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생존, 누림, 세움으로 이어집니다. 인류의 역사도 국가와 민족의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먼저 의식주 생존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합니다. 생존의 문제가 해결되면 풍요를 누리고 여유를 누리려는 동기가 생기고 문화를 만들게 됩니다. 풍요의 문화가 세워지고 나면 명예를 추구합니다. 자신의 이름을 떨쳐 보려고 합니다. 죽어 이 세상을 떠나면서 남길 수 있는 것을 찾아봅니다.

누림의 단계를 지나기 전까지는 개인도 공동체도 자신 만을 생각합니다. 생존의 단계에서도 남을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누림의 단계에 접어들더라도 자신 중심의 세계관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그러다가 세움의 단계에 접어들면서 갑자기 공동체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전에는 혼자 생존해야 했지만 이제는 공동체의 생존이 개인의 생존을 지켜 준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전에는 혼자 누리면 충분했지만 이제 누군가와 함께 누리지 않으면 풍성한 누림을 얻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비로소 공동체를 세우기 시작합니다.

공동체가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국가, 지역 공동체, 또는 혈연으로 엮인 대가족 공동체일 수 있습니다. 어떤 형태의 공동체이든지 상관없이 한 개인에서 시작해서 공동체를 세우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가장 어려운 일은 개인 중심의 생각에서 공동체 중심의 생각으로 전환하는 일입니다. 공동체가 개인의 집합체를 넘어서서 공동체 스스로의 생명, 생리, 문화, 체계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개인 중심으로 생존하고 누리다가 공동체를 세워 나가는 첫 번째 방법이 바로 수많은 개인들의 목소리와 행동을 모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직접 민주주의입니다. 모든 사람들의 의견이 동일하게 빠짐없이 최종적인 공동체의 삶에 반영되는 것입니다. 옛날 아테네와 같은 작은 도시 국가에서는 얼마든지 적용될 수 있는 방식입니다. 그러나 공동체의 규모가 조금만 커지면 공동체를 세워가는 방식이 달라져야 합니다. 대의 민주주의가 도입되어야 합니다.

마치 넓은 들판에 수많은 작은 천막들이 가득 찬 모습에서 이제 고층 건물과 같은 도시가 세워지는 것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한눈에 볼 수 있는 들판에 펼쳐진 군집과는 달리 건물에서는 아래 위 층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지 못합니다. 넓은 건물에서는 조금만 이동해도 금방 다른 구역을 갈 수 있지만 건물에서는 계단과 엘리베이터를 타야 합니다.

교회가 작을 때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모든 사람들이 모든 것을 알고 함께 짐을 져 나가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교회가 점점 커지면서 맡은 사람들을 믿고 결과가 나올 때까지의 과정을 믿고 최종 결과를 받아 주는 방식이 필요합니다. 결과가 흡족치 않으면 다음에 있을 과정과 절차를 수정하고 또 다시 의사 결정 과정과 집행 과정을 신뢰하고 가동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규모 있는 교회가 어려워질 때는 제직회나 공동의회를 열때마다 열기가 가득하게 됩니다.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생존과 누림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고 극히 일부분의 시간을 공동체를 통한 남김과 세움에 사용하게 될 때 개인의 유익과 공동체의 성숙이 함께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번 주간에 장례와 여름 성경학교를 치르고 이제 닥친 독립기념일 피크닉과 헌당예배 준비를 본격적으로 진행하면서 성도들 개인의 영적인 생존과 누림이 공동체를 세우는 일과 잘 조화를 이룰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위 칼럼은 지혜와 사랑을 나누는 사람들의 모임인 '연우포럼'(www.younwooforum.com)과 합의하에 전재합니다>