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싱톤한인교회가 태어나던 그 날에 대해 <와싱톤한인교회 삼십오년사>에서 장대욱 장로님은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성도의 정성어린 기도를 응답하신 하나님의 축복과 은총으로 1951년 10월 14일 오후 3시에 파운드리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며 와싱톤한인교회가 탄생하였다. 장소는 Foundry United Methodist Church, 1500 16th Street, N. W., Washington, D. C. 16가와 P거리가 만나는 코너에 자리 잡았다.

이에 앞서 날짜는 10월 10일 김태묵, 박원규, 고병철 3인의 이름으로 초청장을 발송했는데, 이 중 김태묵은 목사요, 박원규는 평신도 대표, 고병철은 학생 대표였다. 그런데 그 초청장을 지금 보면 파격적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당시에 조촐했던 교포 사회와 함께 우리 교회의 모습을 시사하는 것 같아서 그 첫 대목을 그대로 옮긴다.

“몬저 우리가 뫃여서 예배(김태묵 목사 지도하에)를 보고, 그 후 사무처리회를 열고, 교회 건설에 관한 구체적인 안을 토의 하고저 합니다. 그 날은 만사 제폐하시고 참석하야 주심을 앙망하나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한글로 큼직하니 내려 쓰며 허두(머리말)가 전혀 없는 것이다. 즉 “경계자”니 “친애하는 교포...”같은 상투어가 없다. 또 첫 예배 순서지에는 날짜마저 기입하지 않았고, 역시 큰 글씨로 종서(내려쓰기)하였다. 이런 소탈한 성격은 교회의 오랜 전통으로 남아서 1970년대의 어지러운 교포 교계에서 자중을 지키는 요소가 되었다.

창립예배 때에는 김태묵 목사가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기도하자”는 제목으로 설교하였으며, 첫 찬양은 이순영의 독창으로 “하늘가는 밝은 길”이었고, 반주에는 최경숙이었다.

첫 번 집회인원은 31명 혹은 32명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첫 예배 순서지 끝에 그날 집회 통계를 연필로 추가 기입하였는데, “연보 십 칠불 오십 원 집회인원 삼십 일명”으로 되었고, 그 다음 주일인 10월 21일 순서지에 보고되기는 32인이다. 지금은 32인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게 옳은 수자일 것이다. 왜냐하면 계수자가 자기를 빠뜨렸다가 후에 정정한 것 아닐까? (<삼십오년사>, 28-29쪽)

이렇게 소박하게 시작한 교회가 57년 동안 각가지 풍상을 거쳐 가면서 오늘의 모습을 이루었음을 생각하면 놀랍기 그지없습니다. 마치 아브람을 불러내어 거룩한 백성을 일으킨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와싱톤한인교회를 그렇게 불러 내셨습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 덕분이요, 수많은 교우들의 눈물과 땀 덕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교회를 위한 헌신과 봉사가 더욱 고귀해 보입니다. 이 거룩한 전통을 이어 나가는 일은 벅찬 영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역사의 일부가 된 것을 감사하며, 더 아름다운 역사를 써 갈 것을 다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