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시간 정도 잠을 자고 새벽기도 시간에 일어나 기도하며 경건을 시간을 가졌다. 아침 식사 후 오늘은 이 곳에 있을 동안에 대한 오리엔테이션 시간을 가지면서 캄보디아에 대한 것을 많이 배웠다.

캄보디아의 옛날 왕조인 앙콜왕국은 중국 남부와 지금의 태국과 라오스 미야마 그리고 베트남 일부까지도 영토를 확장했던 제국이었었다고 한다. 앙콜왕국의 문명은 한국의 삼국시대 문명보다 발달되었고 훨씬 앞섰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왕국이 왕위 계승 때마다 권력 다툼으로 인해 나라가 피폐해졌고 약해졌다고 한다. 그리고 근대에 들어서 크메르 정권때 수백 만 명이 살해 당함으로 인해 남자들이 적어졌고 국력이 더욱 약해졌다고 한다. 캄보디아도 인도차이나의 다른 나라들과 같이 모계나라로 여자가 힘이 있다고 한다. 여기는 결혼을 하면 남자가 지참금을 가지고 처가로 들어간다고 한다. 그리고 수입이 들어오는 것을 장모에게 가져다 주어야 한다고 한다. 물론 특별히 능력이 있던지 그렇지 않으면 모슬람인 경우 남성우위 사상이기에 그렇지 않다고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다 같다고 한다.

캄보디아의 땅은 상당히 비옥한 편이라 농사가 잘된다고 한다. 그런데 산악이 없이 거의 평지를 이루고 있어 지평선을 어디서나 볼 수 있고 우기 때는 저지대로 홍수로 항상 범람한다고 한다. 메콩강과 큰 호수인 삽호에서 흘러나오는 삽강의 삼각지를 이루는 곳에 수도인 프놈펜이 위치해 있다. 프놈펜은 인구가 약 2백만 정도 그리고 선교지인 짬뽕짬은 유동인구를 포함해서 5만 정도 나라의 크기는 남북한을 합한 것 보다 조금 더 크고 인구는 모두 1천백만 정도라고 한다. 종교는 크메르인은 대부분이 불교인데 소승불교나 대승불교가 아닌 힌두교와 혼합된 자체의 불교문화를 이루고 있고 잠족은 거의가 모슬람이라고 한다.

백선교사님은 이곳에서 교회와 영어학원을 운영하고 있으며 교회와 사택은 차로 1-2분 정도 거리에 있고 교회도 큰 집을 빌려서 하고 있었다. 사역은 상당히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고, 특히 언어에 대해 4년 정도 되었는데 놀라운 진전을 보이고 있어 감탄을 하게 한다. 백선교사는 어디서라도 준비된 사역자로 모든 사역을 잘 할 사람임을 다시 본다.

인사법도 여러 가지이고 말의 어순도 여러 가지라고 한다. 한국과 많이 비슷한 면이 있다. 밥먹었느냐는 인사도 식사하셨습니까? 진지 잡수셨습니까? 등등..인사도 마찬가지이다. 합장해서 손끝이 얼굴의 인중 위로 올릴수록 존경을 하는 모습이고 낮추면 아랫사람에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점심식사를 한 후 우리 교회를 통해 짓고 있는 Shining Star Children House로 갔다. 가서 보니 지난번 사진에는 기초 공사만 했었는데 이미 삼층의 겉뼈대가 거의 다 올라갔다. 생각보다 훨씬 더 큰 벽돌로 된 잘 지은 건물이 이었다. 내장공사까지 해서 올 11월경에 입주 예정으로 공사를 하고 있다고 한다. 처음 2층만 지으려고 했는데 다른 용도까지 해서 3층에 옥상도 지붕을 하고 기둥을 세워 난간을 만들어 아이들이 활동하게 할 예정이므로 실제로는 4층 건물이 되었다. 원래 십만 불 예상했는데 건물이 커졌고 자재비가 올라 13만불 정도 소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우리 교회에서 5만불 정도가 더 보내져야 될 것 같다. 이렇게 하더라도 건물 안의 집기나 책상 침대 등은 따로 해야 한다고 한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시작하게 해 주셨으니 하나님께서 결국은 다 이루실 줄 믿는다고 생각하고 일을 하고 있었고 또 우리도 그렇게 기도했다.

고아원 건물을 보며 백선교사님이 참 수고가 많았음을 또 다시 본다. 우리는 그곳에서 오늘 담장주의를 돌아가며 망고나무를 22그루 심을 곳을 준비하고 또 철문으로 된 정문을 페인트 칠을 하였다. 오후 2시 가장 더울 때 시작하게 되었는데 열기로 인해 모두가 땀이 비오듯 한다. 페인트가 모자라 조금 남은 것은 다음날 하기로 하고 6시경에 들어왔는데 모두가 햇볕에 타서 검어졌다. 한국 사람이 햇빛을 많이 쬐면 캄보디아 사람들 보다 더 검어진다고 한다.

저녁 후 한 시간 동안 하루의 일과에 대해 서로 감사와 예배의 시간을 가졌다.
오늘은 도착하고 나서 이 곳에서 역시 선교하고 있는 이성민선교사님께 연락을 했다. 이성민 선교사님은 우리 교회가 시작되고부터 후원하는 기아대책 파송선교사인데 이 곳에서 사역을 크게 잘하고 있고 가장 오래된 선교사 중에 한 분이다. 꼭 와서 만나고 싶다고 해서 다음 화요일 하루는 이성민 선교사의 사역지로 가보기로 했는데 여기서 4시간반정도 걸린다고 한다. 화요일 오전에 와서 수요일 오전에 다시 데려다 주겠다고 한다. 사역장소도 많고 또 거리상 하루 만에 갔다 올 수가 없다고 한다.

이 곳은 물가가 아직도 낮고 싸기에 은퇴하고 선교사로 자원하여 오는 분들이 많다고 한다. 그러나 몇 년 사이에 이곳도 많이 올랐다고 한다. 2년 전에 고아원 부지 뒷쪽 땅이 우리 고아원에서 사지 않으면 사용하기로 힘든 땅인데 평당8불 달라고 했는데, 지금은 40불이 넘는다고 한다. 집도 4년 전에 3만불 정도 하던 것이 지금은 17만불에서 20만불이나 한다고 한다. 그래도 서민들의 한달 월급은 1백불 정도라고 하고 특히 공무원들의 월급은 45불 정도라 부인이 사업을 하던 직장에 다니지 않으면 살기가 힘들다고 한다. 그래서 공무원은 부정하는 것이 생활화 되었다고 하고 오히려 얼마를 주는지 서로 흥정한다고 한다. 심지어 공항 입국시 비자 받을때 사진을 한장씩 첨부하게 되어 있는데 사람의 상태를 보고 1불에서 어떤 사람에게는 20불까지 받는다고 한다. 우리는 2불 달라고 했다. 왜 그러냐고 항의하면 한시간씩 두시간씩 내어 보내지 않고 붙들어 둔다고 한다. 물론 받아 서로 나누어 먹는다 그래서 영수증을 발부하지 않는데 억지로 달라고 하면 역시 마찬가지로 몇 시간씩 내보내지 않고 세워둔다고 한다.

이곳에 백선교사님과 함께 사역하는 평신도 집사님 부부가 있는데 나이가 드신 분으로 공사 감독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별로 공사에 대한 지식이 많은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분은 여기 온지 2년이 되었는데 앞으로 2년 더 있기를 원한다고 교회에 연장 신청을 한다고 한다. 자녀들이 다 커버리고 두 분만 있는 분들은 살기가 좋은 것 같다. 각박하지 않고 물가가 아직 싸서 집에 일하는 사람 들여도 백불이면 충분하다고 한다. 백선교사님 사모님도 미국가서 안식년으로 살 것을 걱정하고 있다고 한다. 이곳에 정착된 삶이고 또 편한 점도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무엇보다 시간과 법에 매여 있지 않아 여유가 있다고 한다.

우리 성광교회 성도님들도 앞으로 나이가 들면 실버 미션이라고 나이들어 선교사로 헌신하는 것, 참으로 좋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