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가 태어나 자라고 공부한 고향의 초등학교에 다시 선생으로 60평생을 가르치면서 시를 쓰다가 고향에서 은퇴한 이가 있습니다. 그가 바로 ‘섬진강 시인’으로 불리는 전라북도 임실 덕치초등학교 교사인 김용택 시인입니다. 저는 그분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지만 그의 시를 좋아해 시를 자주 접해서인지 그가 지난 8월 26일 수업을 마지막으로 은퇴했다는 기사가 인터넷에 올라온 것을 유심히 보게 되었는데 기사와 함께 소개된 그의 삶의 이야기가 읽다가 그를 취재한 기자는 “사람은 김용택처럼 살아야 한다. 그것이 순리이다”라고 한 말에 동감하면서, 섬진강처럼 자기 자리를 지키며 흘러온 그의 삶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어졌습니다.

“우리 학교 안에 커다란 살구나무가 있어요. 내 지나간 날들을 살구나무와 같이 살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네요. 살구나무는 내가 초등학교 입학할 때 작은 나무였어요. 아이들과 살구를 따다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서른 살이었고, 아이들이 꽃잎을 날리면 그 꽃잎을 따라다니다 웃음소리에 놀라 뒤돌아보니 마흔 살이 되었던 거죠. 아이들과 웃느냐고 뛰어다니다 앞산을 보니 쉰 살이었어요. 이제 살구나무가 다 살고 꽃도 안 열리고 살구도 안 열리고…. 학교를 나가려고 돌아보니까 예순 살이 됐네요”

한평생을 한곳에서 지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삶의 고백입니다. “선생이 돼서 어디서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고, 사람이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죠. 내가 여기서 태어나고 자라고 해서 선생이 됐으니까, 여기서 나를 잘 가꾸면서 한번 살아보는 것도 괜찮겠네 하는 소박한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이 학교에서만 산거죠. 있어도 지루한 적이 없었고 떠나고 싶은 적도 없었고….” 누구나가 묻는 삶의 본질적 질문에 그는 그렇게 대답하고 살아온 것입니다.

“제자들한테는 교사로서, 한 인간으로써 잘못한 게 너무 많죠. 지나치게 혼내거나 체벌을 했다던가. 힘없는 어린 아이들에게 어른으로써 인격적인 대우가 아닌, 힘 있는 자로써 대했다는 생각이 참 많아요. 요즘에는 뒤돌아보면서 곳곳에 미안한 곳이 너무 많고. 애들 찾아다니며 그때 내가 잘못했다고 빌고 싶어요.” 어찌 보면 매우 식상한 교사의 멘트일수 있는데 그의 고백에는 왠지 모를 신뢰감이 감동과 함께 묻어 들립니다.

“그런 말도 해주고 싶네요.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해라, 사람이 희망이다. 극심한 물질만능주의 때문에 인간이 소외 받는 사회인데. 나는 그럴수록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해요. 적어도 초등학교에서는 점수 위주 보다 삶 위주의 교육을 열어야 한다고 봅니다. 말하자면 나도 있지만 다른 것도 있다는 걸 가르쳐야 한다는 거죠. 지금은 나만 있는 거잖아요? 나만 일등하면 되니까. 삶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교육적인 상황이 많아요. 그 속에서 창조적인 인간을 길러내는 그런 교육이 중요합니다. 도대체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초등학교 1·2·3학년 아이들이 학원을 하루에 세 개, 네 개를 다닌다는 거예요. 여기서 음악 배우고 저기서 태권도 배우고 영어 배우고 뺑뺑 도는데. 그 아이들이 그 지식을 이해하고 감당할 능력이 있겠어요?”

1982년에 ‘섬진강 1’을 발표하며 문단에 등단한 그의 글은 초등학교와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느냐”고 묻는 질문에 그는 “글을 잘 쓰려면 잘 살아야한다”고 말합니다. “글을 잘 쓴다는 건 삶을 잘 산다는 건데. 살고 있는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것이 무엇인지 알게 돼요. 그럼, 그것이 나하고 무슨 관계가 맺어지잖아요? 관계가 맺어질 때 생각이 일어나는 거예요. 그 생각을 논리적으로 정리하는 것이 바로 인생이고 글이에요. 결국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을 자세히 보고 아는 사람이 글을 잘 쓰는 사람이죠.”

“바람이 흔들리는 모습이라든가, 꽃이 봄부터 펴서 지금까지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자연이 너무 많은 말을 해주기 때문에 받아 적기도 힘들어요. 봄이 되면 아침에 꽃이 피고 꽃잎이 날리지, 새들이 찾아와 울고 난리를 치지, 농부가 왔다 갔다 하지. 자연은 너무나 많은 말을 해주는 거예요. 예전에는 감당을 못했어요. 그래서 갈등이 일어나기도 했어요. 이젠 자연과 화해를 했어요. 그렇게 심한 갈등을 겪고 나니까 산이 산으로 가버리는 거야, 꽃은 꽃으로 가버리는 거야, 물은 물로 가버리는 거야. 객관적으로 볼 수가 있는 거지. 이래서 나이를 든다는 건 아주 아름다운 거예요.”

지난 주간에는 대통령 선거를 위해 민주당 전당대회가 덴버에서 열리면서 민주당만이 아니라 경쟁 정당인 공화당까지도 본격적인 선거전에 돌입하는 분위기였습니다. “내가 지도자가 되어야 나라가 산다” “우리 정당이 정권을 차지해야 국민이 행복하다”는 각 정당과 후보 간의 잘 준비된 쇼를 보면서도 왠지 마음이 편치 않았는데 주말에 김용택 님의 삶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순리를 따라 사는 삶에는 경쟁으로는 얻을 수 없는 아주 소중한 가치와 아름다움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