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는 마음을 담는 그릇이고 마음은 생각을 담는 그릇입니다. 언어는 축적된 마음의 생각을 나타내는 표현이기에 언어를 알면 문화가 보입니다.

각 나라에서 전화를 받을 때 쓰는 표현은 그 나라의 문화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누구십니까?" 하는 간단한 전화상의 질문도 각 나라의 언어에 따라 표현하는 방법이 다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영어의 경우 "Who's calling, please?" 하고 질문을 하지만 스페인어의 경우에는 ?De parte de quien?" (전화 거신 분이 어떤 분의 전갈이십니까?)" 하고 복잡하게 질문을 합니다.

이는 전화를 건 사람이 귀족인 경우 절대로 직접 다이얼을 돌리지 않고 비서나 수하의 사람(종)을 시켜서 전화를 걸게 하고 전갈을 넣어 통화하고자 하는 당사자를 바꾸어 주게끔 하는 귀족 문화 또는 식민지 문화에서 나온 표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만큼 스페인어를 쓰는 나라에서는 계급주의(classism)가 뿌리 깊게 언어 가운데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런 반면에 영어를 쓰는 나라는 그러한 계급주의보다는 인종(차별)주의의 표현들이 도처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한국말의 경우에는 우리 역사상 어려운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마음이 인사에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밤새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별고 없으셨지요?" 하는 인사들은 마치 별고 있는 것이 의례 있던 상황에서 무탈하니 다행이라는 안도의 인사가 그 배경에 깔려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진지 잡수셨습니까?" 하는 인사법도 끼니를 굶는 것이 예사인 시대가 있었기에 그런 인사법이 나온 것입니다.

이와 같이 언어는 마음의 생각이 축적되어 오랜 세월을 통해 나타나고 사용된 결과입니다.성경의 언어도 하나님의 문화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들에게는 자연스럽지 못하고 아직 익숙하지 못한 하나님의 뜻과 경륜이지만 그 가운데 깊이 있게 하나님의 생각을 보여주고 있는 단어들이 있습니다.

개혁성경에서 "권세"(요1:21)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는 "ex-ousia"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ex는 "~ 으로부터" (out of)라는 뜻이고 ousia는 "본질 또는 신분"이란 뜻을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권세는 바로 "본질 또는 신분으로부터 오는 것"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권세는 상당한 파워와 권위를 지니지만,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신분에서 오는 것이란 뜻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문화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그 문화가 우리에게 적용되기 시작하는데 여러 가지 파워풀한 능력이 나타나는데 이러한 것들을 인간의 문화에서는 기적이라고 여기지만 하나님의 문화에서는 아주 자연스럽고 평상적인 것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문화를 깊이 있게 이해하게 되면 이적과 표적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나타나는 문화의 한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언어는 문화를 담고 생각을 담고 마음을 담기 때문에 엄청난 파워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에도 다른 것이 아닌 바로 언어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언어를 우리에게 주셔서 그 언어로 하나님을 알고 그분의 문화를 깨닫게 하셨습니다.

성서의 언어를 배우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을 더욱 아십시오. 언어는 능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