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이 44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습니다.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이 당선된 밤은 마치 케네디 대통령이 당선된 날을 연상시켰습니다. 과거에는 흑인인권 투쟁이 점화되는 시기로 극심한 사회적인 갈등이 끓어오르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전에 없던 경제 위기를 맞아 사회적인 불안이 고조되고 있는 시기입니다. 당시에 케네디 대통령은 젊은 미국을 만들 희망이었습니다. 오바마 당선인도 새로운 미국을 보여주는 희망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케네디 대통령은 캐톨릭 아이리시로서 처음 대통령이 된 인물입니다. 오바마 당선인은 아프리카 혈통으로서 최초의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는 동일한 아이리시로 보이지만 개신교 아리리시와 캐톨릭 아이리시는 거의 다른 민족이라고 할 만큼 다릅니다. 오랜 세월 영국인의 통치를 받으면서 차별 당한 식민 민족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역사적인 반목이 끊임없는 전쟁으로 이어질 만큼 서로 이질적인 문화 속에서 살아 왔습니다. 아프리카인들이 수백 년간 피 지배민족으로 고통 받으면서도 서로 갈등하면서 살았던 것과 비슷합니다.

300년 전에 이민을 오기 시작한 개신교 아이리시들은 고용된 하인으로 또는 주인의 소유가 된 종으로 미국 땅에 건너왔습니다. 그들은 농사와 목축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습니다. 아일랜드의 기근으로 인해서 150년 전에 수백만 명 규모로 대거 이민 오게 된 캐톨릭 아이리시들은 먼저 온 개신교 아이리시들 손에서 가장 고되고 힘든 일만 맡아서 하는 사회 최하층 계급이 되었습니다. 당시에 뉴욕에서 보스톤에 이르기까지 캐톨릭 아이리시들은 조롱과 폭력, 차별과 부당 대우를 당하는 대표적인 민족이었습니다.

미국이 건국되기 전에 농업과 목축업에 뛰어들었던 개신교 아이리시들이 미국 독립을 기해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 일에 대거 뛰어 들었습니다. 워싱턴 대통령을 위시해서 클린턴과 부시에 이르기까지 22명의 미국 대통령이 개신교 아이리시 계통입니다. 그러나 150년 앞 선 개신교 아이리시들에게 밀려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던 캐톨릭 아이리시들이 최초의 대통령을 배출한 것은 저들의 본격적인 이민 역사가 시작된 지 120년 만에 가능했습니다.

캐톨릭 아이리시 출신 대통령이 물꼬를 트는데 일조를 한 민권운동의 결실이 이제 50년 만에 맺어졌고 아프리칸 어메리칸이 미국의 주류를 장악해서 대통령을 내기까지 30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버락 오바마는 유년기에 아버지와 떨어져 10살부터는 외조부의 양육을 받았습니다. 그를 키워주고 길을 열어준 외할아버지는 아이랜드 머니갤에서 150년 전에 건너온 아이리시 이민자의 증손자였습니다. 오바마 상원의원의 10촌 벌 되는 친척 중에는 해리 트루먼 대통령과 딕 체이니 현 부통령이 있습니다.

아프리칸 어메리칸이 겪었던 고통의 역사를 아이리시들의 역사에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수백 년에 걸쳐서 맺힌 아프리칸 어메리칸의 한이 풀어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건국 때부터 미국의 수치와 원죄로 남아있던 짐이 이제 풀리게 되었습니다. 이를 바라보면서 우리 코리언 어메리칸을 생각해 봅니다. 아이리시들이 일군 나라에서 아프리칸 어메리칸이 쟁취한 인권을 누리면서 살고 있는 우리가 150년이 지나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 지 그려봅니다. 미국 역사도 민족들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라와 민족을 사용하시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한민족을 사용하실 날을 고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