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학자 김현식 전 평양사범대 교수가 지난 31일(주일) 오후 1시30분 엘리콧시티 소재 벧엘교회에서 ‘북한의 실상과 선교 전략’을 주제로 특강을 했다.

김 교수는 “38년간 평양사범대학 노어교수로, 20년간 김일성 처가 자녀들의 개인교사로 활동할 정도로 김일성 정부의 핵심당원이었던 내가 한국으로 망명 후 기독교 신앙을 되찾을 수 있었던 것은 어린 시절 유년주일학교를 꼬박꼬박 보냈던 어머니의 기도와 누님의 기도 그리고 현재의 아내의 기도 덕분이었다.”고 간증했다.

북한은 사이비종교국가

▲질문을 경청하고 있는 김현식 교수
김 교수는 “김일성 김정일 부자가 이렇게 오랫동안 독재정권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북한이 사이비종교국가이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에 의하면 기독교의 핵심이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인 것처럼 북한은 김일성, 김정일, 당 이 세 가지를 삼위일체화해서 철저한 교육을 시킨다. 북한에서는 김일성과 김정일 교시를 그 무엇보다도 우선시하며, 전 국민은 태어날 때부터 김일성과 김정일을 유일신으로 섬기는 모태신앙을 갖게 된다. 매주일 교시를 내리고 하루 두 시간 이상 사상교육을 하는 당비서는 목사와 같은 역할을 한다.

탈북자들이 대게 통제력이 약한 국경지대 사람들이나 당 내에서 입지를 잃은 사람들, 외국에 간 사람들이 대부분인 것이 바로 이런 이유다.

북한은 핵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김 교수는 “지난 정권이 정치적으로 통일을 이루려고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인도적 지원도 많이 했지만 안됐다. 그러다 군사적인 방법으로 맞서려고 하니 황장엽씨가 내려 온 것이다. 전쟁은 절대 안 된다는 것을 알리러 온 것인데 남한은 스파이 취급하는 것 같다.”며 북한의 사상을 단편적으로 알 수 있는 이야기를 꺼냈다.

김일성이 당 지도자들을 모아놓고 “미국 놈들하고 싸워서 지면 어떻게 하겠나?”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대부분은 “수령님이 있기 때문에 절대 지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래도 만약에 진다면 어떻게 하겠나?”라고 재차 묻자 김정일이 나서서 “북조선이 없는 지구는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다 깨뜨려버리겠습니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김 교수는 이런 예를 들며 북한이 절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현식 교수가 말하는 북한 선교

그렇다면 어떻게 북한을 복음화할 수 있을까?
김 교수가 제시한 북한선교 방향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품성과 행동을 전해 주는 것이다. 그들도 본받을 만하다고 여기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전해야 한다. 그 예로 서울의 교수가 김책공업대학에서 강의를 했다고 해보자. 그의 강의를 듣고 ‘교회 다니니까 저렇게 실력도 좋고 성품도 훌륭하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해야 한다.

둘째는, 스포츠 교류다. 북한은 활쏘기, 태권도, 탁구, 사격 등에 관심이 많다. 북한은 대표팀들조차도 먹는 것이 매우 부실하다. 스포츠 교류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마음을 전할 수 있다.

셋째는, 의료 선교다. 의사들이 가서 북한에서 못 고치는 병을 많이 고칠 수 있다. 그들이 수술할 때마다 기도하고 ‘우리 손과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손과 지혜로 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한다면 얼마 안가 그들이 먼저 기도를 부탁할 것이다.

넷째는, 영어교사들을 보내는 것이다. 해방되자 북한은 러시아어 일색이었다. 그러다 7-80년 대 들어와서 영어 교육을 강조했다. 당시는 초등학교 4학년부터 영어를 가르쳤는데 요즘은 초등학교 3학년부터 가르친다고 한다. 그런데 아주 작은 영어 사전조차 없어서 그것을 베껴 쓰는 상황이다. 한쪽은 영어 한쪽은 북한말로 된 영어사전을 만들어 보내고 싶다. 북한말 성경 번역과 북한 학생들을 위한 영어사전을 만들어 보내는 운동을 위해 많은 기도를 부탁한다.

질의응답 시간에 김현식 교수를 대신해 김현자 사모는 "남한 사람들은 들어본 적도 없는 '기니비사우'(아프리카 대륙의 나라) 같은 국가와도 북한은 몇 십년 전부터 수교를 잘 맺어왔다. 북한은 주로 미사일 같은 무기 거래 및 수리, 땅굴, 태권도, 치기공, 경호 훈련 등으로 모슬렘권이나 제3세계 국가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 기아와 독재, 정치범수용소 등으로 고난 받고 있는 북한 사람들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아프지만 저들에게도 하나님의 꿈이 전달되길 기도하고 있다. 저런 지옥훈련 속에서도 살아남은 사람들이니 그들에게 복음만 전해진다면 모슬렘권을 복음화하고 세계를 복음화 하는 데 큰 기여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날 특강에는 성경번역과 사전 편찬 작업을 위해 전국 각지에서 모인 젊은이들도 함께 했다. 학생들은 대부분 박사과정을 졸업했거나 과정 중에 있는 이들로 LA팀, 산호세팀, 아틀란타팀, 시카고팀, 보스턴팀, 버지니아팀 등에서 참여했다. 이들은 3박 4일 동안 버지니아 지역에 머물면서 김 교수의 사역을 도왔다.

<김현식 교수>

1932년 함경남도 출생. 함흥 영생중학교 졸업. 흥남고급중학교에 다니던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소년 병사로 투입되어 전투 중에 치명적 부상을 입고 상이군인으로 제대한 뒤 평양사범대학에 진학했다. 1988년에 국립 러시아사범대 교환교수로 파견되어 러시아 교수와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던 그는 남한 정보부의 주선으로 전쟁 때 헤어진 누님을 42년 만에 만난 것이 북한 당국에 발각되자 러시아를 탈출, 1992년에 남한으로 망명했다. 이후 10여 년간 탈북자로 서울에 머무르며 경남대학교 북한대학원 초빙교수, 한국 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러시아어 강사, 국가정보대학원 러시아어 강사, 통일정책연구소(이사장: 황장엽) 연구위원 등을 지냈다.

미국 뉴올리언스 신학대학원 초빙교수에 이어 2003년 6월부터 예일대학 초빙교수로 3년간 있으면서 북한학을 강의했고 현재는 버지니아의 조지메이슨대 연구교수로 있으면서 워싱턴의 북조선연구학회(평양문서선교연구소) 대표로 있다. 2007년 9월에는 하버드대학에서 북한학을 강의했다. 현재 미국에서 북한선교를 위해 성경을 북한말로 고치는 작업과 북한 학생을 위한 영어사전 만들어 보내기 운동 등에 힘쓰고 있으며, 북한이 빨리 개방되어 그곳에 가서 다시 학생들을 가르치고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 그의 가장 절박한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