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 오후 갈릴리감리교회 예배당을 웅장한 테너의 목소리가 휘감고 지나가자 예배당의 은혜와 감동이 문 밖까지 흘러 나왔다. 문에 귀를 대자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 찬양을 듣고 누군가 은혜받고 회개하면 한 영혼을 살리는 겁니다.” 예배당 안에는 몇 명의 학생들이 전성진 목사로부터 성악 지도를 받고 있었다. 고음에 학생들이 머리를 긁적이자 전 목사가 ‘숨을 어떻게 쉬어라’, ‘입 모양을 어떻게 해라’라고 몇 마디 하자 학생들의 목소리가 부드럽게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찬양콘서바토리는 지난 3월 개교한 음악학교다. 교회가 필요로 하는 음악인을 양성하겠다는 전성진 목사의 오랜 바람에 몇몇 뜻있는 기독교인 음악인들이 참여해 태동됐다. 목회자이면서 동시에 미국 사회에 잘 알려진 음악인인 전성진 목사. 그는 노스웨스턴대학에서 전액 장학생에 생활비까지 지급받으면서 공부해 음악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어메리칸콘서바토리의 부총장까지 역임했다. MBC FM 라디오 일요음악회에서 3년간 해설을 맡기도 했고 시간당 200불씩 레슨비를 받으며 많은 학생들을 양성했다. 유명한 무대, 유명한 학교에서 유명한 사람들과 함께 음악을 해 왔다. 시카고에서 누구나 알만한 대형교회에서 지휘를 맡기도 했다. 미국 주류사회에서는 Dr. Cheon, Prof. Cheon으로 통한다. 그러나 그는 “나를 가장 영광스럽게 하는 이름은 Rev. Cheon”이라며 오히려 Dr.와 Prof.이길 거부한다.
그가 찬양콘서바토리를 시작한 이유는 간단하다. 미국 교회는 교회 음악이 교회의 일부이다. 교인들은 교회음악에 적극 참여하고 이를 돕고 후원하고 장려한다. 간단히 말해 저변이 넓다. 그러나 시카고, 특히 이 지역 한인교회의 교회음악은 어떨까? 전 목사는 “각 교회가 지휘자를 구하면서도 그들을 키울 생각은 도무지 하지 않는다”며 쓴소리를 했다. 교회는 음악인을 키우지 않고 음악인을 키우지 않으니 음악이 살아날 리 없고, 음악이 살지 않으니 교회도 힘들어질 수 밖에 없는 악순환이다.
그래서 전 목사는 “교회에 필요한 사람, 교회가 필요로 하는 사람을 키우겠다”라는 신념으로 찬양콘서바토리를 시작했다. 전 목사가 나서자 그를 존경하는 시카고 지역의 전문 음악인들이 모여들어 교수를 자처했다. 학생들은 누구라도 좋다. 현재도 20대에서 60대까지, 평신도부터 목회자까지 다양하다. 현직 대학 교수 몇 명도 학생으로 있다. 다만 조건은 반드시 여기서 배운 것으로 교회에 봉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학비는 200불이다. 원래는 무료였지만 교수와 학생들이 책임감있게 수업에 임할 수 있도록 교통비 정도로만 200불을 책정했다. 전 목사만 해도 매주 이 수업을 위해 50마일 이상을 달려 온다.
전 목사는 “이 학교는 기적”이라고 말한다. 한 시간만 레슨해도 100불 이상을 벌 수 있는 대학 교수들이 ‘몸이 부서지도록 피곤해도’ 바쁜 시간을 꼭 내서 수업에 오는 것이 기적이다. 성가대 한번 서 보는 것이 소원이라는 집사님이 이 학교에서 성악을 배우는 것이 기적이다. 10여 명의 교수와 40여 명의 학생들이 0%의 결석률을 기록하는 것이 기적이다. 학위도 아직 줄 수 없는데 학생들이 계속 모여드는 것도 기적이다. 오르간 연주 지망자들이 연주할 장소가 없으니 교수가 자기 집에서 레슨을 해 주고, 한 교회에서 교회 오르간을 연주자들에게 개방한 것도 기적이다.
음악학교라고 음악만 가르치진 않는다. 통신과정으로 신앙교육을 끊임없이 시킨다. “왜냐고요? 아무리 음악 잘하게 가르쳐 놓아도 교회에 봉사 안하면 결국 헛것이죠. 신앙이 없으면 봉사를 안하니 신앙을 가르쳐야죠.”
찬양콘서바토리는 두 가지 꿈을 꾸고 있다. 하나는 일반인들의 평생교육원이 되어서 시카고 한인교계에 음악인들을 공급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정식 대학으로 등록해 음악 지도자들을 양성하는 것이다. 이미 정식 대학이 되고 있는 과정도 하나님께서 기적으로 인도하고 계시고 불가능 속에서 가능성이 열리고 있다.
“왜 이렇게 기적이 자꾸 일어나냐고요? 그건 하나님의 교회에 필요한 사람, 교회가 필요로 하는 사람을 키워내려고 하기 때문이죠.”
전 목사는 박사이길, 교수이길 거부한 영락없는 목사다. 인터뷰를 마치자마자 그는 다시 예배당으로 뛰어간다. “삼일간 매일 두시간 밖에 자지 못했고 잇몸이 찢어져 피가 난다”는 그가 입을 열어 노래할 때마다 그의 학생들은 ‘하나님의 악기’로 만들어져 가고 있다.
찬양콘서바토리는 지난 3월 개교한 음악학교다. 교회가 필요로 하는 음악인을 양성하겠다는 전성진 목사의 오랜 바람에 몇몇 뜻있는 기독교인 음악인들이 참여해 태동됐다. 목회자이면서 동시에 미국 사회에 잘 알려진 음악인인 전성진 목사. 그는 노스웨스턴대학에서 전액 장학생에 생활비까지 지급받으면서 공부해 음악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어메리칸콘서바토리의 부총장까지 역임했다. MBC FM 라디오 일요음악회에서 3년간 해설을 맡기도 했고 시간당 200불씩 레슨비를 받으며 많은 학생들을 양성했다. 유명한 무대, 유명한 학교에서 유명한 사람들과 함께 음악을 해 왔다. 시카고에서 누구나 알만한 대형교회에서 지휘를 맡기도 했다. 미국 주류사회에서는 Dr. Cheon, Prof. Cheon으로 통한다. 그러나 그는 “나를 가장 영광스럽게 하는 이름은 Rev. Cheon”이라며 오히려 Dr.와 Prof.이길 거부한다.
그가 찬양콘서바토리를 시작한 이유는 간단하다. 미국 교회는 교회 음악이 교회의 일부이다. 교인들은 교회음악에 적극 참여하고 이를 돕고 후원하고 장려한다. 간단히 말해 저변이 넓다. 그러나 시카고, 특히 이 지역 한인교회의 교회음악은 어떨까? 전 목사는 “각 교회가 지휘자를 구하면서도 그들을 키울 생각은 도무지 하지 않는다”며 쓴소리를 했다. 교회는 음악인을 키우지 않고 음악인을 키우지 않으니 음악이 살아날 리 없고, 음악이 살지 않으니 교회도 힘들어질 수 밖에 없는 악순환이다.
그래서 전 목사는 “교회에 필요한 사람, 교회가 필요로 하는 사람을 키우겠다”라는 신념으로 찬양콘서바토리를 시작했다. 전 목사가 나서자 그를 존경하는 시카고 지역의 전문 음악인들이 모여들어 교수를 자처했다. 학생들은 누구라도 좋다. 현재도 20대에서 60대까지, 평신도부터 목회자까지 다양하다. 현직 대학 교수 몇 명도 학생으로 있다. 다만 조건은 반드시 여기서 배운 것으로 교회에 봉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학비는 200불이다. 원래는 무료였지만 교수와 학생들이 책임감있게 수업에 임할 수 있도록 교통비 정도로만 200불을 책정했다. 전 목사만 해도 매주 이 수업을 위해 50마일 이상을 달려 온다.
전 목사는 “이 학교는 기적”이라고 말한다. 한 시간만 레슨해도 100불 이상을 벌 수 있는 대학 교수들이 ‘몸이 부서지도록 피곤해도’ 바쁜 시간을 꼭 내서 수업에 오는 것이 기적이다. 성가대 한번 서 보는 것이 소원이라는 집사님이 이 학교에서 성악을 배우는 것이 기적이다. 10여 명의 교수와 40여 명의 학생들이 0%의 결석률을 기록하는 것이 기적이다. 학위도 아직 줄 수 없는데 학생들이 계속 모여드는 것도 기적이다. 오르간 연주 지망자들이 연주할 장소가 없으니 교수가 자기 집에서 레슨을 해 주고, 한 교회에서 교회 오르간을 연주자들에게 개방한 것도 기적이다.
음악학교라고 음악만 가르치진 않는다. 통신과정으로 신앙교육을 끊임없이 시킨다. “왜냐고요? 아무리 음악 잘하게 가르쳐 놓아도 교회에 봉사 안하면 결국 헛것이죠. 신앙이 없으면 봉사를 안하니 신앙을 가르쳐야죠.”
찬양콘서바토리는 두 가지 꿈을 꾸고 있다. 하나는 일반인들의 평생교육원이 되어서 시카고 한인교계에 음악인들을 공급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정식 대학으로 등록해 음악 지도자들을 양성하는 것이다. 이미 정식 대학이 되고 있는 과정도 하나님께서 기적으로 인도하고 계시고 불가능 속에서 가능성이 열리고 있다.
“왜 이렇게 기적이 자꾸 일어나냐고요? 그건 하나님의 교회에 필요한 사람, 교회가 필요로 하는 사람을 키워내려고 하기 때문이죠.”
전 목사는 박사이길, 교수이길 거부한 영락없는 목사다. 인터뷰를 마치자마자 그는 다시 예배당으로 뛰어간다. “삼일간 매일 두시간 밖에 자지 못했고 잇몸이 찢어져 피가 난다”는 그가 입을 열어 노래할 때마다 그의 학생들은 ‘하나님의 악기’로 만들어져 가고 있다.
© 2020 Christianitydaily.com All rights reserved. Do not reproduce without permis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