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대우 자동차 부도는 대우 그룹 전체의 도산으로 인한 국가적인 막대한 피해의 연장선상에서 해당 업계의 연속적인 도산을 가져왔습니다. 2만 여개의 부품으로 완성되는 자동차 산업의 특성상 수많은 부품협력 업체들이 고통을 피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사태가 이렇게 되면 채권확보에 혈안이 되어 장차의 문제는 생각할 겨를도 없게 됩니다. 당시 대부분의 협력업체들은 문을 닫거나 채권단만 바라보며 일손을 놓고 있었습니다. 역시 대우 계열의 부품 협력 업체였던 대의테크 채의숭 회장도 119억 원을 고스란히 손해보고 존폐의 기로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다른 업체들과는 정반대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감원내지 완전 폐업 정리하는 방향이 아니라 대우 자동차를 비롯해 국내 완성차 업체의 일류 엔지니어 11명을 스카우트하여 오히려 기술을 개발하는 도전적인 방향으로 나갔습니다.

인생길은 후퇴하는 길과 전진하는 길 두 가지 길 밖에 없습니다. 기로에 섰을 때 채회장은 후퇴하는 방향이 아니라 도전하는 방향을 택했습니다. “국내외 대기업중 하나가 대우 자동차를 인수할 걸로 예상했습니다. 새 주인에게 인정받기 위해서는 경쟁사보다 뛰어난 기술력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지요.”채회장의 예상대로 2002년 GM이 대우 자동차를 인수했습니다. GM은 이후 국내 협력업체들의 기술력부터 점검하기 시작했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연구개발(R&D)과 설계, 생산 등 전 과정을 직접 담당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완성차 업체로부터 설계도를 받아 단순 생산만 해주던 국내 업체들에게는 벅찬 주문이었습니다. 하지만 1년 전부터 이런 상황에 대비한 대의테크는 달랐습니다. 이미 22명으로 구성된 신기술개발팀이 구성돼 있었습니다.

2004년 GM의 핵심 파트너인 세계적인 IP(Instrument Panel) 전문기업[인티어]의 엔지니어들이 기술력 점검을 위해 대의테크를 찾아 왔습니다. 시설과 인력구성 등에서 합격점을 받고 구체적 협상을 시작했습니다. [인티어]는 2개 차종의 IP를 공동 개발하는데, 650만 달러의 기술 개발비와 별도의 로열티 350만 달러등 총1000만 달러를 요구했습니다. 협상은 결렬됐습니다. 대신 채회장은 자체 신기술 개발팀에 직접 IP설계를 지시 했습니다. 22명의 엔지니어들이 주말을 반납한 채 5개월을 매달려 개발에 성공했습니다. 이를 지켜본 [인티어] 관계자들은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며 즉각 협상 조건을 수정했습니다. 결국 채회장은 1000만 달러 대신 기술 개발로 27억 원을 거꾸로 받아냈고 지분 50대 50으로 인티어와 공동으로 합작회사 ‘대의 인티어’를 설립했습니다.

채회장의 R&D에 대한 집념은 도산사태를 극복하는 차원을 넘어서 세계 시장을 겨냥하고 있습니다. 2005년 세운R&D 전문회사 ‘선 엔지니어링’은 최근 급성장하는 인도의 ‘타타 자동차’ 상용차 부문의 R&D를 대신 해주고 있으며, 호주 자동차회사 ‘홀덴’에 IP설계 기술을 수출하고 있습니다.

채회장은 사업을 우연한 계기에 시작했습니다. 삼성 그룹과 대우그룹에서 해외사업 본부장, 대우 아메리카사장 등을 지내다 1985년 교수의 꿈을 이루기 위해 일찍 퇴직하고 대학 강단에 섰습니다. 그러던 중 후배가 운영하던 장난감 회사를 우연히 틀렸다가 대신 경영을 떠맡게 된 것이 오늘이 있게 된 동기였습니다.

부도에 위기에 몰린 한 기업인의 판단과 선택이 기업의 사활뿐 아니라 국가 위상에 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입니다. 도산의 위기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택하는 길과 정반대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 누구에게나 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모두에게 절망적인 상황 일지라도, 그 절망 속에서 희망의 길을 볼 수 있고 그 길을 향해 결단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성공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2000년의 도산위기는 그에게 있어 경쟁력을 강화 시키는 절호의 기회가 되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