선’이 “조심들 해서 가세요”라고 인사한다. 성극이 가질 수 있는 복음전달 효과에 얼마나 기대를 걸 수 있을까? 오는 주일 11시 시카고한인제일연합감리교회 본당에서 그 막이 오른다.
김준형 기자


▲김귀숙 성극사역위원장
성극위원회 김귀숙 위원장 인터뷰

-성극사역위원회에 대해 소개해 달라.

성극사역위원회는 지난 9월 28일 창립식을 갖고 시카고한인제일연합감리교회 산하 사역부서 가운데 하나로 정식 발족했다. 성가대와 마찬가지로 성극을 통해 예배를 섬기는 일을 담당하게 된다. 성극사역은 이미 윌로우크릭교회나 한국 온누리교회 등에 잘 정착돼 활성화 되고 있다.

-성극사역위원회가 교회 사역부서로 발족하게 된 배경은.

작년에 교회에서 주기철 목사의 생애를 그린 “마지막 선택”이란 작품을 공연했다. 이에 대한 반응이 너무 뜨거워 성극을 교회 내 하나의 부서로 만들자는 제의가 들어 왔다. 성극이 얼마나 많은 시간과 정성이 필요한지 잘 아는 나로서는 성극위원회 위원장 제의를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하고 망설였다. 하지만 결국 하나님 앞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위원장직을 맡게됐고 이후 위원들이 하나, 둘 섭외되면서 눈에 보이는 사역부서로서의 윤곽을 드러내게 됐다.

오늘날과 같은 현대에 말로 “예수 믿어라”고 해서 제 발로 교회에 찾아오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교회에서 연극, 음악회 등 문화공연이 열린다고 하면 많은 불신자들이 몰려든다. 이와 같은 문화적 컨셉이 불신자들에게 거부감없이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방편으로 사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성극사역위원회는 이러한 목적을 갖고 교회의 덕을 쌓는 일에 앞장 서 나갈 것이다.

-성극사역위원회의 인원 구성은 어떻게 되는가.

성극은 모든 분야의 구성원들이 한마음으로 움직일 때 합력해서 선을 이룰 수 있는 작업이다. 현재 성극사역위원회에는 배우, 조명, 미술, 음악, 영상, 무대장치, 연출 등 각 파트에 걸쳐 약 50여 명의 위원들이 참여하고 있다. 한 작품에 20~30명 정도가 참여하기 때문에 이들이 인원이 서로 교대하며 사역을 감당해 나가고 있다.

-성극이 전문분야인데 관련 전문가들은 얼마나 포진돼 있나.

전공자나 관련 일을 해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두가 다 아마추어로 구성돼 있다. 하지만 연출을 맡은 김주성 선생은 대학시절부터 연극 경험을 갖고 계신 분이다. 이분께서 성극 전반에 걸친 부분을 지도해 주고 계시다. 비록 아마추어들이 하는 성극이지만 준비만큼은 여느 연극공연 못지 않게 완벽한 수준으로 진행되고 있다.

-연습은 어떻게 진행하나.

다들 직장을 갖고 있기 때문에 늦은 저녁 9시에 모여 3시간 가량 연습을 한다. 매주 최소 3번씩은 반드시 모여 연습을 하고 공연이 있는 마지막주에는 매일마다 모여 연습을 갖는다. 바쁜 이민사회에서 주중에 모인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데 다들 자원해서 맡은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앞으로의 일정은.

이번 성극위원회 발족공연이 끝나고 난 뒤 내년에 있을 부활절, 감리교지도자대회, 창립기념일 공연 등의 연습 일정에 들어가게 된다. 확실치는 않지만 중간에 예배시간에 들어갈 스킷 드라마도 몇편 준비할 계획이다. 이제 성극위가 걸음마를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어떠한 방향이 될지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지만 한단계 한단계 주어진 상황에 충실하다보면 사역의 구체적인 길도 새롭게 열어 주시리라 믿는다.
이화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