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목요일 한국에서 곽종문 장로님께서 위독하시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급하게 일정을 조정하여 귀임하려고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중에 “최진실 자살”이라는 뉴스를 들었습니다. 그로부터 지난 며칠 동안 이 사건은 여러 가지 국내외 큼직한 뉴스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날마다 모든 신문의 톱뉴스로 보도되는 것을 보면 그만큼 이번 사건이 우리 사회에 주는 충격이 컸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이번 사건이 지난 20년간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으며 인기의 중심에 있던 연예인의 죽음이라는 이유가 크지만 그의 죽음이 익명으로 게재되는 인터넷상의 음해성 덧글(악플)로 인한 루머와 그로 인한 스캔들 때문이었다는 점에서 사회적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본시 덧글이라는 것이 어떤 사건이나 기사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보려는 의도에서 시작되었으나 익명으로 올리는 글의 특성상 건전하고 긍정적인 글보다는 불온하고 부정적인 글들이 그 대부분을 차지하며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 언어폭력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다보니 반응이나 평가의 수준을 넘어 악성 루머나 스캔들의 진원지가 되어 버렸고 그로 인한 피해가 점점 더 극성을 이루어 가고 있는 형편입니다. 이번 사건도 고인에 대한 근거 없는 악성 루머로 인해 생긴 스캔들에 휩싸이게 되고 그로 인한 심리적 강박이 급기야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엄청난 비극을 초래하게 된 것입니다.

이번 사건을 바라보면서 인터넷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다른 사람에 대한 무책임한 간섭이나 근거 없는 악성 루머를 자제해야 함은 물론이고, 아울러 다른 사람의 무책임한 발언 때문에 우리 자신의 삶을 책임적으로 살지 못하는 일도 없어야 할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의 삶을 다른 사람들의 반응에 의존하기 보다는 우리 스스로 책임적으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고 최진실 님의 죽음을 맞이하면서 영화 감독 대표들이 발표한 글을 동감하는 마음으로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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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감독 일동은 최진실을 진정 아픈 마음으로 떠나보냅니다. 이은주에 이어 이런 일이 또 발생한 것에 대해, 영화적 동료로서 이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상황을 방치했던 것은 아닌가 마음 한 구석이 어두워집니다. 미국의 배우 말런 브랜도는 마약을 하고 여성들을 성폭행했다는 악성 루머성 보도가 나와도, 그가 ‘대부’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등에서 대중에게 주었던 기쁨과 슬픔을 생각하며 그를 이해하고 감싸려던 미국 시민이 더 많았음을 기억합니다. 과연 우리는 그런 것이 불가능한 국민인가요?

저희 감독들은 대체 가능한 존재들입니다. 박찬욱이 찍다 문제가 생기면 김지운이나 류승완이 찍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송강호가 찍다가 못 찍으면 그를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그만큼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존재들이 연기자입니다. 그들은 늘 행복하면서도 불행합니다. 파스칼의 표현을 빌리자면 “종교와 오락 사이에서 불안정하게 진동하는 존재”들이 연기자입니다. 어떤 때는 무조건 숭배의 대상이 되다가 어떤 때는 그냥 소비돼 버리는 오락의 소도구 같은 존재. 우리는 그들을 통해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합니다. 그들이 행복하고, 그들이 다양하고 건강하게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우리는 더 많은 이야기들을 진실되고 풍부하게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대한민국의 영화감독이 가장 사랑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입니다. 누구보다 표현의 자유나 정치적 발언을 억압하는 것에 대해 싸워왔습니다. 그러나 이은주에 이어 최진실마저 보내게 된 상황을 생각하면 이것이 과연 진정한 언론의 자유이자 표현의 자유인가 되묻게 됩니다. 인터넷에 유포되는 악성 글들은 우리를 참담하게 합니다. 이처럼 인터넷이 서로에게 소통의 장이 아니라 침 뱉는 장소가 된다면 우리는 차라리 아날로그로, 펜으로 편지 글을 쓰던 시대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영화 한 편을 만들면 우리는 그를 둘러싼 다양한 평가들을 원합니다. 칭찬이든 비판이든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요즘 들어 우리 감독들은 문화 권력이 너무 익명의 네티즌들에게 일방적으로 가 있지 않나 우려합니다. 창작자의 발언, 전문가인 기자•평론가의 발언, 그리고 관객인 네티즌의 발언이 고루 힘의 균형을 이뤄야 함에도 거의 일방적으로 네티즌의 파워에 쏠려 있는 불균형 상태를 심히 우려합니다. 때로는 막말과 인격 살해를 일삼는 그 네티즌이 과연 관객 전부를 제대로 대변하는 것인지도 의심스럽습니다.

저희 감독들은 이번 사태가 정체불명의 네티즌이 과도한 권력으로 세상을 몰아가 거짓 정보와 무책임한 인신공격으로 오염됐던 인터넷 공간이 정화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예술가 배우들을 좀 더 관용적으로 바라보는 사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2008년 10월 2일
영화감독 네트워크 대표 * 영화감독조합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