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몽고메리 카운티에는 주 정부와 여러 민간단체들의 후원으로 설립된 스트라스모어 음악 센터(Music Center at Strathmore)라는 콘서트홀이 있는데 제가 알고 있는 한 미국 내 카운티(County)에 위치한 연주장 중 그 규모의 웅장함이나 설치된 음향 시스템에 있어서 최고라고 말할 수 있는 아주 훌륭한 음악당이 있습니다. 특별히 스트라스모어 음악센터에는 내셔널 필하모니(National Philharmonic)가 상주하는데 내셔널 필하모니는 워싱톤 시내에 있는 케네디 센터의 내셔널 심포니(National Symphony Orchestra)와 함께 워싱톤 지역에서 쌍벽을 이루는 오케스트라입니다. 이런 좋은 심포니와 음악센터가 우리 카운티내에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정말 특별한 배려요 특권입니다. 게다가 인접 도시인 볼티모어에 있는 볼티모어 심포니 오케스트라(Baltimore Symphony orchestra)가 스트라스모어를 정기 연주회 장소로 지정하고 연중 연주회를 열고 있습니다.

얼마 전 볼티모어 심포니의 여름 특별 연주 시리즈중 비발디(Vivaldi)의 사계(Four Seasons) 연주회가 있어서 다녀왔습니다. 곡 자체가 너무 잘 알려진 탓도 있지만 몇 년 전에 이태리에 집회를 갖다가 베니스에 갔었는데 마침 비발디의 사계를 연주한다는 광고물을 보고 찾아 갔더니 바로 그곳이 비발디가 자란 성당이었고 그곳에서는 해마다 여름이 되면 비발디의 사계만 연주하는 음악회가 열리는데 연주자들이 전곡을 외워서 악보 없이 연주하는데 어찌나 자신들이 연주하는 곡에 심취해서 연주를 하는지 아주 감명 깊게 들었었는데 바로 그때의 그 감동에 다시 젖고 싶은 마음에 우정 시간을 내서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이번 볼티모어 심포니는 비발디의 사계와 함께 아르헨티나 출신의 음악가 피아졸라(Piazzolla)가 작곡한 같은 곡명의 “사계(Four Seasons of Buenos Aires)"를 계절별로 비교하여 연주하는 특별한 시도로 새로운 감동을 받았습니다. 두 곡 모두 실내악을 위한 곡인지라 심포니 악기 편성중 바이올린과 첼로로만 구성된 앙상블이 연주를 하였습니다.

연주회를 가면 어느 연주회든지 청중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연주자들이 있는데 대개는 독주자나 아니면 다른 연주자들보다 앞에서 연주하는 이들입니다. 이번 연주회에도 청중들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볼티모어 심포니의 악장이며 제 1바이올린의 수석주자로 이번 연주회의 리더인 조나단 카니(Jonathan Carney)였습니다. 세계 여러 나라의 유명한 오케스트라의 악장과 수석 주자를 역임한 그의 명성에 걸맞게 그날의 연주도 너무나 훌륭했지만 연주하는 제스추어 하나하나가 다른 연주자들을 주도하는 리더로서도 좋았고 청중들의 시선을 주목하기에도 충분했습니다.

저도 그의 연주와 움직임에 제 눈과 귀를 맡긴 채 음악에 몰입되어 듣다가 얼핏 다른 대원들에게 눈길을 돌리게 되었는데 30명 남짓 되는 앙상블 대원중 유독 제 2바이올린석의 맨 뒤끝 연주석에 앉아서 연주하는 바이올리니스트를 보게 되었습니다. 사실 제 1바이올린석도 아니고 제 2바이올린석, 그것도 앞좌석도 아닌 맨 뒤편 연주석은 그리 쉽게 눈에 띄는 자리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그 바이올리니스트가 눈에 들어온 것은 그날은 모든 바이올린 연주자들이 다 서서 연주를 하는데 유독 그 분만 의자에 앉아서 연주를 했기 때문인데 자세히 보니 나이가 일흔쯤 되어 보이는 노인이셨습니다. 아마도 나이가 연로한 탓에 다른 연주자들은 모두 서서 연주하는데 유독 혼자만 앉아 연주를 하는 듯싶었습니다. 연주회 중간 휴식시간이 되어 나가는데 허리도 좀 굽은 것이 그냥 보기에도 나이가 지긋하신 노인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가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실내악 악기 편성에서 제 1바이올린석도 아니고 제 2바이올린석에, 그것도 앞자리도 아닌 맨 뒷줄의 끝자리는 별로 청중들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자리입니다. 바로 그런 자리에서, 다른 연주자들처럼 서서 연주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연약하고 허리도 굽은 노인이 연주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분은 언제부터 저 자리에서 연주했을까? 처음부터 두각을 내지 못한 걸까? 아니면 젊었을 때는 그래도 꽤나 잘나가는 연주자였는데 나이가 들면서 뒷자리로 밀린 걸까? 저 나이에 저 자리에서 연주를 해야만 하는 사연은 무엇일까?....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는 질문을 혼자 생각하면서 그 노 연주자의 모습을 지켜보는데 얼마나 그분이 열심히 연주를 하는지 한번 바라본 시선이 자꾸만 그분에게로 끌리게 되고, 보면 볼수록 그분의 모습이 다른 단원에 비해 점점 더 또렷해 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그 분이 그 자리에서 연주를 하게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던 것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서 연주하는 그 분의 모습이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그가 연주하는 자리가 청중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자리도 아니고, 비록 그가 연주하는 모습이 젊은 단원들 처럼 현란한 것도 아니지만, 제 2바이올린 맨 뒷자리에서 묵묵히 자기가 맡은 연주에 열중하는 모습이 참 소중해 보였습니다.

앙상블이란 환한 조명이 비치는 중앙에서 청중들의 시선을 주목하며 연주하는 이도 있지만 비록 드러나는 자리가 아니더라도 자기가 맡은 부분을 성실하게 연주하는 바로 그 노인과 같은 연주자도 꼭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 2바이올린 맨 뒷자리에서 연주하는 노 연주자를 통해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이의 모습이 아름답다는 것을 알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